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엿보기] 기분 좋은 앤딩 씬


사람들은 한 번쯤 이상적인 이별을 꿈꾼다. 찜찜함과 자책감으로 달아오른 머리를 감싸안으며.

‘이게, 이게 대체 뭐야. 다음엔 기필코 이런 꼴 보이지 말아야지. 좀더 근사하게 이별해야지. 기분 좋게 헤어져야지. 기껏 멋지게 사랑해놓곤 왜 꼭 끝에 가서 울고 불고, 얼굴 붉혀야 하느냐고.’

하지만 경험했다시피, 멋진 마무리는 그저 당신의 야무진 희망사항일 뿐. 그렇게 이성적이고 관대해질 수 있다면 차라리 이별 대신 다른 타협점을 찾아냈을 걸! 감정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다보면 ‘덜 기분 좋고, 덜 쿨한’ 풍경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괜히 강한 척 하면서 ‘쿨한 이별’을 연출한들, 그게 누구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한데 어떤 사람들에겐 적어도 그런 이별쯤은 별 고민도 아닌 듯 하다.

“넌 아무래도 내 타입 아니야. 노력해봤지만, 어디 사랑이 노력으로 되는 거니.”

“미투. 더 어색해지기 전에 이쯤에서 좋은 친구로 남자.”

“접수!”

마치 속성 브리핑처럼 일사천리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언뜻 이별 장면도 훨씬 산뜻하고 뽀송뽀송해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외양뿐. 쿨하다고 자부하는 그들도 속으론 후유증을 앓는다. 자존심, 이기심, 산만함 등을 무기로 겉으론 비록 강해졌지만 ‘상처의 컨텐츠’는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다. 자신을 잠시 속이거나 무관심 혹은 담담함으로 애써 버텨낸들, 뒤늦게 찾아오는 통증은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그걸 인정하지 않을 뿐-.

남자들의 대응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전통적으로 그들은 아픔에 ‘쿨하게’ 반응하도록 교육 받았다. 그게 자존심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기는 탓에, 상처가 생겨도 애써 평정을 연기한다. 하지만 제때 치유되지 않은 그것은 오래도록 잠복해 있으면서 그를 괴롭히고 또 그가 영원히 성숙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는다. 이 모든 건 당신이 고난 앞에서 너무 ‘쿨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반면 여자들은 좀더 현실적이다. 이별에 직면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데 대체로 매우 용감하고 솔직하다. 남자들 보다 훨씬 높은 집중력으로 현재 상황에 적응한다. 덕분에 이별에 따른 각종 후유증을 소화하는 능력도 배가된다. 마음껏 울고, 욕하고, 분노하고, 자책하고…. 이제 그녀들의 몸과 마음은 목욕하고 난 것처럼 개운하다. 뒤끝 없이 자신을 던진 대가로 실연의 상처 역시 재빨리 아문다. 이건 어쩜 그녀들만의 강력한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이제 남자들은 ‘무늬만 쿨하던’ 자신의 스케일을 인정하고, 곧장 이 비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건 단지 나약하게 질질 짜며 휘청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몽롱한 알콜중독자처럼 소모적인 제스처에 골몰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그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볼 용기를 갖고서야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아름다운 이별’ ‘기분 좋은 이별’은 나 홀로 통과하는 이 혹독한 터널을 통해서라야 경험할 수 있다. 즉 근사한 앤딩 씬은 헤어질 연인과 ‘함께’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오롯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5-0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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