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 인종 평등’ 외침에도 제자리걸음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종차별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먹잇감이 됐다. 그동안 종목을 불문하고 인종차별 철폐 운동이 일어나며 잠잠해지는 듯싶었지만, 아직까지도 스포츠계는 인종차별 ‘단골 장소’다.

손흥민. 연합뉴스

손흥민은 무슨 이유로 ‘인종 차별’ 타깃에 됐나

손흥민이 인종 차별 표적이 된 이유는 지난 1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에서 나온 한 장면 때문이다.

전반 33분 손흥민의 견제를 뿌리친 맨유의 스콧 맥토미니는 문전에 있던 폴 포그바에게 공을 내줬다. 이 공을 최종적으로 건네받은 에딘손 카바니가 왼발 슈팅으로 토트넘 골망을 흔들었다. 오프사이드 트랩과 무관했던 상황이었기에 선수들은 선제골을 확신하며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이는 골로 기록되지 않았다. 맥토미니가 선제골 시발점 역할을 할 때 손흥민의 얼굴을 가격한 것이 비디오 판독을 통해 드러나면서 심판은 카바니의 골을 인정하지 않았다. 골이 취소되는 상황을 겪은 맨유지만 3-1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손흥민 반칙 상황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얼굴을 가격했던 맥토미니의 행동이 퇴장감이란 주장과 손흥민의 오버액션이라는 엇갈린 주장이 나왔다. 특히 솔샤르 맨유 감독이 분노했다. 그는 “심판이 명백한 오심을 저질렀다. 나도 그런 동작(옆으로 팔을 휘젓는)으로 달린다”며 열을 올렸다. 당사자인 맥토미니도 “분명 골이었다. 심판이 실수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반면 영국 BBC 패널 클린톤 모리슨은 “선수라면 달릴 때 앞으로 팔을 저어야 한다. 주심은 맥토미니를 퇴장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믿을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판정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자 영국심판기구가 나섰다. 공식 발표를 통해 “맥토미니의 행동은 명백한 파울”이라며 “맥토미니의 팔 동작은 정상적으로 달렸을 때의 자세가 아니다. 그가 부주의했다”며 친절히 이유까지 설명했다.

이번이 처음 아니다 … 매년 고통받은 손흥민

판정 논란은 삽시간에 인종 차별로 번졌다. 할리우드 액션이라 주장하는 일부 팬들은 손흥민 SNS에 찾아와 “다이빙을 멈추고 돌아가서 고양이와 박쥐, 개나 먹어라”, “원숭이”, “쌀 먹는 사기꾼” 등의 인종차별 발언을 퍼부었다.

최근 SNS상에서 EPL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이 이어지면서 손흥민은 이에 맞서는 의미로 일주일간 SNS 사용을 중단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손흥민은 인종차별 공세의 피해자가 됐다.

손흥민이 인종차별에 시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EPL 첼시전에 출전한 손흥민은 상대 선수의 가슴을 밀쳐 퇴장을 당했는데, 당시 일부 첼시 팬들은 손흥민을 보고 원숭이 흉내를 내며 조롱했다. 해당 팬은 경찰에 체포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제작한 토트넘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올 오어 낫띵)’ 예고편에서 손흥민과 언쟁을 벌이던 위고 요리스 골키퍼의 발언엔 모두 자막이 달린 반면, 손흥민이 영어로 말한 부분은 그저 ‘소리침(shouting)’으로 표기돼 인종차별 지적이 이어졌다. 논란 여파로 본편 영상에서는 손흥민의 발언이 자막 처리됐다.

손흥민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인종 차별로 고통을 받아왔다. 최소 한 번이면 다행일 정도다. 독일에서 커리어를 쌓을 때도 손흥민의 상황은 지금과 비슷했다. 오죽했으면 손흥민이 직접 방송에 나와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은 계속한다”고 털어놓으면서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그저 경기장에서 열심히 해 그 사람들(인종차별자)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해탈한 모습까지 보였다.

토트넘 홋스퍼가 SNS에 인종차별을 비판하고 손흥민을 지지하는 글을 남겼다.

빨리진 대응은 ‘그나마 위안거리’

인종차별 철폐 운동으로 인해 의식 개선에 기대를 품을 때쯤 다시 도돌이표가 되고 만다. 그때마다 희생양이 나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모두가 힘을 합쳐 ‘빨라진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은 “우리 선수 중 한 명이 혐오스러운 인종차별을 겪었다. 구단은 프리미어리그와 함께 조사를 거쳐 가장 효과적인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발빠르게 입장을 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도 최근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 표시로 SNS 활동을 중단하는 선수들의 행동을 지지한단 입장을 내며 인종차별을 뿌리 뽑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SNS 회사까지 나섰다. 인스타그램을 소유한 페이스북은 “규정을 위반한 여러 글과 계정을 삭제했다. 단호하게 조치하겠다”며 인종차별적 발언이 SNS상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며 ‘인종 차별 철폐’를 외치고 있다. 그나마 고무적인 면이다. 애초에 인종 차별이 없어야 하지만, 이미 ‘뿌리 깊은 흑역사’인 만큼 또 어떤 상황에서 피해자가 나올지 모른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즉각·강경 대응한다면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노진주 스포츠한국 기자 jinju217@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