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엿보기] '쫌팽이'로 기억되지 않으려면


사랑은 계산없이 주고 받는 것? 아아, 대단히 숭고하고 이상적이며 아름다운 말이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Give & Take’의 유효기간은 상온에서 아이스크림이 녹는 시간 만큼이나 짧다. 사랑이 끝나면 그토록 관대하던 마음도 급속히 철수한다. 헤어진 후에는 별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날파리처럼 나타나 당신 머리를 맴돌고, 급기야는 대범하게 넘겨버렸던 그 수많은 일들까지도 ‘재소환’ 될 지도 모른다(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

그녀의 연인은 무척 가난한 남자였다. 음악을 끔찍이도 좋아하던 그를 위해 그녀는, 자신의 최신 오디오를 ‘빌려주기로’ 했다. 데이트는 대부분 그의 작은 집에서 이뤄졌으므로 그건 그녀를 위해서도 현명한 결정이었다. 한데 문제는 그 다음!

그들의 사랑도 어느덧 김 빠진 맥주처럼 힘을 잃고, 두 연인은 지칠 만큼 지쳐버렸다. 그녀는 이 골치 아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주 편리한 옵션을 택했다. 이별 통보. 한데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의 방에 하나 둘 옮겨놓았던 자신의 소지품들 문제. 가벼운 것들은 미리 챙겨두었지만 오디오는 역시 혼자 해결하기에 난감했다. 그녀는 파트너의 깔끔한 성품을 믿어보기로 하고, 그날로 우아하게 전화로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그에게선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녀는 심히 유감스러웠다. ‘이제껏 내가 그런 흐리멍텅하고 두루뭉실한 남자와 연애를? 이런 최악의 매너!’

그건 그녀로서도 매우 아찔하고 자존심 상하는 대목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의 얼굴이나 이름은 아리까리해졌지만 그의 컨셉 만큼은 그녀에게 분명하고도 생생하다. ‘오디오 얼렁뚱땅 챙겨먹은 쫌팽이’. 씁쓸하긴 해도 받아들여야 할 진실이었다. 정이나 그리움은 쉽게 휘발되지만 작은 흠집이나 상처는 어설픈 문신처럼 후유증이 깊은 법이다. 재고, 삼고해도 그의 성의 없는 마무리는 영 개운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뜻밖에도 그 남자, 오디오맨. “잘 지냈니?” 하고 나름대로 폼 잡으며 물어오는 그에게, 그녀는 인정사정없이 대꾸해주었다. “으응, 오디오는 잘 있고?” 그렇게 보란 듯이 코웃음쳐주곤 몇 년만의 통화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자아, 이 웃기는 에피소드에 얹어보내는 더 믿을 수 없는 결론! 지나간 사랑에 대해 냉정한 손익계산서를 들이미는 건 그닥 우아한 행동은 아니다. 생산적일 리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포함해 어떤 부류의 여자들은 알면서도 그 ‘껄렁한 속셈법’을 고집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다. 사소한 것으로 전체적인 컨셉 혹은 맥락을 정리하곤 하는 이 습성은, 어쩜 여자의 심각한 본능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신은 그녀와의 연애 중 ‘무심코 행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가끔은 사려 깊게 리플레이 버튼을 눌러보는 게 좋다. 두 사람 사이에는 되도록 애매한 ‘분실물’ 따위 남기지 않도록 한다. 나중에 상대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설픈 쫌팽이’ 혹은 ‘안 좋은 추억’ 등으로 두고두고 재생되지 않으려면.

마음스타일리스트


입력시간 : 2004-04-22 21:00


마음스타일리스트 morpeus@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