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이보다 더 극적인 대결을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지난 12월 18~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GC(파72)에서 열린 LPGA투어 2020시즌 마지막 대회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의 고진영(25)과 김세영(27)의 대결은 보기 힘든 명승부였다.

고진영이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고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LPGA '올해의 선수' 김세영.AFP연합뉴스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세계랭킹 1, 2위인 고진영과 김세영은 세 라운드를 함께 플레이하며 경쟁을 벌였다.

보통 경기에선 우승 후보자들이 마지막 라운드에서나 같은 조 혹은 앞뒤 조에 편성돼 경기하기 마련인데 두 선수는 2, 3, 4라운드를 같은 조로 경기했다. 매우 드물거나 전례가 없지 않을까 싶다. 같은 나라 선수끼리 3일 동안 마지막 조에서 우승 경쟁을 벌인 것도 드문 일이다.

두 선수의 경기 스타일도 대조적이어서 흥미진진했다. 고진영이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하게 자신의 경기를 펼치는 스타일이라면 김세영은 경기 흐름에 따라 들소처럼 달려드는 야성(野性)의 골퍼다. 고진영이 순풍에 요트를 타는 모습이라면 김세영은 거친 파도를 타는 서퍼(surfer)에 가깝다.

1라운드에선 디펜딩 챔피언 김세영이 5언더파로 공동 3위로 한국 선수 중 순위가 가장 높았다. 고진영은 4언더파로 공동 6위.

고진영과 김세영이 한 조로 묶인 2라운드부터 순위가 요동쳤다. 고진영이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건져 이틀 합계 9언더파 단독 1위에 올랐다. 시즌 18개 대회 중 4개 대회만 참가하고도 상금왕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난 시즌 고진영은 LPGA투어에서 상금 1위와 올해의 선수, 평균 타수 부문을 휩쓸었었다. 김세영과 렉시 톰슨이 8언더파로 1타차 공동 2위로 추격했다.

3라운드에선 김세영이 저돌적으로 나서 5타를 줄여 합계 13언더파로 단독 1위로 나섰고 고진영이 12언더파 단독 2위로 추격했다. 김세영은 한때 3타 차이로 리드했으나 고진영이 뒷심을 발휘하며 1차 차이로 간격을 좁혔다.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 속에서 펼쳐진 명승부였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펼쳐진 고진영의 역전극은 LPGA투어 역사에 남을 만했다.

고진영에 1타 앞선 단독 선두로 출발한 김세영이 10번 홀까지 보기 2개 버디 하나로, 고진영은 버디 2개, 보기 하나로 13언더파로 공동 1위로 맞섰다.

승부의 분수령은 11번 홀(파4). 김세영의 티샷은 오른쪽으로 러프로, 고진영의 티샷은 벙커로 날아갔다. 여기서 김세영은 한 타를 잃고 고진영은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1타 차 단독 1위에 오른 고진영의 질주가 시작됐다. 고진영은 후반에만 버디 5개를 보태 합계 18언더파로 13언더파에 그친 김세영을 5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상하 흰색 옷을 입고 나온 고진영의 경기는 바람에 한껏 부푼 요트의 돛처럼 우아하면서도 거침없었다. 김세영이 빨간 바지를 역전을 노렸으나 순풍에 돛단 고진영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고진영은 지난해 8월 캐나다 퍼시픽 여자오픈 이후 약 1년 4개월 만에 LPGA투어 통산 7승을 달성하면서 110만달러(약 12억원)의 우승상금을 보태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올 한해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하는 CME 글로브 레이스 챔피언도 차지했다.

고진영은 코로나 여파로 11월에야 LPGA투어 대회에 출전, 전체 18개 대회 중 4개 대회만 치르고도 세계랭킹 1위를 지키면서 상금왕, CME 글로브 레이스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김세영은 호주의 해나 그린과 함께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강력한 올해의 선수 후보였던 박인비(32)를 제치고 올해의 선수를 차지, 아쉬움을 달랬다. 평균 타수 부문에서는 김세영이 규정 라운드 수를 채우지 못하는 바람에 시즌 최저 타수를 기록하고도 이 부문 1위에게 주는 베어 트로피는 대니엘 강(미국)에게 돌아갔다.

LPGA투어 측은 코로나19 때문에 대회가 축소되는 바람에 신인왕은 선정하지 않았다. 대신 올해 출전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2021시즌에도 그대로 시드를 유지하도록 했다.

고진영의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올해 7승을 합작, 6승의 미국을 제치고 올해 LPGA투어 최다승국이 되어 2015년부터 6년 연속 최다승국 1위를 지켰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