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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음식기행]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메밀
하룻밤 풋사랑의 배경 입에도 착착 감기네
여름엔 메밀국수, 겨울엔 메밀묵 등 식탁 위 별미 노릇


우리나라 문인들이 망국(亡國)의 암담한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돌리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 경으로 볼 수 있다. 30년대에는 특히 순수성과 예술성을 지향하는 명작들이 많이 나왔는데 너무나 유명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1936년 <조광>지에 발표된 이 소설은 여름의 정취를 가장 낭만적으로 묘사한 걸작으로 꼽힌다.




주인공 허 생원은 평생을 장돌뱅이로 떠돌며 살아온 인생이다. 여자와의 관계라고는 거의 없던 그였지만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날 밤, 성서방네 처녀와의 묘한 하룻밤 인연은 그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봉평 장터에서 파장을 하고 주막으로 오던 그와 조 선달은 장돌뱅이 청년 동이를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난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밤길을 가며 허 생원은 또 다시 젊은 시절 봉평에서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우연치 않게 동이가 자신의 아들이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허 생원. 그는 동이와 함께 예정을 변경해 동이의 모친이 있는 제천으로 향한다.

이 소설은 줄거리 자체보다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통해 ‘애욕의 신비성’을 다루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라는 소재는 두 남녀의 하룻밤의 사랑을 더욱 아련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어쩌면 그 사랑은 인간이 평생 지고 갈 수밖에 없는 고독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봉평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황일부 노인의 증언으로 주인공 허 생원과 충주집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 감자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

실제로 메밀꽃의 제철은 8월 말에서 9월 초이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오히려 한여름에 가깝다. 또한 메밀로 만드는 시원한 냉면과 메밀국수는 여름철에 빠질 수 없는 별미이다. 감자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 작물로 꼽히는 메밀의 원산지는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그리고 중국 북동부의 건냉한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메밀이 처음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이며, 송대에 와서 널리 퍼진다.

메밀은 곡물이지만 단백질의 함량이 높고 비타민 B1, B2, 니코틴산 등을 함유하고 있어 맛과 영양가가 뛰어나다. 또한 다량의 섬유소를 함유하고 있어 다이어트에 좋으며 메밀의 루틴 성분은 구충제나 혈압강하제로 쓰인다. 반면 메밀의 껍질 부분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어 배탈을 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중국인들이 메밀을 우리나라에 전래한 데는 한민족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메밀에 무즙을 곁들여서 독성도 없애고 맛을 더하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한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도정한 메밀을 그대로 쪄서 밥처럼 먹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메밀은 여러 가지 형태로 가공해서 별식으로 즐길 수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수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에 시원하게 냉면이나 막국수를 즐겨 먹으며 일본에서는 메밀로 만든 각종 소바를 주로 먹는다. 소바류는 일본에서 16~17세기경부터 만들어졌다. 이들은 특히 섣달 그믐날 밤에 소바를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에도 시대 귀금속 세공업자들이 작업하다 남은 금가루를 흡착할 때 메밀가루를 이용한 것에서 착안해 메밀이 재물을 묻혀 들인다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 일본에선 ‘자루소바’ 대중적 인기

차가운 메밀국수인 자루소바는 달콤한 맛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메밀국수를 적셔 먹는 국물은 다시마 물에 미림과 가다랭이포를 넣어 우려낸다. 여기에 무즙과 실파 등을 곁들여 먹게 된다. 흔히 식당에 가면 국물에 고추냉이를 넣어 먹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일본에 가면 고추냉이를 넣지 않으며 국물 맛은 좀 더 진한 편이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국물에 면을 푹 담가 먹는 게 아니라 찍어 먹는다는 기분으로 살짝만 국물을 묻힌다. 가정에서 메밀국수를 먹을 때에는 작은 그릇에 국물을 1/3 정도만 넣고 국수를 먹어 가면서 국물을 더 부어야 싱거워지지 않고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며 먹을 수 있다.

메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그 외에도 몇 종류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겨울에 빠질 수 없는 간식이었던 메밀묵, 그리고 메밀과 김치로 만든 부침개나 각종 야채, 고기 소를 말아 넣은 메밀총떡이 그것이다. 지금도 봉평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의 장터에 가면 시장에서 막 부쳐낸 메밀부침개나 메밀총떡을 먹을 수 있다. 밀가루 반죽과는 달리 메밀에는 약간 거친 듯한 맛이 있고 담백하여 물리지 않는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


입력시간 : 2004-07-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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