제147회 브리티시오픈 골프대회 최종라운드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컵을 안은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5.이탈리아)에게 타이거 우즈(42.미국)는 생애 최고의 은인이다.

스코틀랜드 앵커스의 커누스티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디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몰리나리가 타이거 우즈와 같은 조에 배정된 것 역시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몰리나리가 우즈와 같은 조로 경기하지 않았다면 과연 몰리나리가 우승까지 할 수 있었을까.

몰리나라가 보기 드문 자신만의 플레이로 ‘클라레 저그’를 품을 수 있었던 데는 우즈의 산파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골프의 천재성이나 기량, 경험, 명성 등에서 타이거 우즈와 프란체스코 몰리나리는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PGA투어 통산 79승, 메이저 14승의 우즈는 당대 최고의 골퍼황제로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반면 유러피언 투어 6승, PGA투어 1승의 몰리나리는 유럽에서는 꽤 알려졌으나 세계 골프에선 변방 실력자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황제의 귀환을 꿈꾸며 필드로 복귀한 뒤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타이거 우즈와 같은 조로 경기 한다는 것만으로 몰리나리에겐 큰 행운이자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대회 참가가 늘어갈수록 뚜렷하게 예전의 기량에 근접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우즈로서는 골프황제로서의 옛 명예를 회복하고 공허한 ‘복귀’만 외쳐온 양치기소년의 오명을 씻는 한편 돈벌이를 위해 대회에 참가한다는 비난을 불식시키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런 타이거 우즈에게 디 오픈은 안성맞춤의 무대였다.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 전성기의 경기를 펼친다면 나폴레옹의 ‘황제귀환’을 방불케 할 역사적 대사건이 될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두 개의 거대한 벽인 PGA 통산 우승기록(샘 스니드의 82승)과 메이저 우승기록(샘 스니드의 17승과 잭 니클라우스의 18승)에 근접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우즈가 갖게 될 심리상태는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기대감, 자신감, 우월감, 열망, 환상에 조급함, 초조함, 미심쩍음, 불안감 등이 다양한 형태로 화학작용을 할 것이다.

반면 지난날 퀴큰론스 내셔널 대회 우승으로 PGA투어 첫 우승을 맛본 프란체스코 몰리나리로선 당대 최고의 골퍼와 라운드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영광인 입장이다. 우즈를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보다는 대스타에게 배우겠다는 겸손함, 그러면서도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겠다는 투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아쉽게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길 것이다. 여기에 더해 괜히 우즈를 흉내 내다 페이스를 잃지 말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하겠다는 결의도 다졌을 것이다.

런던의 베팅회사 우승확률에서도 타이거 우즈는 당당히 1위에 올라있고 자신의 이름은 우승후보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으니 감히 우즈를 보기 좋게 꺾겠다는 만용이나 객기를 부릴 이유도 없을 터였다.

두 선수의 이런 심리상태를 염두에 두고 보면 마지막 라운드의 경기흐름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타이거 우즈는 이날 전반에 버디 2개를 잡으면서 7언더파를 기록, 한때 1타 차 단독 선두에도 올랐으나 11번홀(파4) 더블보기, 12번홀(파4) 보기로 3타를 잃으면서 선두 싸움에서 밀려났다. 14번홀(파5) 버디로 추격전을 펼쳤지만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해 ‘통산 80승’에 터치하지 못했다. 4라운드에서 5언더파를 친 3라운드와 비슷한 경기만 펼쳤다면 부활이 가능했는데 이븐파에 그쳤다. 최종 성적은 5언더파 279타로 공동 6위.

분명 기량은 전성기의 그것에 닿아 있었으나 갤러리들의 열광, 선두그룹을 형성한 케빈 키스니, 젠더 슈펠레, 로리 매킬로이, 저스틴 로즈 등을 추격하겠다는 초조감 등과 앞서 지적한 ‘황제귀환 드라마’에 대한 환상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집중도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반면 3라운드에서 6언더파를 치며 선두권에 올라선 몰리나리는 마지막 라운드 전반 9개 홀에서 버디와 보기 없는 파 행진을 이어갔다. 후반 14번홀(파5)에서 한 타를 줄여 7언더파로 젠더 슈펠레와 공동선두에 나선 몰리나리는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한 타를 더 줄여 단독 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4라운드에서 유일하기 노보기 플레이를 펼쳤다는 것은 그만큼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경기를 이끌어갔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경기를 마친 몰리나리가 휴게실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슈펠레는 17번홀(파4)에서 보기를 기록하며 케빈 키스니, 저스틴 로즈, 로리 매킬로이 등 공동 2위 그룹에 합류하고 우승컵은 몰리나리 차지가 되었다.

타이거 우즈를 대하는 정신자세 탓인지 4라운드 몰리나리의 경기는 보기 드물게 침착했고 실수가 없었다. 길게 치진 않았지만 방향성이 뛰어났고 한 샷 한 샷에 매우 진지했다.

두 살 위의 형 에도아르도 몰리나리(37)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해온 프란체스코 몰리나리가 타이거 우즈와의 동반 라운드 기회를 살려 조국 이탈리아에 처음으로 ‘클라레 저그’를 안기고 자신은 이탈리아 국민영웅이자 세계적 골프스타 반열에 오른 것이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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