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독수리’ 충청도가 들썩인다

“또 이겼어요? 올해는 왜 이렇게 잘 하나 몰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취재를 갈 때면 자주 겪는 일이다. 대전역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택시 기사를 시작으로 경기 전후 식당 및 숙소 종업원 등 마주치는 시민들이 불쑥 대화를 걸어온다. 주제는 바로 한화 이글스다.

사실 수년 전부터 관심은 제법 뜨거운 편이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한화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이내 한숨을 내쉬거나 원성을 쏟아내는 시민들이 많았다.

올해는 다르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있고, 예상보다 성적이 너무 좋아 당혹스럽다는 반응까지 있다. 이처럼 한화 야구에 충청도가 매일 들썩이고 있다.

▲ 10년의 암흑기

한화가 올시즌 마침내 가을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2007시즌 마지막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이후 무려 11년 만의 일이다.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은 LG(2003~2012시즌)와 함께 KBO리그 역대 단일팀 최장 기록에 해당되는 불명예였다. 한화 팬들에게는 숨기고 싶은 과거다.

LG의 경우 그나마 암흑기 동안 6-6-6-8-5-8-7-6-7위로 최하위가 두 차례 뿐이었다. 하지만 한화는 5-8-8-6-8-9-9-6-7-8위로 최하위가 무려 5번이나 있었다.

그동안 가을 잔치에 초대 받기 위해 외부 FA 영입 등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보기도 했고,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장들을 모시는 방법도 택해봤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무기력한 패배가 오랜 기간 계속되면서 어느덧 한화 팬들도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고, 보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했다. 때문에 11년 만의 가을 야구가 대전 및 충청도 야구 팬들에게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 한용덕 매직+이글스 정신

어떤 투자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자 한화는 구단의 명예를 드높였던 이글스 레전드들을 코칭스태프로 불러모았다. 과거에서 답을 구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재보다 미래에 초점을 두고 기초 공사부터 새롭게 가져가는 운영 방안을 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레전드 코칭스태프와 미래를 이끌 원석들이 시너지를 내며 그 효과가 현 시점에 곧장 발휘됐다.

한용덕 감독은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강단있는 모습을 통해 선수단을 장악하며 팀 분위기 자체를 뒤바꿨다. 젊은 선수들에게는 최대한 기회를 제공하며 믿음을 심어줬고, 베테랑들에게는 때때로 냉정한 모습을 통해 자극을 가하면서 경쟁 체제를 구축했다.

또한 송진우 투수코치를 비롯한 2군 코칭스태프까지도 그동안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하거나 깊은 부진에 빠져있던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며 한용덕 감독을 보좌했다.

선수들 역시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대부분 더욱 강한 책임감을 발휘했다.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야구를 하면서 11년 만에 어둠의 터널을 통과했다.

▲ 충청도 열기, 얼마나 뜨겁나

대전 및 충청도는 올시즌 한화의 분전으로 인해 줄곧 축제의 분위기였다.

말 한 마디만으로도 늘 큰 화제를 몰고 다녔던 김성근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보다 더 많은 관중이 들어찼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화는 13일 현재 마지막 홈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 72만1110명의 관중을 불러모았다. 2016년 66만472명을 훌쩍 뛰어넘어 구단 최다 관중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미 72만명이 넘었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에 관계없이 평균 1만 관중 돌파도 확정적이다.

또한 벌써 19번의 매진을 달성했고 관중 점유율도 78%를 넘어섰다. 한화 팬들의 열기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구장이 턱없이 작아 신축 구장 건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대전시 역시 현재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한 상태다.

대전 및 충청권을 넘어 전국 각지에 분포한 한화 팬들도 결집했다. 원정 경기 총 관중수 101만4060명(평균 1만4084명)으로 KIA(총 104만914명, 평균 1만4457명)에 이어 전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내내 티켓 관련 문의가 구단에 폭주했다. 주말 경기에서 티켓을 확보하는 일은 대학 수강 신청보다 난이도가 높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포스트시즌에는 당연히 그 이상의 광풍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올시즌 한화는 뚜렷한 관중 증가와 함께 유니폼 및 각종 상품 판매 매출 역시 크게 늘었다.

한화 윤영덕 마케팅 팀장은 “이미 올해 목표치는 초과한 상태다”고 운을 뗀 뒤 “유니폼의 경우 예전에는 특정 선수에 대한 쏠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폭이 넓어졌다. 하주석, 김태균, 호잉이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지만 이성열, 강경학도 꾸준하며 정은원 역시 판매가 크게 늘었다. 한용덕 감독님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매출 상황을 소개했다.

윤 팀장은 이어 “가을 점퍼도 걱정이 많았는데 판매 수치를 보면 타 구단보다 월등하게 올라가고 있어서 그런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 밖에 여성과 어린이 고객을 위해 만든 '수리' 캐릭터 제품 역시 지난해 대비 30% 이상 신장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윤 팀장은 “팬들께서 단순히 팀 성적 뿐 아니라 선수의 투혼이나 부활 등 스토리에도 주목해주셨다. 직접 분석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우리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해 놀라기도 한다”며 앞으로도 팬덤 마케팅 기법을 통해 팬들의 반응을 기반으로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그것이 바로 10년 이상 한결같이 한화의 가을 야구를 기다려준 팬들에 대한 보답임을 강조했다.

박대웅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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