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지난달 30일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의 레알레 아레나에서 열린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에서 슈팅이 빗나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EPA연합

최근 유럽 축구 이적시장에서 이강인(발렌시아)의 이적설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유럽 다수의 클럽이 이강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지난 5일 마감된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강인의 이적은 없었다.

2022년 6월까지 발렌시아와 계약된 이강인은 이번 여름 이적 시장 마감을 이틀 앞둔 시점까지도 구단이 제시한 재계약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강인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있는 클럽들의 오퍼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로 팀을 꾸리고 싶어 하는 발렌시아의 피터 림 구단주는 이강인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 어린 선수들 기용에 적극적인 하비에르 그라시아 감독을 선임하며 이강인에게 출전 기회를 늘려줄 만큼 아꼈다.

이강인은 그라시아 감독 체제에서 선발로 입지를 굳히는가 했다. 그러나 기류는 급변했다. 이강인은 팀내 주장과 불화설이 휩싸이며 선발과 벤치를 오가는 신세가 됐다. 그라운드 안팎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여름 이적 시장 막판까지 이적 의사를 나타냈던 이강인이다. 하지만 이적 소식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라운드 안팎 ‘이상 기류’…재계약 의문 품었던 이강인

이적 시장 마감 이틀 전인 지난 3일. 스페인 매체 수페르데포르테는 “이적 시장 마감이 코앞인데 이적 제의를 받은 이강인이 발렌시아의 재계약에 의문을 품고 있다”라면서 “금액적인 이유가 아닌 스포츠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번만큼은 적극적으로 이적 의지를 내비친 이강인이다. 그라운드 안팎의 ‘이상 기류’가 이강인의 이적 의지에 불을 지핀 것으로 보인다.

그라시아 감독이 올 시즌 지휘봉을 잡으며 선발로 입지를 굳혀가던 이강인은 주장 호세 가야와 ‘키커 논란’에 휘말렸다. 스페인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일부 따가운 시선이 이강인을 감쌌다. 공교롭게도 이강인은 이후 경기에 교체로 출전하는 횟수가 늘었다. 상황은 이렇다. 지난달 20일 라리가 2라운드 셀타비고전에 나선 이강인은 전반 34분 주장 호세 가야와 프리킥 기회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강인은 발렌시아의 세트피스를 주로 도맡아왔고, 이날 프리킥 기회도 본인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강인이 키커로 나서기 충분했다.

그러나 전담 키커도 아닌 주장 가야가 권위를 앞세워 자신이 차겠다고 주장했고, 둘 사이에 언쟁이 오갔다. 결국 프리킥 키커로 가야가 나섰다.

이 장면은 그대로 중계 카메라에 잡혔고, 시즌 전 왕따설에 속앓이했던 이강인은 주장과의 불화설에도 휩싸였다.

이강인과 동년배인 제이든 산초, 엘링 홀란드(이상 도르트문트) 등은 2020시즌 ‘골든보이’ 후보에 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20세 이하 월드컵 ‘골든볼의 사나이’ 이강인의 성장세는 그해 비해 다소 더디다.

어린 선수들은 뛰고, 정신적으로도 평온해야 빠르게 성장한다. 이를 알고 탈출을 시도했던 이강인이지만, 이번에도 발렌시아와 동행하게 됐다.

‘믿을 구석’이었던 감독마저…

발렌시아가 그간 이적설이 끊이질 않던 이강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르시아 신임 감독이 부임하면 ‘출전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이강인은 지난 시즌 라 리가 등 모든 대회를 통틀어 24경기 출전에 그쳤고, 그중 단 6경기만 선발 출전했다.

약속은 시즌 초반 지켜졌다. 실제로 이강인은 지난 7월 가르시아 감독이 발렌시아의 사령탑이 되자 비시즌 전경기에 출전했다. 심지어 레반테와의 연습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자신을 믿어주자 이강인은 2020-2021 라리가 개막전에선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4-2 승리로 이끌었다. 주장과의 ‘경기장 내 언쟁’ 탓인지 몰라도 상황이 변하긴 했지만, 가르시아 감독 부임 이후 잠깐 상황이 나아졌던 이강인이다.

그러나 이강인은 ‘믿을 구석’이었던 그라시아 감독마저 잃게 될 지경이다. 그라시아 감독은 최근 선수 영입 ‘0’에 불만을 표시하며 구단에 “사임하겠다”라고 엄포를 놨다.

발렌시아는 선수단 리빌딩에 힘을 쏟고 있다. 올 시즌 직전 공격의 핵심이자 주장이었던 다니 파레호를 떠나보내고, 프랑시스 코클랭, 로드리고 모레노, 페란 토레스 등 주축 선수들과도 이별했다. 유스 출신 선수들로 팀을 꾸리겠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서 구단과 가르시아 감독 간에 이견이 발생했다. 구단의 리빌딩 계획에는 동의한 가르시아 감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8명씩이나 내보내고 단 한 명도 영입하지 않은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다. 결국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가르시아 감독은 자진 사임을 고려하고 있다.

구단이 갈등의 골을 키운 셈이다. 가르시아 감독은 2부로 강등된 왓포드의 에티엔 카푸에, 제라르 데울로페우 등의 영입을 원했다. 스타 선수를 원한 것이 아닌, 비교적 저렴한 선수들을 원했지만 구단은 영입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구단이 휘청거리자 림 구단주가 발렌시아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외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팀, 구단 분위기가 엉망진창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강인이 발렌시아에 남게 됐다. 어린 선수는 뛰어야 하지만, 이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강인이다. 선발 경쟁에서 확실한 힘을 받지 못하고 동료와의 불화설, 자신에게 출전 기회를 줬던 감독의 자진 사임 움직임까지. 이 모든 것이 앞길 창창한 19살 축구선수 이강인 앞에 놓인 안타까운 현실이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