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닭들의 대 반란서커스 닭의 사주로 양계장 암탉들의 탈출은 시작되고…
[문화 속 음식이야기] 애니메이션 <치킨 런> 치킨 파이 자유를 향한 닭들의 대 반란 서커스 닭의 사주로 양계장 암탉들의 탈출은 시작되고…
구제역, 광우병에 이어 조류독감의 공포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조류독감 때문에 닭고기 소비가 뚝 떨어지자 당국에서 갖가지 닭고기 안전 홍보를 펼친 결과 지금은 파문이 어느 정도 진정 국면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런 질병들은 ‘먹이가 되기 위해’ 길러지는 가축들의 소리 없는 저항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이쯤 되면 닭들의 대 반란을 그린 클레이 애니메이션, <치킨 런>을 떠올릴 법하다. 회색빛 하늘과 철조망이 마치 포로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트위디 양계장. 이곳에 사는 암탉들은 알을 낳지 못하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할 운명이다. 닭들의 리더격인 진저는 이들을 데리고 탈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절망만 커져가던 어느 날, 미국 출신의 서커스 닭인 록키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의 등장으로 진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암탉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서 양계장을 탈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날부터 기상천외한 록키의 비행 수업이 시작되고 진저와 록키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들은 탈출을 꿈꾸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곧 무시무시한 소식을 듣게 된다. 달걀을 팔아 얻는 수입으로 만족하지 못한 트위디 여사가 암탉들을 모두 치킨 파이로 만들겠다는 것. 설상가상으로 록키 역시 날지 못한다는 사실이 탄로 나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공포에 떨며 좌절하는 암탉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진저는 발로 움직이는 ‘날으는 방주’를 떠올리고 닭들은 비밀 작전에 돌입한다. 이들은 마침내 트위디 여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닭들의 파라다이스를 찾아간다. 이 작품은 <월레스와 그로밋>으로 잘 알려진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었다. 전작에 비해 <치킨 런>은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더 세련되었지만 <월레스…>가 주었던 소박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위트는 다소 약해진 점이 있다. 그러나 자유와 대탈주라는 무거운 주제를 부담 없는 웃음으로 소화시킨 제작진의 역량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치킨 런>은 여러 영화들의 장면을 패러디하고 있어 그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진저와 록키가 치킨파이 기계 속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장면은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치킨파이 기계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산업화는 모든 것을 기계화, 대량화시킨다. 자본주의 안에서는 인간도 동물도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닭을 산 채로 기계 속에 넣어 파이로 만든다는 설정은 이 같은 비인간화를 드러내주는 장치로 생각된다. 그리고 즉석에서 기계로 만들어진 파이에 ‘엄마의 손길(Woman’s Touch)’라는 로고가 붙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파이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과일이나 크림을 넣은 디저트를 떠올리지만 원래는 고기나 야채를 넣어 식사용으로 먹는 것이었다. 파이의 어원은 까치라는 뜻의 영어 맥파이(Magpie)에서 유래했다. 까치는 둥지 속에 쓸데없는 잡동사니를 잔뜩 물어다 놓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간 파이는 일명 ‘브리티시 파이’라고도 부른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 닭고기를 먹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치킨 파이 만드는 법을 소개해 본다.
입력시간 : 2004-03-0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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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