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게 책 읽는 재미를

[두레우물 육아교실] "독서록 쓰는 게 영 서툴러요!"
아이와 함게 책 읽는 재미를

“안녕하세요? 제 아이가 올해 2학년입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늘 기특하게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서 내 준 독서록 숙제 때문에 기특하게 생각하던 마음은 저리 가고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입니다. 며칠 전 독서록 숙제를 한다며 앉았는데, 너무 오래 하길래 가서 보니 글씨도 작게 쓰면서 세 페이지가 넘었더군요.

“뭘 이렇게 많이 썼냐”면서 읽어 보았더니 책에 있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썼어요. 완전히 베끼는 수준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내용을 다 쓰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줄여야 할 지 모르겠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글을 쓰기 전에 말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대로 대답을 못합니다. 여러 번 읽었던 책인데도 말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이해력도 높고 어휘력도 좋아진다고 하던데 제 아이의 경우는 그렇지도 않나 봅니다. 집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독서 지도는 어떤 것이 있는지 좀 가르쳐 주세요."(일산에서 재연이 엄마가)

- 방법을 모르니 싫어할 수밖에

책을 열심히 읽히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글쓰기 훈련을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학교에서 상장이라는 미끼를 걸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독서록 쓰기를 장려하고 있다. 자기가 읽고 쓴 독서록 분량에 따라 상의 내용이 금, 은, 동으로 나뉘어 지는데 유난히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상장에 탐이 나는 아이들 몇몇을 빼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독서록 쓰기는 가장 하기 싫은 과제물 중 하나이다.

아이들이 독서록 쓰기를 싫어 하는 까닭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먼저 어른들 자신을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듯, 글쓰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여러 모로 귀찮다. 글을 쓰기 전에 머리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낸다는 게, 그것도 남이 하지 않은 나만의 표현으로 새롭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찮은 일인가? 이 점에 있어선 어른 못지 않게 아니, 아이들이 더 힘들어 할 건 분명하다.

또 아이들은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독서록 쓰기를 싫어 하는 경우도 많다. 책 내용도 조금 쓰고 느낀 점도 조리 있게 쓰라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용을 얼마나 어떻게 줄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만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으니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손가락이 얼얼해지도록 내용을 베끼는 것이다.

- 직접 주인공이 돼 보라

학교 밖에서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이가령 선생님은 우선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독서록 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책을 읽었다 해도 글쓰기를 통해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조금만 부지런하고 참을성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해 볼 수 있는 독서 지도 방법을 소개하고, 독서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몇 가지를 지적해 주었다.

먼저 쉽고 재미나게 할 수 있는 독서록 쓰기다.

첫째, 읽은 책의 내용을 몇 장면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고 그 장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을 고른다. 그리고 그 단어를 넣어 짧은 글짓기를 해본다. 예를 들어 <강아지똥>(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 펴냄)이란 책을 읽고 독서록을 쓴다면 ‘강아지똥’, ‘흙덩이’, ‘참새’, ‘민들레’, ‘봄비’ 등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한 뒤, ‘참새가 강아지똥을 더럽다고 했어요’와 같이 그 단어가 들어가는 짧은 글짓기를 해 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중요한 장면 장면마다 짧은 글짓기를 해서 이으면 쉽게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둘째, 주인공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책의 처음과 마지막에 주인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주인공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아보고 그 내용을 써 보는 것도 좋다.(가난했던 흥부가 제비다리 고쳐 주고 부자가 됐어요)

셋째,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재미 있었던 부분이나 인상 깊었던 장면을 써 보는 것도 독서록 쓰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서 쓰도록 강요하면 안 된다. 짧게 쓰더라도 아이가 흥미를 갖는다면 독서록의 임무는 완성이다.

-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격려하라

다음은 독서에 관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중 잘못된 것 몇 가지이다.

첫째, 아이가 제대로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의심한다면 아이의 머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책을 읽히지 않았나 반뵉?봐야 한다. 독서는 단순하게 문자만 읽는 행위가 아니다. 문자 이상의 의미와 그림들이 그 안에 숨어 있는데 이것까지 파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책을 빨리 읽고 많이 읽는 아이들 중에 이런 시간을 미처 갖지 못하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루 또는 일주일 동안 읽어야 할 책의 권수가 숙제처럼 정해져 있는 경우 역시 주의를 요한다.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던져 줄 경우, 아이는 시간에 쫓겨서 욕심에 쫓겨서 마음만 급해진다. 읽고 나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아이가 책을 얼마나 잘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던지는 부모의 질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아이가 책을 읽고 나면 그냥 막연하게 ‘무슨 내용이니?’ ‘너는 무슨 느낌이 들었니?’ 묻는다. 그보다는 질문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고 세분화해 본다. 누가 나오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언제 어디서 생긴 일인지 등으로 질문해 본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마다 시험 보듯 하면 절대로 안 된다. 아이에게 질문하기 전에 부모도 책을 먼저 읽어 보고 난 뒤 아이에게는 모르는 척하면서 아주 궁금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무슨 내용인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기쁨을 아이가 느낄 수 있게 하라. 묻지 않아도 아이는 신이 나서 대답해 줄 것이다.

셋째,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은 당연히 높아지겠거니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휘력의 확장은 책을 많이 읽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생활 경험의 축적, 풍부한 언어 환경이 함께 뒷받침 되어야 한다. 감의 떫은 맛을 본 아이라야만 ‘떫다’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언제나 생생하고 다양한 언어 표현을 구사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그 영향을 받으리란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사교육 시장에서 독서 지도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독서 지도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주고 그 책을 아이가 즐겁게 읽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부모든지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도움말:이가령(한국 글쓰기 연구회) http://rheekr.wo.to/

자유기고가 심유정


입력시간 : 2004-04-28 21:30


자유기고가 심유정 pupp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