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철학적 영감의 원천스페인식 볶음밥 , 서민적 음식으로 즐겨 먹어

[문화 속 음식기행]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음식은 철학적 영감의 원천
스페인식 볶음밥 <빠에야>, 서민적 음식으로 즐겨 먹어


나뭇가지에 걸쳐진 채 녹아 내리는 시계, 여인의 머리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떼…. 초현실주의 미술을 개척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기묘하고 어려운 그림으로만 알려져 있는 그가 타고난 미식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에게 음식이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선 철학이요, 영감이었다.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의 피게라스에서 출생한 달리는 일찍이 인상파 점묘파 입체파 등 다양한 미술유파에 관심을 가졌다. 1925년부터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심취하여 무의식 속의 꿈과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달리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으며 친구인 L. 부뉴엘과 함께 전위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황금시대>등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무대미술 등 상업미술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 카탈로니아 지방 전통요리 즐긴 달리

어린 시절 요리사가 꿈이었다는 달리는 자신의 작품 속에 다양한 음식들을 담아내는데 그 중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이 ‘빵’이다. 1945년작 <빵 바구니>에서 그는 먹다 남은 빵 한 조각만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또한 <포르트리가의 마돈나>, <원자핵의 십자가>, <회상의 여자 흉상>에서도 별난 형태로 등장하는 빵은 풍요로움이나 영적인 의미와 결합된다. 그 외에도 양의 갈비를 좋아했던 달리는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에서 아내의 어깨에 갈빗대를 걸쳐놓은 모습을 묘사했고, 녹아 내리는 까망베르 치즈에서 착안해 흐물흐물한 시계를 그렸다.

이쯤 되면 달리가 생전에 즐겨 먹었을 음식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씹고 있는 앤초비는 나를 밝혀주는 등불이다’,‘피는 꿀보다 달다’,‘나는 형태가 분명한 것만 먹고 싶다.시금치를 먹느니 거기 묻은 모래를 먹겠다’, ‘프라이팬 없이 떠다니는 달걀 프라이의 형상은 일생 환각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삶에서 경험한 모든 혼란과 흥분, 그 저변에 달걀 프라이의 환각이 있었다’.

그가 음식에 대해 언급한 말들인데 이것만 보아도 그의 별난 식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아침 식사로 성게를 즐겨 먹었고, 죽기 전에 박하 셔벗을 먹고 싶다고 했으며, 방금 짜낸 황소 허릿살의 피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즐겼던 음식은 그의 고향인 카탈로니아 지방의 전통 요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화끈하고 급한 성격을 지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음식문화도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쌀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며 마늘 고추 등을 많이 써서 얼큰하고 매운 맛을 즐긴다. 오징어 낙지 등을 즐겨 먹는 것도 공통점 중 하나. 우리나라처럼 소 혀, 돼지의 태아 등 다른 곳에서는 금기시하는 재료도 많이 사용한다.

스페인의 식사는 하루에 다섯 끼나 된다. 일단 아침 8시경에 빵과 커피 우유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다. 그리고 오전 11시경 바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며 가벼운 식사를, 오후 2시경에 본격적인 점심을 먹는다. 스페인 사람들이 하루의 식사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점심인데 정식 코스를 갖춰 2시간 이상 느긋하게 즐긴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낮잠을 자는데 이를 ‘시에스타’라 한다. 이 때는 은행이며 관공서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 6시에는 간식을 먹고, 11시쯤 저녁을 먹는다.


- 한국인에게 친숙한 빠에야

지방색이 유난히 강한 스페인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요리들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스페인 요리로는 토마토․오이․피망․마늘․식초․올리브유 등을 넣어 차게 먹는 스프인 가스파쵸, 갖가지 전채 요리인 타파스, 닭고기를 넣고 지은 밥 알로스 콘 포로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요리가 바로 스페인식 볶음밥에 해당하는 빠에야이다.

우리나라에서 빠에야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파는 요리로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빠에야는 대단히 서민적인 음식이다. 빠에야라는 단어는 원래 널찍하고 얕은 프라이팬을 가리키는데 주로 들에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즉석에서 해 먹은 요리였다. 때문에 재료도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것을 이용한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빠에야는 닭고기와 양파, 마늘을 볶다가 쌀과 생선 스톡(생선 육수)을 넣고 새우, 오징어, 조개 같은 해산물을 얹은 것이다. 쌀을 익힐 때 사프란 우린 물을 넣기 때문에 고운 노란색이 난다. 빠에야를 먹다 보면 바닥에 밥이 눌어붙어서 마치 누룽지처럼 되는데 이를 ‘소카라다’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페인 사람들도 이 누룽지를 무척 좋아해서 ‘소카라다 없는 빠에야는 빠에야가 아니다’는 말까지 있다.

빠에야에 노란색을 내는 사프란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향신료로 꼽힌다. 빠에야나 부이야베스 같은 지중해 요리에 얼얼한 향과 고운 색을 내는 데 필수적이다. 사프란은 붓꽃과 식물의 꽃봉오리에서 암술만 따내어 말린 것으로 1kg을 채취하려면 무려 16만 가닥을 손으로 일일이 다듬어야 한다. 돈키호테의 고향인 라만차가 주산지이다.

정세진 맛칼럼리스트


입력시간 : 2004-07-20 16:07


정세진 맛칼럼리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