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 하면 건강함의 상징이다. 탄탄한 몸과 체격,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일반인들에겐 ‘건강’ 그 자체로 대변된다. 이렇게 건강으로 대표되는 이들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면 더 충격이 크다. 특히 경기 도중 불상사로 쓰러진다면 그 충격은 배가 된다.

유로 2020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져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준 덴마크 축구대표팀의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불현듯 사고는 찾아올 수 있다. 강인한 체력의 운동선수라도 막을 수 없다.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크리스티안 에릭센(29)이 12일(현지시간) 코펜하겐 파르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20) 핀란드전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AFP

전 세계가 놀란 에릭센의 실신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덴마크와 핀란드의 유로 2020 B조 1차전 경기. 전반 42분 스로인을 받기 위해 달려가던 덴마크 미드필더 에릭센이 갑자기 그라운드 위에 쓰러진다.

손으로 보호하는 동작도 없이 그대로 머리부터 앞으로 쓰러진 에릭센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고 곧바로 선수들과 주심이 의료진을 불렀다.

갑자기 찾아온 심정지 상황이었다. 눈을 뜬 채 쓰러진 에릭센의 상황은 위급했고 다행히 덴마크 주장 시몬 키예르가 혀가 말려들어가 기도가 막히지 않게 막았다. 이때 의료진이 들어와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해 골든타임은 지켰다.

에릭센이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덴마크 선수들은 관중들이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게 둘러쌓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고 에릭센의 아내도 경기장까지 내려와 오열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

다행히 에릭센은 의식을 되찾았고 병원에서 회복 중이다. 상황은 심각했었다. 덴마크 팀닥터는 “심정지였고 사망상태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빠른 응급처치 덕에 살아난 것이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1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회복을 알렸다. 에릭센 인스타그램 캡처

가슴 아픈 한국의 사례들

전문가들은 이번 에릭센의 심정지 원인을 부정맥으로 보고 있다. 부정맥은 심장박동이 정상(분당 60~100회)보다 느리거나 빠른 경우, 혹은 불규칙해지는 증상. 혈액을 제때 보내야 하는데 그 신호가 너무 느리거나 빠르면 갑자기 문제가 생겨 쓰러지는 것이다. 돌연사 대부분이 부정맥일 정도다.

오히려 운동선수들이 너무 건강하기 때문에 부정맥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지구력이 필요한 스포츠 선수들은 좌심실의 용적이 비정상적으로 큰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부정맥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 평소 맥박을 체크하고 심전도 검사를 받는게 중요하지만 에릭센처럼 메디컬테스트 등에서 전혀 이 증상이 없었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국내에도 부정맥으로 인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2000년 KBO리그 경기 도중 쓰러진 롯데 임수혁도 원래 부정맥이 지병으로 있었다. 당시 응급처치에 대한 상식이 낮았던 때라 임수혁이 쓰러지고 응급처치가 부족했고 결국 이는 임수혁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됐다.

결국 임수혁은 10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2010년 향년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임수혁 사건은 한국 스포츠에서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사건이었다.

2011년 제주 유나이티드와 대구FC의 K리그 경기 도중 공격수 신영록이 부정맥으로 쓰러졌고 그나마 빠른 응급대처 덕에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재활 과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너무 많은 경기 출전도 원인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경기수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릭센도 당장 2020~2021시즌에 50경기 가까이를 뛰었고 에릭센 같은 세계 정상급 레벨의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한 시즌 많으면 50~60경기, 국가대표로도 10경기 이상을 소화한다.

유럽 5대 리그가 대부분 한 시즌에 38경기, 여기에 FA컵 대회가 결승까지 가면 5~10경기 내외,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등 유럽대회는 15경기 내외로 뛴다. 잉글랜드는 리그컵 대회도 있다. 손흥민도 2020~2021시즌 토트넘 소속으로만 51경기나 뛰었다. 이렇게 경기수가 많다 보니 일주일에 한 경기는커녕 3일에 한 경기씩 하는 혹독한 일정으로 짜여진다. 게다가 소속팀 경기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경기도 3월, 6월, 9,10,11월 공식 A매치 데이가 있다. 여기에 유로 대회나 코파 아메리카 같은 메이저 대회가 열리면 6~7월은 통째로 대표팀에서 보낸다.

심지어 유럽축구연맹(UEFA)은 돈벌이 수단으로 기존 유로 대회가 있음에도 네이션스리그까지 만들어 더 치열한 경쟁과 많은 경기수를 강요하고 있다. 톱레벨의 선수들은 더 경쟁적으로 많이 뛰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챔피언스리그나 네이션스리그 등은 참가팀 숫자, 경기수를 늘리는 방안을 내놓으며 돈벌이에 혈안이다. 선수들은 혹사를 당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위험한 불의의 사고에 더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선수협회의 주장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더 많이 보고 싶은 것도, 이를 이용해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선수들의 건강과 생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