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디 오픈 때 미국의 레오 디젤(Leo Harvey Diegel, 1899~1951)이란 선수는 60cm의 퍼트만 넣으면 우승하는 상황에서 몸이 돌처럼 굳어 겨우 볼을 20cm밖에 굴리지 못했다. PGA투어 30승을 포함해 프로통산 37승을 올린 디젤은 이 짧은 퍼팅 실수로 메이저 우승 기회를 놓쳤다.

퍼팅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말할 때 디젤의 이 경우가 자주 인용된다. 그는 그때의 체험을 살려 기술과 심리의 양면에서 퍼팅의 이상세계를 해부한 멋진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퍼팅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서툴러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퍼트할 때 “너무 생각하지 말라”고 단언하며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언듈레이션(그린의 굴곡)이 어느 만큼인가, 잔디의 종류, 그 밀도, 그리고 잔디의 성질, 잔디가 어디로 누웠는가, 언제 비가 왔고 물을 뿌렸는지, 바람에 의해 습도는 얼마나 줄었는가, 홀컵은 언제 뚫었는가, 풀이 6시간에 1mm씩 자라는 것을 감안해 강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강하게 칠 것인가 그냥 굴릴 것인가, 오르막인가 내리막인가, 마운드의 경사는 어느 정도인가 등 이것저것 파고들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고 디젤은 말한다.

사실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고뇌와 미망이 이어지는 것이 퍼팅을 앞둔 골퍼의 마음이다. 상황판단이 완벽하게 되었다고 해도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실제의 스트로크를 마음먹은 대로 해낼 수 있는 실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에 앞서 심리적 압박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큰 난제로 솟아오른다. 백사장에 파도가 밀려들 듯 퍼팅 직전 온갖 망상이 골퍼에게 달려든다. 머리는 혼란에 빠진다. 일종의 공포상태에 휩싸인다. 시간을 끌수록 양다리에는 긴장과 불안이 마치 나무 위의 새집을 노리는 뱀처럼 기어올라 몸통을 감고 중추신경을 마비시킨다. 그런데 머리는 어떻게든 치라고 명령한다. 마음은 조급해진다. 별수 없이 불안에서 해방되고자 ‘에라 모르겠다!’하고 쫓기듯 스트로크를 해버리게 된다.

디젤은 이때를 ‘무아무중(無我無衆), 가벼운 실신상태’라고 묘사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입스(Yips) 증후군이 발동하는 상태다. 그래서 “어렵게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괴력을 지닌 것이 바로 퍼팅”이라는 디젤의 토로에 모든 골퍼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1920년 디 오픈 우승자 조지 던컨(George Duncan, 1883~1963, 스코틀랜드)은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법”이라며 “이때는 차라리 빨리 미스하라!”고 충고한다. 볼에 다가서 어드레스한 뒤 라인을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공을 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는 “코스에서 시간 끄는 인간은 사회에서도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했다. 프로 통산 22승을 올린 그는 ‘프로의 프로(The pro’s pro)’라는 닉네임이 붙을 만큼 훌륭한 스윙을 자랑했다. ‘빨리 치는 던컨(Fast play Duncan)’이란 별명을 가진 그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겁쟁이다. 함께 치는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고 빨리 침으로써 공포나 망설임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빨리 샷을 한다”고 대답했다.

미국의 전설 진 사라젠(Gene Sarazen, 1902~1999)도 거의 치고 뛸 정도로 빨리 샷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구성(球聖)’ 바비 존스와 같은 시대에 지금의 4대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US오픈, 디 오픈, PGA챔피언십을 석권,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PGA투어 통산 39승을 포함해 프로 통산 49승을 올렸다. 특히 그는 퍼팅의 귀재로 ‘무신경(The Insensible)’이란 별명이 붙었다. 퍼팅할 때 아무 거리낌 없이 볼에 다가서 스트로크하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퍼팅을 앞두고 망설이고 주저하고 의심하고 걱정하는 주말골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검투사 세리머니의 원조인 푸에르토리코의 치치 로드리게스(Chi-chi Rodrigez, 1935~1998)도 퍼팅을 포함한 샷 직전의 강박관념에 몹시 시달렸다고 한다. 타고난 코미디언 기질의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로, PGA투어 8승과 시니어투어 22승 등 프로통산 37승을 올린 그가 어느 날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잘 아는 의사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

“큰일이야, 몸이 굳고 마음도 초조해지고 말이야. 이래서는 티오프조차 못 할 것 같아. 긴장을 풀 진정제라도 줄 수 없소?” 의사가 진정제를 주자 그것을 삼키고 첫 홀에서 멋진 티샷을 날렸다. 18홀을 끝낸 로드리게스는 의사에게 “어이 의사 친구, 아까 그 약은 기막히게 잘 들었어. 84타를 쳤는데도 이렇게 행복한 기분에 젖기는 처음이거든.” 2012년 4월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 홀에서 30cm 정도의 짧은 우승 퍼팅을 놓치고 유선영(33)과의 연장전에서 패한 김인경(31)은 이후 ‘비운의 골퍼’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락을 헤매다 5년여 인고의 기간을 지나서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골프에서 강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퍼팅은 골프에서 또 하나의 다른 게임이다”이란 말이 있는가 보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주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해 신청 가능합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