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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향수와 낭만의 옷 입기
2004 패션 지배하는 1950년대 풍 로맨틱 스타일
과거의 풍요와 감성적 이미지에 대한 그리움 반영


유행은 돌고 돈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컬렉션 무대에 오르는 옷들은 어디서 본 듯 익숙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현재 패션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잘록한 허리, 볼륨 있는 가슴과 엉덩이, 화사한 스카프와 뾰족한 하이힐,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한 로맨틱 스타일, 1950년대 풍 패션이 2004년을 지배하고 있다.

패션은 경제적인 풍요의 산물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패션의 전성기는 부의 시대를 동반한다. 호사스러웠던 1950년대.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경제적인 안정이 가져다 준 여유가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먼저 나타났다. 전쟁 당시 각진 어깨와 어두운 색, 실용성이 강조된 군복패션에 대항하듯 여성스러운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옷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에 수많은 디자인의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1960년대 들어 기성복이 유행한 것을 보면 50년대는 손으로 만드는 수공품으로 예술적인 가치가 높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는 패션디자이너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맞춤복이 왕성하게 세력을 확장했고 패션은 전쟁 후 변화된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했기 때문이다.


- 전쟁이 가져온 패션의 매혹적 변신

1947년 2월 12일에 개최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첫번째 컬렉션에 등장한 뉴룩(New Look)은 유행의 발단이었고 모든 여성들을 로맨티스트로 변신케 했다. 코르셋을 입어 가슴은 들어 올려지고 허리는 가늘어졌고, 둥근 어깨선과 페티코트로 받친 풍성한 스커트를 입었다. 허리벨트는 빠지지 않았고 앞코가 작고 뾰족한 구두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전체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한껏 풍겼다. 전쟁과 같은 사회적 대변동이 패션을 유혹적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파리의 고급 맞춤복 시장은 디오르와 같은 디자이너의 힘에 기운을 얻어 세계 모드의 중심역할을 되찾았다. 디오르는 뉴룩의 새로운 시도 이후 연속적으로 H, A, Y, F라인 등 수많은 디자인을 발표하며 창의력을 발휘했다. 1950년대 패션은 가장 변화가 심하고 그 만큼 많은 유행을 만들어 갔다. 뉴룩 이후, 모든 패션이 절정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향해 조금씩 변화해 갔다. 개미 같은 잘록한 허리는 점차 편안해졌고 스커트 길이도 조금씩 다리 위로 올라갔다.

전쟁 후의 여성복에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는 바지 착용의 일반화이다. 사회적으로 남녀의 동등한 지위가 인정되면서 복장에 대한 규제 또한 차별이 없어졌다. 특히, 1951년 리바이스(levi’s)의 등장은 이러한 바람을 촉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진을 패션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남성들에게 있어서도 이 시기는 매우 화려했는데, 패션리더들이 즐겨 입는 밝은 핑크색 셔츠에 회색 정장을 누구나 입었고, 버튼다운칼라 타이의 폭은 여느 멋쟁이들처럼 좁았다. 단추가 한 줄로 된 싱글 브레스트와 아이비리그 룩으로 불리는 일직선의 날씬한 슬림라인 의상이 유행했다. 댄디 스타일은 당시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시도를 잘 보여주었고 이러한 거리패션은 미국과 영국의 젊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정계나 국제적인 주요 인물들이 공식석상에서 베스트를 착용하지 않으면서 쓰리피스가 완전히 물러가고 투피스가 수트의 기본이 됐다.

1950년대는 청년문화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재정능력을 등에 업고 소비의 주체가 됐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레코드, 화장품, 잡지, 그리고 주니어 패션 등이 등장한다. 50년대 초 작업복의 이미지가 강했던 스웨터가 평상복으로 받아들여졌고 진이 젊음의 돌파구로 상징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6ㆍ25 전쟁을 겪고 난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평상복으로 한복 대신 양장이 유행해 전문 양장점들이 명동에 줄을 이어 개점했다. 1955년 처음 패션디자이너라는 말이 사용됐고 다음해 10월 한국 최초의 패션쇼 ‘노라노 패션쇼’가 열렸다. 50년대 후반 나일론이 발명되면서 여성패션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블라우스와 원피스, 속옷, 스타킹이 등장했다. 패션의 태동기였다.

- 1950년대 할리우드 스타 따라입기

1950년대 패션을 회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스크린의 별들을 관찰하면 된다. 당시 장편영화의 평균 상연시간은 장장 5년. 그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들의 개인생활은 언제나 잡지와 신문을 도배했고 에로틱한 포즈는 1면을 장식했다. 한 예로 1952년 ‘라이프’지 커버에 실린 마릴린 몬로. 어깨가 훤히 드러난 주름진 흰색 드레스를 입고 반쯤 감은 눈으로 지그시 아래를 내려보며 짓는 미소는 이후 몬로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자신만의 개성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움직이는 패션 카탈로그였다. 마릴린 몬로는 순진무구하며 감각적이나 상처 받기 쉬운 여성을, 브리지트 바르도는 옷을 풀어 헤치고 거친 야성으로 돌아간 작은 동물로, 그레이스 켈리는 조각 같은 우아함의 상징으로, 오드리 햅번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장난꾸러기를 떠오르게 했다. 제임스 딘의 청바지는 반항적인 이미지를 굳혔다.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 - 오드리햅번 스타일』

오드리 햅번은 1953년 작 <로마의 휴일>을 통해 짧은 헤어스타일과 작은 깃이 달린 셔츠에 허리에는 벨트를 매고 풍성한 스커트를 입었다. 또 영화 <사브리나>에서 사브리나 팬츠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왕족의 우아함과 어린 소녀의 장난기와 청순미를 동시에 지닌 요정의 이미지로 전 세계 여성들을 움직였다.

무릎 길이의 플레어스커트, 밑단을 접어 올린 카프리 팬츠, 세모꼴로 어깨 위를 살짝 덮는 캡소매나 주름이 잡힌 퍼프소매로 귀여움을 강조한 셔츠(작은 사이즈여야 한다)와 소매가 짧고 몸에 잘 맞는 카디건, 진주 액세서리(골드 체인이나 화려한 에스닉 디자인은 금물), 굽이 낮은 플랫 슈즈나 메리제인 슈즈, 목에 질끈 묶은 작고 귀여운 스카프, 렌즈 크기가 큰 둥근 뿔테 선글라스 등 얌전하면서도 발랄한 귀여움을 주는 스타일이다.

『순진한 섹시함 - 마릴린 몬로 스타일』

햅번의 청순미와 대응하는 관능미는 마릴린 몬로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허리는 가늘게 보이도록 디자인된 드레스를 입어 섹시스타로 등극했다.

볼륨 있는 몸매를 노출하는 딱 붙는 디자인과 반짝이는 스팽글과 새틴 소재, 글래머러스한 가슴 선을 드러내는 깊게 파인 목선, 등을 드러낸 홀터넥 원피스, 미니스커트 보다는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핫팬츠, 하이힐, 어디에나 반짝이는 보석을 박은 선글라스, 가방, 구두를 선택한다. 빨간 립스틱과 헤어도 부풀어 올린 웨이브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

『동물적 관능미 - 브리지트 바르도 스타일』

어린 소녀의 모습이지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섹시함, 발톱을 세운 작은 동물에 비유되는 그녀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야성미를 지니고 있다. 열대의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프린트물이 바르도 스타일의 중심이 된다. 다리를 휘감는 시폰 소재의 소매 없는 원피스, 목 뒤로 묶는 홀터넥 상의, 벨트로 허리를 가늘어 보이게 만들고 끈으로 된 샌들을 신는다. 바르도 스타일은 소재가 주는 현란함 때문에 액세서리는 간소화하거나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상류층의 고급스러운 우아함 - 그레이스 켈리 스타일』

차갑고 이지적인 히치콕의 여인, 영화배우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 모나코 왕자와 결혼해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한 그레이스 켈리. 고급스럽고 부유한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됐다. 그녀의 스타일에서 배워야 할 패션센스는 튀지 않는 기본 스타일에 고급스러운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것. 카디건 세트에 타이트한 펜슬 스커트를 입거나 특별히 허리를 조이지 않아도 되는 허리선이 높은 원피스에 7부 재킷을 매치한다. 옷에 장식과 무늬는 자제하고 색깔도 회색 톤이나 옅은 파스텔 톤으로 한정 짓는다. 대신 핸드백과 구두, 액세서리는 소위 ‘명품’을 걸쳐야 한다.

- 시대상 반영, 풍요를 그리워 한다

21세기가 과거의 패션을 주목하는 데는 현재의 어두운 시대상이 반영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세계 곳곳을 위협하는 테러, 회복되지 않는 불황 등 현실을 잊고 풍요로운 시대를 그리워하는 욕구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말보로의 적색과 백색의 포장을 개발해낸 루이 체스킨(louis cheskin)은 1950년대의 패션 부흥과 관련 “어느 산업이든 여성들의 패션산업을 흉내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50년대 패션은 가장 큰 호황기를 누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서너 벌의 옷을 갈아입을 만큼 여성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옷장과 거울 앞에서 치장에 몰두했다고 한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전심을 기울였던 1950년대 여성들에게는 비할 바 아니지만 그 낭만적인 우아함을 흉내 내어 보면 어떨까? 화사한 옷차림 하나로 현실의 시름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


입력시간 : 2004-05-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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