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요? 넉넉해서 매력적이죠"

[아름다운 그녀] 산악구조대원 류현경
"산이요? 넉넉해서 매력적이죠"

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친구다. 생전 처음 옷깃을 스치는 사람일지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물 한 모금이라도 나눠 마시게 된다. 산에 같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된 것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넉넉함을 산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을 찾는 이들은 “산이 있기에 산에 오른다”고 한다.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치 않다.

온통 매력 덩어리인 산이지만 그 곳에는 미처 생각지 못하는 위험도 있다. 산이 뿜어내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잠시 자신을 놓는 순간 긴급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도 바로 그 때, 우리는 산을 지키고, 산을 찾는 사람들을 돌보는 산악 구조대를 떠올리게 된다.


나보다는 산을… 사람을…

산악구조는 그저 산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극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고, 생사를 넘나드는 담력도 있어야 한다.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러나 그 곳에도 여자가 있다. 전국의 산악구조대원 600여명 가운데25명이 여성 산악구조대원이다. 이 중 ‘대구 산악구조 연맹’ 에서는 올해 처음 여성으로만 조를 구성해 구조대원을 만들었다. 이 여성구조대원을 이끄는 조장은 올해로 구조대원 경력 3년째인 류현경씨(34세).

암벽등반은 물론, 산행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주변의 평판이다. “일의 특성상 여성대원이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여성대원이 남성대원보다 더 나은 점도 적지 않지요.” 극한 상황에 빠져있던 조난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구조 후 조치를 하는 데 있어 여성의 섬세함이 필요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산악구조대원이 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드시 각 산악회 회장의 추천을 받아야 해요. 추천을 받은 후에는 암벽 등반과 기타 구조대원으로서의 자질을 심사하여 선발합니다.”류씨의 경우에는 10년 가까이 암벽등반을 해 온 터라 체력이나 실력 면에선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구조대원으로써의 자질. 구조대원은 일종의 봉사이기에 나보다는 산을, 그리고 사람을 우선시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일단 산악구조대원으로 선발 된 후에는 개개인의 산악회 일정보다 구조대의 활동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고 발생시 즉시 현장에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산악회 일정을 잡았다가, 구조대 일정 때문에 번복한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래서 류씨는 요즘 개인 산악회 활동은 당분간 접고 있다.


산은 가꾸고 사람도 지키고

“첫 여성조의 조장으로써 다른 남성조원들에게 뒤지지 않는 여성대원을 만들고 싶어요.” 올해의 목표를 이렇게 밝힌 류씨는 요즘 자신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대원들과 뭔가 색다른 산악구조방식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산행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산을 가꾸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산악 사고가 매일 발생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산을 가꾸고 있어요.” 말하자면 이는 겨울 동안 앓은 산의 보수작업을 말한다. 요즘 같은 해빙기엔 기본적으로 암장보수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는 암벽등반 시즌이 시작되기 전 확보물(밧줄이나 사다리)의 안전 유무를 확인하고 기타 암벽장비를 교체하는 작업으로 년중 계속해서 실시 된다.

산악 사고는 대부분 실족으로 인한 골절 환자가 많기에 암장보수는 아주 중요한 산악구조 예방책이라 할 수 있다. 암벽등반이 주특기인 류씨에게 암장보수작업은 당연히 가장 자신 있는 일이다. 주말의 모든 개인적인 스케쥴은 뒷전으로 제쳐뒀다.

“제가 아직 결혼을 안 했으니 집에선 걱정이 많죠. 우선 남 때문에 몸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고, 또 주말도 모자라 툭 하면 산에서 사니까요.”하지만 류씨의 표정에는 조금의 걱정이나 불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사고 예방 차원에서 류씨가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일은 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다. “GPS(위성 항법 장치)로 특정한 지형이나 지물, 갈림길등의 좌표를 수집하고 있어요. 정확한 자료가 모아지면 많은 산을 찾는 泳宕茸錤?공개하려고 해요.” 이런 데이터가 자료로 축적되면 산행시 길을 잃거나 조난을 당했을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조난자가 바로 옆에 있는 바위나 지형 지물을 얘기하면 구조대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 지점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를 완성하기 위해선 모든 대원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고, 대구 인근 산의 모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선 시간의 여유와 세심함 또한 있어야 한다.

“천천히, 하나 하나씩 하는 거죠. 산에 있다보면, 여유를 배워요. 사람을 대할 때나 사람을 기다릴 때…. 그러다 보니 산을 찾는 사람들이 다 좋아지게 되었어요. 산을 찾는 사람이 좋아야 사람을 구조할 수 있지 않겠어요. 보람보단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 이 일로 행복해요.”

황경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1 14:20


황경란 자유기고가 seasky72@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