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무관, 뇌기능 향상엔 탁월시금치 회사 홍보 목적으로 '힘'설정, 눈 건강에 필수 영양소 듬뿍

[문화 속 음식기행] <뽀빠이> 시금치
힘과 무관, 뇌기능 향상엔 탁월
시금치 회사 홍보 목적으로 '힘'설정, 눈 건강에 필수 영양소 듬뿍


‘체력이 국력’이던 시절, 우리 어린이들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화 한편이 있다. “뽀빠이, 살려줘요!”라는 외침과 함께 등장하는 근육질의 사나이, 시금치만 먹으면 괴력이 솟아나는 <뽀빠이>가 그 주인공이다.

1929년 1월 17일. 일간지의 시사만화가였던 엘지 세가(Elzie Segar)는 그의 한 줄 짜리 만화‘골무극장(Thimble Theater)'에 뽀빠이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켰다. 처음에는 단역에 불과했던 뽀빠이는 시간이 갈수록 큰 인기를 끌며 당당히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뽀빠이 만화는 1933년 ‘뱃사람 뽀빠이’(Popeye the Sailor)라는 이름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으며, 80년에는 로빈 윌리엄스와 셀리 듀발이 주연한 뮤지컬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뽀빠이라는 뜻은 눈이 튀어나온다는 뜻의 ‘Pop eye'에서 나왔다고 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발음으로 알려진 탓에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전혀 다른 캐릭터로 혼동되는 일도 있었다. 뽀빠이의 연인인 올리브의 성은 재미있게도 ‘올리브 오일’이다. 이들은 올리브의 오빠인 ‘캐스터 오일’을 통해 만나게 되었으며 뽀빠이가 태어난 지 70년이 되던 99년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 강한 미국의 상징

대중 문화의 역사에서 뽀빠이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는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작은 키에 팔뚝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고, 뱃사람 특유의 거친 말투까지 지닌 그는 요즘의 기준으로 볼 때 ‘매력 없는’ 남성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악당 부르터를 무찌르는 영웅으로 묘사되며, 연인 올리브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마초’의 원조와도 같은 뽀빠이라는 인물은 바로 그 당시 국력이 팽창하고 있던 ‘강한 미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뽀빠이와 같은 힘을 내고 싶어 싫어하던 시금치를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뽀빠이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될 당시 미국의 시금치 소비량은 30% 이상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시금치의 영양소는 힘을 내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힘이 세진다는 설정은 말 그대로 만화 같은 내용이다. 영양학적으로 힘을 내기 위해서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같은 에너지원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시금치에는 이들 영양소가 거의 들어있지 않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게 된 것은 원래 미국 어린이들에게 시금치를 많이 먹도록 하기 위한 시금치 회사의 홍보가 목적이었다. 당시 시금치는 칼슘과 철분이 많아 성장 촉진과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의해 시금치가 철분의 왕이라는 속설 역시 허상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다. 1870년 시금치의 영양소를 분석하던 E. 본 울프 박사는 실수로 소수점 하나를 잘못 찍었고 그 때문에 시금치에는 실제보다 10배나 많은 철분이 들어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들이 시금치의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시금치에는 철분은 그다지 많지 않은 대신 우리 몸에 필요한 비타민 A, B1, B2, C와 섬유질, 요오드 등이 골고루 들어 있다. 특히 비타민 A는 채소 중에서 시금치에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눈의 건강에는 시금치가 필수적이다. 또한 시금치는 뇌기능의 노화를 막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반드시 끓는 물에 데쳐먹어야

시금치를 조리할 때는 반드시 끓는 물에 데친 다음 삶은 물을 따라내고 먹어야 한다. 생 시금치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수산은 신장과 요도 결석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금치를 데치면서 소금을 넣으면 색상이 더 선명해지고 조직도 단단해져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식당에 가면 색을 유지하기 위해 중조를 넣어 데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중조가 시금치의 섬유소를 파괴하여 쉽게 뭉그러지게 된다.

아이들에게 시금치를 먹이는 일은 아직도 많은 부모들에게 난제일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억지로 먹기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에 섞어 자연스럽게 그 맛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오믈렛이나 그라탕 등에 시금치를 첨가하면 색다른 맛이 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중에는 반죽에 시금치 즙을 넣어 고운 초록색이 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몸에 좋은 시금치를 좀 더 쉽게 먹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아닌가 싶다.

시금치의 영양가를 효율적으로 섭취하기 위해서는 기름에 살짝 볶아 먹거나 육류의 간, 등푸른 생선, 굴, 조개 등 비타민 B2가 풍부한 음식과 함께 먹으면 좋다.

장세진 맛 칼럼리스트


입력시간 : 2004-08-04 14:42


장세진 맛 칼럼리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