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고난의 한 컷열정이 ?G어낸 혼의 흔적들감춰진 끼와 내면의 모습까지 담아내는 카메라 워크

[패션] 패션화보 촬영 동행 취재기
인내와 고난의 한 컷
열정이 ?G어낸 혼의 흔적들
감춰진 끼와 내면의 모습까지 담아내는 카메라 워크


패션이 꽃이라면 패션 화보는 잘 가꿔진 화단이며 꽃다발이다. 패션전문잡지가 아니더라도 패션화보는 여성잡지에서 빼놓을 수 없다. 노골적인 광고라고 두드려 맞아도 패션을 가장 잘 표현해 내는 것은 패션화보가 아닌가. 아름다운 모델과 프로페셔널 스텝들의 합작품. 그 화려함 뒤 감춰진 구슬땀을 체험한다.

- 찜통더위 속 기분 좋은 강행군

패션화보 촬영을 직접 답사하기 위해서는 몇 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먼저 동행을 요청했던 유명 패션지 V지. 모델 스케줄 때문에 이틀의 촬영이 하루로 줄어 스케줄이 빡빡하단다. 게다가 촬영은 12마리의 애완견을 대동하고 촬영 장소를 하루 4~5군데 이동해야 한다니 안되겠다. 라이선스 여성지 C지에서 국내 창간 4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패션화보 촬영이 잡혔단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기온에도 불구하고 야외촬영 스케줄이 첨부돼 있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다행히 대절버스로 이동하는 행운은 있었다.

화보촬영은 모델 스타일리스트 사진작가 헤어 메이크업, 이 모든 인력을 총괄하는 패션기자의 시스템이다. 오늘 화보의 주제는 스포티브, 로맨틱 캐주얼, 클래식, 파티분위기로 4가지. 스프레드 4장짜리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주제도 다양하고 특히나 모델 수가 많아 고생스러운 촬영이다.

촬영당일 오전 10시. 집합 장소인 신사동 K미용실로 향했다. 남자 모델 7명과 오늘의 메인 모델 김원희 씨도 벌써 도착해 기초 헤어 메이크업을 마친 상태. 인형 같은 외모에 털털한 성격, 코믹한 말투와 행동, 만능 방송인으로 인기를 더해가는 그녀를 섭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거리다. 웬만한 연예인을 카메라 앞에 모시려면 3개월 이상의 공을 들여야 하고 스케줄을 잡았다 해도 당일 그 시간이 돼봐야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시간보다 일찍 나와 준비하고 있는 김원희 씨는 의리녀. 얼마 전 중국 유명 여배우를 섭외했다 펑크 맞은 경험이 있다는 담당기자에게 “오늘 촬영 잘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돌발사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20여명의 스텝을 인솔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도리질을 한다.

모든 사람이 집결을 완료한 1시간 뒤 15인승 대절버스와 밴1대, RV형 2대로 이동, 첫 촬영지인 대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내부는 오래된 나무 마룻바닥의 농구 코트였다. 그림이 안 나오겠는걸. 이 장소에서 촬영경험이 있는 10년차 스타일리스트 리밍은 지하 무용실을 추천한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 보니 이런, 마루가 다 뜯겨져 나가고 대대적인 공사 중이다. 벽면도 병원처럼 하얗게 새로 발라져 있다. 담당기자와 사진작가, 스타일리스트가 머리를 맞댄다. 시멘트 바닥에 체조 시트를 깔고, 의자도 나르고, 공도 몇 개 던져 놓고, 순식간에 멋들어진 화면이 나온다. 모델집합!

한여름에 그것도 두면의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 탓에 촬영지는 그야말로 찜질 방이 따로 없다. 가만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진다. 시기상 가을, 겨울 상품을 걸쳐야 하는 모델들이 안됐다. 이 더위에 털 스웨터, 모직재킷 입고 목도리까지 둘러야 한다. 그저 멋져 보이는 그들에게 이런 비애가 있었다니. 그나저나 쭉 빠진 몸매의 꽃미남 총각들이 눈앞에서 단체로 옷을 훌훌 벗어 던지니 눈은 즐겁다. 자 이제 스타일리스트 활약의 순서. 촬영지에 도착하자마자 옷이며 신발, 액세서리를 차곡차곡 펼쳐 놓더니 스타일리스트 리밍과 그녀의 어시스턴트는 모델들의 이름을 하나毬?불러가며 순식간에 옷 입히기를 마친다. 준비된 옷들을 무리 없이 척척 코디해 내는 걸 보니 대단한 내공이 필요한 듯하다. 아무리 신체사이즈를 꿰고 있다 하더라도 입혀 보지 않는 한 잘 맞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 "왜 자꾸 옷을 벗는거야!"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 전 남자 모델들은 저희끼리 공 던지고 가볍게 몸을 푼다. 촬영지에 김원희 씨가 투입되기 전 사진작가가 구도를 맞춰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을 찍어낸다. 스텝들은 샘플사진을 보며 의견을 교환한다. 메인 모델인 김원희 씨가 청바지 차림에 사자머리를 하고 촬영장소에 당도했다. 메이크업 팀이 달려들어 화장을 고치고, 드레스가 입혀지고 점퍼와 복싱 부츠가 걸쳐진다. 그녀가 자리를 잡자마자 첫 번째 컷 촬영시작.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고요 속에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공간에 울린다. 그 리듬에 맞춰 8개의 피사체가 제각각 다른 포즈를 취한다. 시선을 빨아들이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필름을 교체하는 잠깐의 휴식. 잽싸게 흐르는 땀을 닦고 의상을 매만진다. 다시 시작된 촬영. “왜 자꾸 옷을 벗는 거야!” 촬영이 진행될수록 점점 탈의(?)해 가는 모델들에게 사진작가 소혁찬 씨가 한 소리 한다. 더운데 어떡해. 자신들도 모르게 옷을 벗던 모델들은 머쓱하게 웃는다. 다시 한번 땀 닦고 옷매무새를 고친다. “자! 갑시다!”

시원한 냉면 한 사발씩을 들이키고 다음 촬영지인 양재시민공원으로 향했다. 모델들은 좁은 차 안에서 잘도 옷을 갈아입고 스텝들은 씩씩하게 공원 한 편 그늘에 터를 닦는다. 얼마 후 로맨틱 캐주얼의 테마에 걸맞게 알록달록 70년대 판 소년들이 떼로 몰려온다. 여전히 사자머리를 휘날리는 여주인공께서 디자이너 강기옥의 진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신다. 7인의 로맨틱 남과 흑설공주(?) 신이다. 막 촬영이 시작되는 찰라, 스텝 중 한 사람이 어디서 얼음과자를 한 봉 안고 왔다. 쭈쭈바가 이렇게 맛있었나? 꿀맛이 따로 없다. 멋지게 차려 입은 모델들도 절대 사양 않고 쭈쭈바 하나씩을 들고 빤다. 얼음과자 하나에 힘을 얻어 두 번째 촬영도 오케이.

에어컨 빵빵한 차 안은 천국이다. 그래 이제 스튜디오 촬영만 남았으니 고생 끝이다. 그러나 안심은 일렀다. 더 큰 고행이 시작될 줄이야.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실내 에어컨으로도 이미 달궈진 더위를 식히지 못했다. 연신 냉장고 문을 열어 차가운 음료수로 목을 적시는 수밖에.

스튜디오는 미리 세트를 꾸며 둔 상태. 꽃무늬 벽지와 앤틱 소파 세트. 멋진 세트를 칭찬하며 너도나도 디카를 꺼내 기념 컷을 남긴다. 세세한 세트 공사와 조명 장비 설치를 마무리 하는 동안 스텝들은 시안을 점검한다. 이번에는 고풍스러운 럭셔리 무드를 담아내야 한다. 한쪽에서는 구불구불한 머리칼을 드라이로 펴고 눌러대느라 헤어 디자이너들의 손길도 바쁘다. 탈의실을 드나드는 모델들의 외모가 그야말로 변신 수준이다. 옷이 날개라더니 다들 날아갈 듯 멋지다. 작품하나 나오겠다.


- 김원희 춤사위로 스튜디오는 웃음바다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나타난 김원희 씨의 머리 모양이 좀 이상하다. 피에로처럼 삼단 뿔기둥을 세운 것 아닌가. 파티웨어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헤어 디자이너와의 의사소통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런 일은 다반이다. 난생처음 만난 스텝들을 모아 놓고 협동 단결해야 하는 것이 패션화보 촬영이니까. 메인 모델의 미친년 꽃다발을 정돈하는 동안 40여분이 흐른다. 1초가 세월 같다. 체력의 한계다. “신 기자님, 어떻게들 버텨요?” “편집국 냉장고안은 약 천지예요. 기자들마다 제 이름 적힌 약 봉투가 몇 갠데.” 그땐 몰랐다. 참관만으로 이틀을 앓아 누울 줄은.

인쇄된 붉은 글씨의 장막 앞에 모델들을 세웠다. 파티 분위기, 뮤직 큐. 늘어져 있던 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들떠서 명랑 발랄 몸짓을 해 보인다. 엉거주춤 우스꽝스러운 김원희표 춤사위도 목격했다. 순간 스튜디오는 폭소 천국이 된다. 이 맛에 일 하나 보다. 순간순간의 웃음이 에너지가 되고 모두에게 충전된다. 마지막이다. 힘내고, 한 롤만 더!

“수고하셨어요!” 수고한 일없는 사람까지 덩달아 완주의 벅찬 악수를 나눈다. 정말 수고 했다. 배 깔고 앉아 감자 칩 기름 묻은 손가락으로 슥, 슥 넘겨봤던 화보 한 장을 완성하는데 이런 땀과 노력이 곁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지난 주, 이 칼럼을 쓰고 있던 중 패션화보 촬영을 위해 물가에 나간 슈퍼모델 출신 모델이 실족사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원인이 사진작가가 무리한 포즈를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보도였다. 젊은 목숨을 앗아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작품 한 컷을 위한 열정이 부른 사고였다는 것은 이해돼야 할 텐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그 열정은 화려함이 아닌 배려와 인내와 대화【?시작된다는 것도 함께.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8-18 11:19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