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터와 힐만처럼

롯데 서튼 감독 임명…KIA 윌리엄스, 한화 수베로 3명으로 늘어

래리 서튼 감독.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11일 래리 서튼(51) 감독을 선임하면서 KBO리그의 외국인 감독이 3명으로 늘었다. 맷 윌리엄스(56) KIA 타이거즈 감독과 카를로스 수베로(49) 한화 이글스 감독과 함께 KBO리그에 외국인 감독 ‘삼국지’가 열렸다.

KBO리그에서 외국인 감독 3명이 공존하는 건 4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리그 역대 외국인 감독이 5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꽤나 파격적인 일이기도 하다. 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롯데)이라는 외국인 감독을 처음으로 맞았다. 이어, 2017년 트레이 힐만 감독(SK), 2020년 윌리엄스 감독, 2021년 수베로, 서튼 감독이 차례로 국내 무대를 밟았다.

5년 사이 4명의 외국인 감독이 한국땅을 밟았다. 또한 2명 이상의 외국인 감독이 함께 시즌을 치르는 것도 이번 시즌이 처음이다. 갑자기 외국인 감독이 확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맷 윌리엄스 감독.

국내 지도자 한계 느낀 구단들의 파격 선택

구단의 의도는 단순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선진야구를 경험한 외국인 감독을 사령탑에 앉혀 구단에 해당 시스템과 문화를 이식시키겠다는 의도다. 국내 지도자나 코치진으로 성장이나 리빌딩의 한계를 느낀 것도 한몫했다. 한국 야구 특유의 위계질서보단 수평적인 구조로 팀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의도다.

역대 외국인 감독들의 성공 사례도 구단들의 구미를 당길 만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부임 첫 해부터 3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하며 롯데의 기나긴 암흑기를 청산한 바 있고, 힐만 감독도 부임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팀에 8년 만의 트로피를 안겼다. 두 명뿐이지만 전직 KBO리그 외국인 감독의 성공은 100%인 셈이다.

이들은 단순히 성적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팀 체질까지 바꿔놓았다. 로이스터 감독은 ‘노 피어(No fear) 야구’로 팀 분위기를 바꿔 놓았고, 공격적인 야구로 롯데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힐만 감독도 팀을 홈런 군단으로 변모시킨 것은 물론, 끊임없는 소통으로 선수들과 코치진의 신뢰를 쌓아가며 당시 SK를 원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최근 KIA와 한화, 롯데가 차례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세 감독 모두 미국 메이저리그 등에서 감독 혹은 코치 경험이 있는 지도자들이다. 구단은 그들의 경험을 발판으로, 국내 지도자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팀을 재건해주길 바라고 있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파격 그리고 파격, 외국인 감독들이 불러온 변화

외국인 감독답게 파격적인 시도나 신선한 움직임도 많았다.

KIA의 리빌딩이라는 중책을 맡은 윌리엄스 감독은 외국인 감독답게 베테랑-신인이라는 편견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선수들을 바라보며 경쟁 구도와 동기부여를 자연스럽게 안착시켰다. 여기에 탁월한 소통과 믿음의 야구까지 가미해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윌리엄스 감독의 지휘 하에 확 젊어진 KIA는 지난해 5할이 넘는 승률(0.507)을 기록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이후 KIA는 윌리엄스 감독이 1,2군을 모두 관리해 성적과 육성을 함께 주도할 수 있는 1,2군 통합 시스템으로 팀을 개편하기도 했다. 윌리엄스 감독과 마찬가지로 한화의 리빌딩 임무를 맡은 수베로 감독은 시즌 초반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며 젊은 선수들만 남은 한화는 미흡한 경험을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로 상쇄시켰다.

또 수베로 감독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한 야수의 마운드 등판을 주저없이 실행하며 새로운 분위기를 이끌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인데다 메이저리그 불문율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도로 신선한 분위기를 이끌며 젊은 한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수베로 감독이다. 롯데의 서튼 감독은 다른 두 감독과 상황은 다르다. 감독 교체로 사령탑에 앉은 케이스고, 다른 두 감독과는 달리 한국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있는 데다, 지난 1년 동안 롯데 2군 감독으로서 한국 야구의 지도자 경험도 쌓아 왔다.

하지만 서튼 감독 역시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신인 선수들이나 어린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는 파격 라인업을 꺼내들기도 하고, 마무리 투수의 8회 기용이나 고정 타순이었던 선수들의 타순 이동 등 기존의 틀을 깨는 시도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다. “결과보다는 방향성”이라는 서튼 감독의 기조 아래 분위기를 바꿔가고 있는 롯데다.

외국인 감독 삼국지, 그 결말은?

다만 시즌 초반 이들의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20일 현재 KIA와 한화, 롯데는 8, 9, 10위 최하위권에 나란히 머물러 있다.

KIA와 한화는 리빌딩의 여파를 여실히 느끼고 있다. 선수들은 젊어졌지만 선수층이 얇아 부상 및 부진 선수들이 나왔을 때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막 감독 임기 열흘을 넘긴 롯데도 선수 면면은 화려하지만 선수층이 얇다는 지적 하에 고전을 거듭 중이다. 하지만 세 감독 모두 팀 리빌딩의 임무를 맡았기에 당장의 성적보다는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속단은 이르다. 다행히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받으며 조금씩 경험을 쌓아가고 있고, 외국인 감독들의 파격 기용과 다양한 선수들을 활용한 신선한 시도들도 선수단에 동기부여로 작용하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리빌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써내려갈 ‘삼국지’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구단들의 기대대로 옛 로이스터와 힐만처럼 외국인 감독 성공신화를 계속 써내려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승재 스포츠한국 기자 upcomi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