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영 국가대표 선발대회 남자 자유형 100m결승에서 48초25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한 황선우(왼쪽), 제 11회 전국유소년역도선수권대호에서 우승한 박혜정.
매번 역도와 수영에서 눈에 띄는 선수가 나올 때마다 붙는 수식어가 ‘제2의 장미란’, ‘제2의 박태환’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장미란과 박태환의 이름은 여전히 종목 그자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2020년 현재, 정말 장미란과 박태환의 이름을 수식어로 될만한 ‘될성 푸른 떡잎’이 나왔다. 단순히 잠재력 때문이 아니다.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대가 더 크다.

‘제2의 장미란’ 박혜정

안산공고 박혜정(17)은 장미란이 고2 때 들던 무게를 중3 때 이미 들어버렸다. 그리고 주니어 대표인 이선미가 19세 때 작성한 한국주니어신기록(280kg)도 17세에 넘어섰다. 장미란이 고3 때 세운 기록(260㎏)을 고교 진학 후 처음 치른 대회(267㎏)에서 뛰어넘은 박혜정은 그야말로 ‘장미란 키즈’다. 유튜브에서 장미란의 역도 시합을 보고 흥미가 생겨 역도에 입문했다는 박혜정은 중학교 1학년의 늦은 시작에도 재능은 남달랐다. 다이어트에 애를 먹던 아이에서 그 체격을 이용해 역도를 하니 단숨에 한국 역도계가 흔들렸다. 17세의 나이로 인상 121㎏, 용상 160㎏, 합계 281㎏을 넘겨 한국 주니어 신기록을 2년 앞당긴 박혜정은 스스로 목표했던 ‘인상 120kg-용상 160kg-합계 280kg’를 초과달성했다. 중등부-고등부 한국신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박혜정을 보고 미국 유학 중인 장미란은 귀국해 자신의 바통을 이을 재목을 격려하고 안아줬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중국의 멍쑤핑은 인상 130㎏, 용상 177㎏, 합계 307㎏으로 금메달을 땄다. 281kg을 드는 박혜정의 기록은 세계 무대와 차이가 있지만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제2의 박태환’ 황선우

지난 18일 경영 국가대표 선발전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서 48초25의 기록이 나왔다. 2014년 당시 26세였던 박태환이 48초42로 한국신기록을 세운 것이 6년만에 깨진 것. 주인공은 바로 한국체고의 17세 소년 황선우. 미국 수영 전문 매체 스윔스왬은 `아시아 선수 중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라며 황선우를 주목했다. 단순히 100m만 잘하는 게 아니다. 수영계에서는 200m를 더 잘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200m에서는 웬만한 국가보다 올림픽 금메달이 많은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18세 때 세웠던 1분45초99의 기록을 1분45초92로 0.07초 넘어섰다. 당시 18세였던 펠프스의 기록을 수영 최강인 미국에서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도 못 깨고 있는데, 이를 17세 황선우가 앞지른 것. 200m 1분45초92의 기록은 한국 수영선수로는 최초로 주니어 세계기록 보유자를 만든 대기록이기도 하다. 자는 시간 빼고는 훈련과 유튜브에서 수영 영상만 찾아본다는 황선우는 2018년부터 2년간 개인기록을 무려 6초나 단축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박태환을 제외하곤 그 어떤 한국선수도 자유형 100m와 200m에서 올림픽 기준 기록을 넘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작 17세인 황선우가 박태환 이후 ‘2호’선수가 됐다. 황선우는 신체 조건(186㎝·72㎏)이 17세 시절 박태환(181㎝·68㎏)보다 좋다. 황선우 스스로도 “박태환 형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자신감에 차있다.

중요한 건 현재 아닌 미래

역도와 수영, 아무래도 국내에서 관심도가 떨어지는 종목에서 다시 큰 관심을 받는 유망주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장미란과 박태환이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큰 인기몰이를 했고 단순히 아시아에서 잘하는 수준을 넘어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며 국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계자 없이 이대로 다시 도태되는가 했지만 이렇게 장미란-박태환의 어릴때를 뛰어넘는 유망주들이 나왔다는 점은 희망을 품게 만든다. 중요한 건 현재가 아닌 미래다. 두 선수 모두 이른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니 우쭐한 나머지 스스로 현재에 안주할 수 있다. 너무 일찍 주목을 받은 것이 오히려 도전 의지를 꺾는 화근이 되면서 사라진 수많은 유망주를 수없이 봐온 한국 체육계다.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은 물론 코치진, 협회의 지원 등 외부적 요인도 두 선수가 정말 그저 ‘제2의’ 라는 수식어만 붙다 끝날지, 아니면 그 이름 자체로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지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