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외로움 달래준 '달콤함'결혼과 함께 찾아오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문화 속 음식이야기] 에쿠니 가오리 <반짝반짝 빛나는> 슈크림
상처와 외로움 달래준 '달콤함'
결혼과 함께 찾아오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 쇼코. 이거, 네가 좋아하는 프리지어하고 슈크림이야.”모로조프의 미니 슈크림이네, 라고 꿈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무슨 맛?”

꿈속의 애인은 싱긋 웃는다. “물론 네가 좋아하는 코안트로 맛이지.”코안트로 맛! 나는 금새 신이 났다. (본문 중에서)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꿈에 나타났던 옛 애인이 아닌 남편에게 슈크림을 사다 달라고 부탁한다. 남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 남자’ 애인이 따로 있다. <냉정과 열정사이>로 잘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은 이렇듯 일반인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코올 중독에 신경쇠약을 앓고 있는 주인공 쇼코는 ‘결혼이라도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의사의 무책임한 조언 때문에 7번이나 선을 보게 된다. 그녀가 마침내 결혼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하필이면 동성애자인 내과의사 무츠키였다. 이야기 전개는 두 사람의 시점을 교대로 넘나든다.

이들은 여느 부부처럼 일상을 공유하며 무츠키의 대학생 애인인 곤과도 거리낌없이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무츠키 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그들의 사랑은 ‘ 물을 안는 것’ 같다. 무츠키는 더없이 자상한 남편인데도 쇼코는 채워질 수 없는 공허감 때문에 언제나 외롭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외로움에 대한 무츠키의 지나친 배려와 관심이 그녀를 힘들게 만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함께 가기로 한 유원지에 그녀의 전 애인을 보내기까지 하는 무츠키에게 쇼코는 급기야 크게 화를 낸다.

- 남편과 연인 사이에서 갈등

그럭저럭 지탱해 나가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쇼코의 부모가 무츠키가 게이임을 알게 되면서 큰 위기를 맞는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곤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곤이 떠난 후 무츠키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쇼코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이 세 사람은 어찌 되었건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무츠키가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쇼코는 그를 위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준비한다.

소설 속에서 세 사람은 몸 색깔이 달라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은사자에 비유된다. 이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도 세상 사람들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쇼코는 무츠키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리지어와 슈크림을 사다 주는 보통의 연인을 꿈꾼다. 현실에서의 괴리감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그러나 외로운 존재이면서도 아름다운 은빛 털을 자랑하는 은사자처럼, 이들은 어긋남을 극복하고 반짝반짝 빛난다.

슈크림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만든 말로, 원래는 ‘퍼프 페스트리’, 혹은 ‘파트 아 슈(pate à choux)’라고 불린다. ‘슈(choux)’는 원래 양배추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껍질이 부푼 모양이 양배추와 흡사한 데서 붙여졌다. 슈크림은 모양에 따라 에클레르, 를리지외즈, 살랑보 등으로 나눠진다. 이보다 큰 것으로는 생 토로레나 파리 브레스트 등이 유명하다. 또한 그뤼에르 치즈를 넣어 구운 구제르나 감자 퓌레를 섞어 기름에 튀긴 폼 도핀 같은 식사용도 있다.

- 바닐라 풍미가 살아있는 맛

슈크림 속에는 보통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다. 이 커스터드 크림은 프랑스에서는 ‘크렘 드 파티시에르’, 즉 제과점의 크림이라고 불린다. 제대로 만든 크렘 드 파티시에르에는 바닐라 빈이 그대로 들어가 바닐라의 풍미가 살아 있으며 느끼하지 않고 신선한 맛이 난다. 슈크림을 만들 때는 크렘 드 파티시에르 이외에 초콜릿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맛의 크림을 사용해도 좋다.

소설 속에 나오는 ‘ 코안트로’는 과자류를 만들 때 자주 쓰이는 리큐르의 일종으로 오렌지 껍질을 배합한 향기 높은 무색의 술이다. 이 술은 1849년 프랑스의 로와르에서 만들어졌으며 원래는 ‘ 코안트로 트리플 섹’이라 불렸다. 코안트로 맛 슈크림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긴 하지만 술이 첨가된다는 것으로 보아 어린이들보다는 주로 성인들이 좋아하는 과자로 보인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프랑스에서 슈크림은 웨딩 케익 대신이다. ‘크로캉부쉬’라고 불리는 이 커다란 과자는 둥글거나 길쭉한 모양, 혹은 백조 모양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든 슈크림을 산처럼 쌓아 올려 만든다. 이때 슈크림에 캬라멜을 묻혀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모양을 만들 때는 장미꽃과 신랑 신부 인형 등으로 장식하며, 꼭대기에 캬라멜 시럽으로 신랑 신부의 이니셜을 써넣기도 한다. 흔히 보는 웨딩 케익 형태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좀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나름의 호화스러움을 한껏 살린 개성 있는 과자이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5-27 15:11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