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한자의 한 일(一)자를 제대로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먹물이 묻은 붓끝이 한지에 닿자마자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히 옆으로 그어 글자의 끝에서 붓을 거두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붓을 잡은 손에 힘이 너무 가거나 너무 없으면 붓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획이 비틀비틀하거나 일관성이 없어진다. 머뭇거림 없이 한순간 제꺽 써야 하는데 마음대로 안 된다.

획을 긋거나 점을 찍는 다양한 방법을 운필법(運筆法)이라 한다. 서예는 이것을 터득해 자기화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글씨를 단숨에 쓰는 일필휘지(一筆揮之)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나 할 수 있다.

골프의 스윙도 서예와 흡사하다. 일정 수준 운필법을 익혀야 글을 쓸 수 있듯 스윙의 기본을 제대로 익혀야 올바른 스윙을 할 수 있다.

서예에서는 한 획을 쓸 때 기필(起筆) → 송필(送筆) → 수필(收筆)의 과정을 거친다. 쉽게 말해 붓을 움직여 끌고 나가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단박에 골프의 백스윙 → 다운 스윙 → 팔로우 스윙이 떠오른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같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서예의 대가들이 일필휘지로 글자를 쓰듯 골프의 고수들 역시 일필휘지하듯 스윙을 한다. 대가의 붓은 망설임이나 머뭇거림 없이 물 흐르듯 움직인다. 골프 고수의 스윙 역시 옹이 없이 거의 한 동작처럼 이뤄진다.

서예 대가의 일필휘지나 골프 고수의 옹이 없는 스윙을 검술에 비유하며 단칼에 베는 것이다.

무림의 고수들은 칼을 써야 할 상황이 되면 전광석화처럼 칼을 쓴다. 언제 칼을 뽑았는지, 언제 상대를 베었는지 알아채 겨를 없이 찰나에 이뤄진다. 칼집에 칼을 넣는 동작만 눈에 들어온다. 일필휘지의 칼이다.

조선시대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형 집행수를 ‘망나니’라 한다. 말과 행동이 막돼먹어 나쁜 짓을 일삼은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변했지만 분명 칼질로 밥을 먹고 사는 공복이었다.

사극에 등장하는 망나니는 사형수의 목을 내리치기 전에 입에 머금은 물을 뿜어내며 한바탕 칼춤을 춰 사형수의 혼을 빼놓은 뒤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을 벤다.

망나니가 사형수의 목을 베기 전에 입에서 물을 뿜고 칼춤을 추는 것은 사형수의 혼을 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망나니 자신의 두려움 혹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루틴(routine)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망나니가 자신의 칼질에 대해 두려움이나 죄스러움 같은 잡념이 끼어들면 단칼에 사형수의 목을 베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단칼에 사형수의 목을 베지 못하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 불상사는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

사형 집행 전의 망나니의 이런 루틴은 긴장감, 죄책감, 망설임 등의 잡념을 없애기 위한 예비동작인 셈이다. 망나니의 루틴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티잉 그라운드에 설 때는 물론 샷이나 스트로크를 할 때마다 잡념에 휩싸인다.

혹시 실수하면 어쩌나, 내가 정한 방향이 틀리진 않을까, 어드레스를 제대로 섰나 등등의 의문과 걱정, 동반자의 멋진 샷을 따라잡겠다는 욕심, 지난 홀의 실수를 단번에 만회하겠다는 과욕, 심지어 연습장에서 새로이 익힌 타법, TV 레슨프로나 골프지침서에서 접한 것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혼미해지기 마련이다.

이래서는 일필휘지, 단칼 같은 샷은 나오지 않는다.

‘마음을 비워라’는 고수들의 충고는 바로 일필휘지의 샷, 단칼 같은 샷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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