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그리고 추억으로의 여행로맨틱한 분위기로 낭만주의 재해석, 모노톤으로 우아함 강조

[패션] 04~05 가을 겨울 서울컬렉션위크
낭만, 그리고 추억으로의 여행
로맨틱한 분위기로 낭만주의 재해석, 모노톤으로 우아함 강조


4월은 패션인들의 축제로 풍성한 결실을 맺은 달이었다.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 뉴웨이브인서울(NWS)의 패션그룹과 개별디자이너가 참여한 ‘서울컬렉션위크’와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가 주최한 ‘SFAA컬렉션’은 우리 패션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었다.

이번 컬렉션은 참신한 신진세력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으나 통합 컬렉션이 좌절된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 '패션 코리아' 떨치는 디자이너 총 출동

총 35(듀오디자이너 포함)명의 디자이너가 총출동한 ‘서울컬렉션위크’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디자이너에서부터 첫 무대를 갖는 신인 디자이너까지 풍성한 잔칫상이 차려졌다. 파리 패션 협회에서 인정하는 ‘국제적인 디자이너’ 문영희가 오랜만에 국내 무대에 섰고 1999년 파리 오뜨꾸뛰르(맞춤복)에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입성한 김지해의 쁘레따뽀르떼(기성복) 컬렉션도 처음 소개됐다. 또 대중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인정 받는 KFDA 소속 디자이너인 문영자, 안윤정, 김연주, 김종월, 조명례, 강기옥과 스타들에게 인기 있는 지춘희, 강희숙, NWS 소속 디자이너 김서룡, 박은경, 정욱준, 한승수 등이 신작을 선보였다.

올해 초 파리 컬렉션에 참가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 홍은주, 이영희, 우영미도 엄선된 무대로 컬렉션을 빛냈다. 파리 쁘레따뽀르떼 전시회를 통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호평 받은 디자이너 임현희도 두 번째 쇼를 펼쳤고, 중국시장 진출의 대표 주자 최창호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국으로 날아왔다. 모델 출신으로 미국에서 패션사업을 꾸려가고 있는 박애란은 동료 김혜정과 함께 듀오무대를 올렸고, 밀라노에서 쇼룸을 운영 중인 이유미·조항균의 국내 데뷔전도 마련됐다.

파티 진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이진윤, 파리 출신으로 국내에 ‘라뚤’을 런칭한 조성경 등이 감격적인 첫 쇼를 열었는가 하면 일본 디자이너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미치코 코시노가 지난해 ‘부산 쁘레따뽀르떼’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컬렉션을 가졌다.

뒤이어 열린 ‘28회 SFAA컬렉션’은 색깔 있는 패션그룹으로 진태옥, 김선자, 설윤형, 오은환, 김동순, 박윤수, 이상봉, 박항치, 김철웅, 한혜자, 손정완, 루비나, 신장경, 장광효 등의 중견 디자이너들의 노련한 무대가 펼쳐졌다. 2세 디자이너의 활약도 돋보였다. 진태옥의 딸인 노승은은 이미 독자적인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며 ‘에꼴드빠리’의 이영선, ‘SFAA’ 디자이너 설윤형, 김동순의 딸인 ‘하앤달’의 듀오디자이너 김성하, 이주영, 송자인 역시 동시에 데뷔전을 펼쳤다.

- 과거를 향한 향수와 그리움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은 풍요로웠던 과거에 대한 향수로 치유되는 것일까. 박윤수 SFAA 회장은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와 낭만주의가 이번 컬렉션의 키워드”라고 작품 경향을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과거에 유행했던 패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화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많이 나타났는데, 50~60년대의 낭만적인 시대상을 추억하는 무드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명 ‘재즈 시대’의 화려한 스팽글 장식이나 꽃무늬 리본 장식 등 조명 속에서 더욱 빛나는 주목받는 여성상이 선보였고, 이 같은 여성미에 대한 관심은 클래식한 남성복에 사용되는 회색이나 검은색 줄무늬 모직 슈트가 여성복에서 나타나는 현상까지 발견됐다. 또 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실루엣으로 가는 허리선을 강조하고 길고 날씬한 라인으로 각선미를 돋보이게 했다.

과거로의 회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지춘희는 1920년대 여배우들의 복고풍 스타일을 재현했고 조성경도 동시대의 부드러운 여성미를 앞세웠다. SFAA컬렉션의 말미를 장식한 루비나도 요조숙녀 스타일을, 집요할 정도로 완벽한 코디네이션과 컬러 하모니로 완성해 냈다. 가수 이은미의 열♣막?한껏 재즈분위기를 돋우는 파티 장을 연출한 한혜자는 각진 어깨에 허리는 꼭 맞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롱스커트 등 1930년대 패션 트렌드를 다시금 선보였다.

영화 <시카고>의 OST를 배경음악으로 한 김선자와 신장경은 영화 속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들의 이미지를 화려하게 재생했다. 오은환은 1950년대 이후의 다양한 라인들을 응용한 로맨틱 실루엣을, 흑백영화를 테마로 한 鵑鑿응?1920~50년대의 클래식과 1960년대 록앤롤을 믹스한 섹시함을 파워풀하게 그려냈다.

과거로의 여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의복의 원시성으로 회귀하는 작업도 동반된다. 이영희는 중앙아시아의 소수 민족 삶의 방식을 무대에 올렸고 진태옥은 ‘설원의 귀족’을 테마로 몽고 유목민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해석했다.

- 블랙&화이트, 계절의 한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소재

올해 가을/겨울은 강렬한 색으로 도배됐던 봄/여름과 달리 모노톤이 주도할 전망이다. 로맨틱한 낭만주의 속에서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우아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요 색상은 검정과 흰색. 모노톤의 단조로움은 소재의 변화로 다양성을 보여준다. 새틴이나 가죽 소재의 광택, 니트류에서는 따뜻한 부드러움을, 비치는 소재에서 이중의 감각을 취할 수 있다. 보다 자연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이 택한 색은 베이지 톤과 갈색 계열의 늦가을 숲을 연상케 했다. 또 짙은 녹색, 와인색, 군청색 등 무게 있는 어두운 색의 비중도 높아졌다.

그러나 완벽하게 색의 마술에서 탈피하지 못한 디자이너들은 비비드 컬러를 포인트 컬러로 가져갔고, 연약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계열의 색도 로맨틱 무드에서 빠지지 않았다.

소재에서는 계절의 한계를 느낄 틈이 없었다. 가을/겨울의 주된 소재인 모직과 가죽, 모피류 외에도 실크, 시폰 등 한여름에나 사용될 소재들도 보였다. 나풀거리는 시폰 블라우스나 스커트, 원피스가 등장하지 않은 무대가 없을 정도.

진 소재의 경계도 없어졌다. 강기옥, 이진윤 등과 같은 진을 주제로 한 디자이너 외에도 캐주얼한 이미지가 강한 진을 젊고 발랄한 분위기로 흡수하고자 엘레강스 이미지의 디자이너 브랜드 무대에까지 진 소재가 한 코너를 차지했다. 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돋보이는 자리였다.

부의 상징인 모피류의 등장도 많았는데, 발끝까지 치렁치렁한 롱코트에서부터 어깨에 가볍게 두르는 디자인까지 모피의 다양함도 주목할 만하다. 또 다른 소재와 곁들여 트리밍 소재로 사용되거나 무늬로 보다 캐주얼한 느낌으로 연출되기도 했다. 새틴 리본으로 장식된 모피 목도리는 가장 주목할 만한 쇼핑 아이템. 천연가죽의 끝자락을 처리하지 않은 채로 둔 자연스러운 라인도 멋스러웠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같은 소재, 또는 질감이 다른 소재를 서로 엮거나 조각으로 이어붙인 ‘피스패치(piece patch)’ 디테일이 많이 보였는데 비대칭 입체 실루엣으로 자유분방함을 펼치는데 응용됐다. 눈에 띄는 장식으로는 가느다란 끈 장식을 들 수 있다. 끈 장식은 단순히 의복을 여미는데 사용되는 것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풍성한 의상에 긴장감을 주는 요소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 개성있는 신인들 기세로 활기 넘쳐

어느 때보다 많은 디자이너들과 신선하고 개성 있는 신인들의 가세로 활기 넘쳤던 2004~05 가을/겨울 컬렉션은 딱히 이 한 가지가 유행이라고 집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패션 경향을 창조해 냈다. 패션계는 이제 각각의 주관이 인정받는 다양성의 길을 가고 있다. 서양의 기술과 동양의 혼이 깃들어 있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홍은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고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다. 자신을 지키면서 현대적인 감성을 추구하는 미래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의 재구성, 여기에 시대와 정신의 주체를 찾아가는 것이 패션의 본질이리라. 기존의 디자이너 그룹에 속해 있는 디자이너들이 기술적 성과와 동양적 감성을 결합하는데 혼신을 다했다면, 이제는 국제적 시야와 주체성을 지닌 젊은 디자이너를 위해 그 자리를 닦아 주는 애정이 필요하겠다. 더 발전된 한국 패션계의 단합된 모습을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 : modanews Co.Ltd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4-28 21:25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