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엿보기] 솔로들이 자주 가는 극장


솔로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극장이 있다. 바로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안의 극장 하이퍼텍 나다이다.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만의 영화관이라는 말처럼 나다는 처음부터 ‘나만의 영화관’을 지향했다.

솔로들에게 나다처럼 편한 곳은 없다. 대부분 혼자 오기 때문에 혼자 영화를 보러 온 것에 대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커플들의 애정행각에 눈 버릴 일도 없다.

또한 그곳은 국내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이기에 선택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고급 문화 향유층이 됐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좌석에는 문화 대표 인사들의 자리들이 하나씩 있다. 예를 들어 서태지를 좋아한다면 서태지 자리를 달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두시간 동안 서태지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행운을 누릴 수가 있다.

그녀는 이탈리아 영화 ‘나에게 유일한’ 을 보기 위해 혼자 나다에 갔다. 골드 회원 카드를 창구에 내밀며 ‘좋은 자리 주세요’ 라며 살짝 윙크까지 했다. 기다리는 사이, ‘오늘 날씨 너무 덥죠’ 내지는 ‘식사는 하셨어요?’ 라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극장이기도 하다. ‘좋은 자리 드렸어요. 쾌적한 시간 되세요’ 매표소 직원도 살짝 웃으며 표를 내민다. 골드회원은 좋은 자리를 배정 받는다는 것을 아는 그녀다. 커피점 할리스에서 20% 할인된 가격에 아이스라테를 마시며 흐믓하게 극장으로 들어간 그녀. 새삼스레 혼자인 것에 감사하며 시원한 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 여름휴가를 즐길 셈이었다.

안쪽 구석자리가 무척 안락한 느낌이었다. 불이 꺼지고 오른쪽 통유리 너머 시골 장독대 풍경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들어 가자 그녀는 잠시 편안함을 느낀다.

그 순간 어둠 속으로 한 남자가 들어오는데, 이게 웬걸, 바로 그녀의 옆자리 아닌가! 그가 털썩 앉는 순간 그녀의 의자도 함께 털썩 움직였다. 오 마이 갓. 그녀가 배정받은 곳은 커플석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는 그가 엉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함께 움직여야 했고, 그녀가 다리를 꼴 때마다 그의 엉덩이도 함께 흔들렸다.

영화 ‘나에게 유일한’은 열 여섯살의 성장영화였다. 한 씬 한 씬 마다 그녀는 찌릿찌릿한 전율을 느꼈다. 영화를 보면서 옆의 남자와 감정의 공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그녀. ‘뭐야, 모르는 남자와 텔레파시가 통하는 거야. 난생 첨이야.’ 긴장돼서 침을 꼴깍 삼켰는데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난감했다. 영화가 끝나고 그녀는 서둘러 매표소 창구로 갔다. 그러자 ‘영화 잘 보셨어요. 생각해서 좋은 자리 드렸는데’ 모른체 하며 살짝 윙크하는 매표소 직원. 뒤를 돌아보는데 방금 옆자리에 앉은 남자도 매표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파리의 연인’의 주인공 한기주의 외모를 가진 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둘은 서로 민망한 듯 눈 인사를 하고, 자연스레 할리스에서 방금 본 영화를 마치 자신들의 성장영화인 듯 맞장구치며 신나게 이야기 한다. ‘우리는 젊었고, 오만했으며, 우스웠고, 극단적이었으며 성급했었다’를 함께 외치며.

요즘 들어 하이퍼텍 나다에 혼자인 각자가 둘이 되어 나간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니 솔로인 사람들에게 하이퍼텍 나다를 추천한다. 또한 매표소 직원에게 늘 관심을 가지라는 것을 당부한다. 혹시 아는가. 깜짝 이벤트로 권상우 같은 배우가 어느 날 매표소 일일 직원이 되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매표소 직원은 우연을 만들어주는 사랑의 메신저이다.

유혜성 마음스타일리스트


입력시간 : 2004-08-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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