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 득점왕부터 170억 잭팟까지

프로축구 원년이었던 1983년 포항 스틸러스가 브라질 선수 세르지오와 호세를 영입한 이후 지금까지 4대 프로스포츠 외에 e스포츠, 바둑, 당구 등 수많은 종목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끊임없이 활약 중이다.

어느덧 외국인 선수 역사도 35년이 넘은 한국 스포츠에서 많은 이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왔다 실패도 하고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여기 ‘정말 한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선수들이 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선수 혹은 ‘수준 미달’로 평가받아 왔지만 한국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인생 역전과 대박에 성공했다.

▶NBA 미지명자였던 버튼, 한국 정복 후 NBA 주전급 멤버로

지난 시즌 한국 농구를 지배했던 단 하나의 인물이라면 원주 DB의 디온테 버튼(24)이다. 시즌 전만 해도 그 어떤 전문가와 팬들도 원주가 플레이오프를 갈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튼은 평균 23.5득점 8.6리바운드 3.6어시스트 1.8스틸을 기록하며 가히 리그를 압도하는 대활약을 했다.

버튼의 등장으로 DB는 단숨에 꼴찌후보에서 플레이오프는 기본에 정규시즌 1위까지 차지하는 KBL 역사상 가장 파란의 팀이 된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버튼은 득표율 94.4%나 받으며 MVP를 수상했다.

이상범 DB 감독이 “시즌 끝나자마자 미국의 버튼 집에 가 드러 누울 예정”이라고 했을 정도로 버튼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실제로 이 감독은 버튼를 잡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버튼은 아직 24세의 어린 나이에 NBA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행은 무산됐다.

2018 NBA 여름 리그에 참가하면서 사실상 입단테스트를 본 버튼은 결국 2년 연속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한 강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와 계약에 성공했다. NBA 정식 로스터에도 등록된 버튼은 10월 22일 경기에서 NBA 데뷔에 성공한 것은 물론 지난 11월 24일 경기에서는 11득점까지 하며 러셀 웨스트브룩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뛰어도 어색하지 않은 선수가 됐음을 알렸다.

대학 졸업 후 NBA 드래프트에 신청했지만 아예 지명도 받지 못해 한국에 올 수밖에 없었던 버튼은 1년 사이 전세계 최고 무대인 NBA 주전급 선수가 된 것. 버튼은 “한국 생활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여러 모로 배울 점이 많았다. 한국 생활은 지루했지만 훈련만 할 수 있어서 NBA에 올 수 있었다”고 한국농구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ML서 실패했던 테임즈, 한국 3년 생활 후 ML ‘170억원 잭팟’

2008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219번째에 지명될 정도로 크게 주목받진 못했던 에릭 테임즈(32)는 그럼에도 마이너리그에서 성장을 거듭해 2011시즌,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해낸다.

하지만 2012시즌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두 시즌 합계 181경기 타율 2할5푼, 출루율 2할9푼6리라는 부진한 성적에 그쳤다. 장타율은 4할3푼1리로 봐줄만 했지만 3할 출루율도 기록하지 못하는 1루수에게 더 이상 기회를 줄 순 없었다.

테임즈는 2013년 마이너리그에서 승격되지 못하자 2014년, 한국 무대를 두드린다.

NC 다이노스와 계약한 테임즈는 첫시즌부터 타율 3할4푼3리 37홈런을 때리더니 2015년에는 타율 3할8푼1리 47홈런이라는 한국 야구 사상 가장 압도적인 시즌을 만들어낸다. 이덕분에 그는 비우승팀임에도 MVP를 수상했다. 2016시즌에도 40홈런을 친 테임즈는 한국에서 3년 사이 완벽하게 다른 선수가 됐다.

한국에서 3년간 280만달러를 받았던 테임즈는 2017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와 3년 1500만달러의 대박 계약을 터뜨렸다.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했던 선수가 한국에서 3년을 보내고 170억원짜리 잭팟을 터뜨린 것이다.

테임즈는 “한국에서 생활하며 아무 공에 스윙하기보다 공을 고르는 법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지루했지만 집에서 매일같이 타격연습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며 “이전보다 덜 감정적이고 더 성숙해졌다”고 한국 생활을 회고하기도 했다.

테임즈는 2017시즌 메이저리그에서 31홈런을 치며 성공시대를 열었고 2018시즌도 96경기에 출전하며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한국서도 실패했던 그라피테, 분데스 득점왕에 브라질 대표 되다

2004년 K리그 안양LG(현 FC서울)에 ‘바티스타’라는 이름의 브라질 외국인 선수가 뛰었다. 조광래 감독(현 대구FC 사장)이 야심차게 데려와 등번호 10번까지 내줬지만 9경기에서 한골도 넣지 못하고 반시즌만에 방출됐다.

이 선수가 나중에 2008~2009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 소속으로 25경기 28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올해의 선수에 오른 것은 물론 2010 컨페드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 국가대표로까지 뛴 그라피테다.

당시 조 감독은 “물건이다 싶어 영입했지만 K리그 외국인 시스템은 6개월~1년밖에 기회를 줄 수 없는 고질적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에두, 모따 등 K리그를 거친 외인들이 유럽 명문클럽에서 뛴 사례도 있지만 그라피테만큼 성공을 거둔 일은 35년 한국 프로스포츠 외국인 역사에 없다.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한 그라피테지만 한국에서의 실패가 이후 그의 축구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