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시큼한 사랑과 실연의 맛젊은 세대의 인스턴트식 사랑의 또다른 표현과 의미

[문화 속 음식이야기] 영화 <중경삼림> 파인애플 통조림
달콤 시큼한 사랑과 실연의 맛
젊은 세대의 인스턴트식 사랑의 또다른 표현과 의미


실연을 당했을 때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아픔을 이겨내는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이 다른 연인을 찾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왕가위 감독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영화 <중경삼림>은 새로운 사랑을 찾는 남녀 두 쌍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형사 223, 663의 사랑 이야기

사복 경찰인 형사 223(금성무). 그는 만우절에 헤어진 여자친구 메이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가 택하는 방법은 조금 엉뚱하다.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는 것. 그 날은 그의 생일이자 메이가 떠난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다. 5월(May)은 곧 그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223은 30일 동안 통조림을 모았다가 그 날이 되도록 메이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기로 결심한다. 초조하게 연락을 기다렸지만 메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실망한 그는 모아둔 파인애플을 모두 먹어 버리고 술집에 간다. 그곳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할 것이라고 결심하면서.

이때 들어온 노란 머리 여인(임청하). 마약 밀매를 하던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중개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싶다는 여자의 말에 223은 그녀를 호텔로 데려간다. 그러나 호텔에 가서 여자는 잠들어 버리고, 그는 그녀의 더러워진 신발을 깨끗이 닦아 놓은 채 떠난다. 시간이 흘러 다시 자기 생활로 돌아간 223. 25세가 된 바로 다음해 생일, 그는 한 통의 삐삐 메시지를 받는다.

두 번째 이야기는 223이 자주 가는 패스트푸드점 '캘리포니아'의 점원 패이(왕정문)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마마스 앤파파스의 'Califonia Dreaming' 을 들으며 캘리포니아로 떠날 꿈을 꾸는 발랄한 아가씨이다. 애인에게 줄 밤참을 사러 오곤 하는 형사 663(양조위)에게 호감을 느기는 패이. 어느 날 그녀는 스튜어디스인 663의 애인이 전해준 열쇠와 이별의 편지를 받게 되고, 그가 집을 비울 때마다 몰래 들어가 애인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663은 집 안의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며 애인의 빈자리에 괴로워한다. 마침내 패이의 존재를 눈치챈 그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되는데…. 그들은 패이가 일하는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패이가 '진짜' 캘리포니아로 떠나면서 엇갈리게 된다. 1년 후, 스튜어디스가 되어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온 패이는 예전에 일하던 그 가게로 찾아오고, 가게 사장이 되어 있는 663이 그녀를 맞는다.

독특한 시각의 왕가위 스타일

<중경삼림>은 당시로서는 독특한 촬영 기법과 쓸쓸한 분위기의 연출로 90년대 중반에 큰 인기를 모았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왕가위 스타일을 흉내낸 영화나 CF등이 많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의 옷차림과 행동, 감수성은 한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영화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장면은 금성무가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어치우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파인애플 통조림일까? 통조림이라는 음식은 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이는 사랑조차 즉흥적이고 인스턴트화 되는 젊은 세대의 가벼운 감수성을 나타내려는 감독의 의도로 볼 수 있다. 또한 통조림은 자신의 존재를 숫자를 통해 알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형사 223과 663 역시 이름은 알 수 없고 그저 숫자로 불릴 뿐이다. 어쩌면 그들은 규격 속에 갇혀 정체성을 잃어버린 현대 도시인의 모습을 말해주는 듯 하다.

파인애플의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맛은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느낌을 상징한다. 223은 애인을 생각하며 모아온 통조림을 전부 먹어치운다는, 다소 자조적인 행위를 통해 사랑을 하면서 느꼈던 달콤함과 가슴 시린 아픔마저도 삼켜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날 것 그대로'의 맛보다는 통조림이라는 형태로 가공된 맛이 더 익숙한 과일이 파인애플이다. 파인애플을 주로 통조림으로 먹는 이유는 덜 익은 열매를 먹으면 신맛이 너무 강할 뿐 아니라 산과 수산석회 등이 많아 구강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산지에서 잘 익은 열매?都?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찍 수확한 파인애플은 2~3일 가량 후숙시켜야 단맛이 강해진다.

파안애플 100g에는 피타민 C가 60mg으로 과일들 중 가장 많은 양을 함유하고 있다. 또한 단백질을 녹이는 '브로멜라인' 이라는 효소가 들어 있어 소화를 돕는다. 특히 고기요리를 할 때 곁들이면 고기를 연하게 할 뿐 아니라 파인애플의 향이 가미돼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1-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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