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코드로 자리매김한 스포티즘, 노출과 낭만의 옷입기 유행남성복에 메트로섹슈얼과 웰빙바람, 믹스 & 매치·액세서리로 자유 만끽

[패션] 2004 상반기 패션 총정리
패션코드로 자리매김한 스포티즘, 노출과 낭만의 옷입기 유행
남성복에 메트로섹슈얼과 웰빙바람, 믹스 & 매치·액세서리로 자유 만끽


한여름의 뙤약볕도 물러갔다. 그렇게도 바라던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을 차례다. 어느 때보다 다양한 유행 패션이 거리를 메웠고 갖가지 패션의 색깔을 즐기는 재미도 뜨거웠던 2004 봄여름 패션을 되짚어본다.

- 스포츠, 그 위대하고 영원한 매력

속옷을 노출하거나 속옷 같은 겉옷도 노출패션의 아이템. 씩스티에이트(왼쪽), 골반이 드러날 정도로 낮은 허리선의 로우라이즈 진은 노출패션의 또 다른 인기품목이었다. 얼진

옆 선에 아디다스 3색 줄이 선명한 면 바지에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입고 핸드백을 맨다. 스니커즈도 하이힐도 어울리는 옷차림이다.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스포츠룩. 지난해에 이어 올해의 메가 트렌드 역시 ‘스포티즘’이었다. 운동복은 이제 운동할 때만 입는 옷이 아닌 패션 리더들의 유니폼이다. 피트니스 센터의 러닝 머신 위를 달리다 온 듯한 트레이닝 팬츠, 짚업 점퍼와 스포츠 비닐 백, 스니커즈 차림의 젊은이들로 거리는 운동장이 됐다. 스포츠의 장르가 다양하듯 스포츠 모티브는 그 다양성으로 패션을 잠식했다. 트레이닝복, 스니커즈, 야구모자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 남성복과 여성복, 포멀 웨어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거리패션과 믹스&매치를 주도했고 특유의 장식성으로 액세서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지난해 캐주얼과 스포츠가 섞인 캐포츠 룩이 유행할 때만해도 일시적인 유행 현상인 패드(Fad)로 여겼던 스포티즘. 이제는 의류업체 전반에서 스포츠 테마가 없으면 장사하기 힘들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게다가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도 영향이 컸다.

이번 시즌 가장 큰 변화는 천편일률적인 운동복에서 축구, 레이싱, 모터스포츠 등 개성을 강조한 스포츠 경기를 주제로 특화한 아이템이 많아졌다는 것. 말할 것도 없이 골라 입는 재미도 톡톡했다.

- 노출, 감춰진 성(性)을 드러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를 드러낸 노출패션은 2004년 상반기 최대의 화두였다. 캐주얼웨어도 노출로 섹시하게 표현해야 먹힐 정도로. 지오다노(왼쪽), 이제는 스테디셀러로 자리한 스포츠룩, 각종 스포츠 경기를 모티브로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카파

올 상반기 패션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노출’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제 몸을 보여주겠다는데 말릴 수 없다. 조롱과 비난 대신 옹호와 권장의 분위기가 넘쳐 났다. 운동으로 야무지게 가꾼 신체를 열심히 노출했고 민망함 대신 부러움의 시선을 안았다.

지난해부터 불어온 건강과 운동 열풍으로 ‘보여주고 싶은 몸’으로 노출은 더욱 과감해졌다. 노출도 모자라 아예 벗고 나선 연예인 누드의 파급효과도 노출패션의 붐을 조장한 큰 손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트레이닝 된 몸’을 자랑하고 웬만한 노출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배꼽과 골반이 드러날 정도로 밑위 길이가 짧아진 로우라이즈 팬츠, 어깨 끈 없는 홀터넥 슬리브리스, 속옷 노출과 슬립 톱의 인기, 신발도 발의 면적이 많이 드러나는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된 스트링 샌들과 조리스타일이 거리를 수놓았다. 노출패션의 대표 아이템, 미니스커트 대신 숏 팬츠가 유행한 것은 그나마 노출사고(?)를 경미하게나마 줄인 셈.

- 불황이 가져온 낭만적 패션

꽃분홍, 꽃무늬, 꽃장식. 달콤한 향기에 젖어든 여성들의 꿈이 낭만주의를 불러왔다.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원피스와 무릎길이 주름스커트, 볼륨 있는 가슴을 강조하는 하이웨스트 상의, 실크와 저지 같은 물 흐르는 듯하게 신체에 밀착되는 소재, 화사한 스카프와 뾰족한 하이힐,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한 것이 로맨틱 스타일. 1950년대 풍 패션의 복고주의로 대표되는 2004년 로맨티시즘은 현재의 어두운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세계 곳곳을 위협하는 테러, 회복되지 않는 경제난 등 현실을 잊고 풍요로운 시대를 그리워하는 욕구 표출의 결과라 하겠다. 불황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는 꿈속의 여인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듯 하다.

로맨틱 무드에는 색상도 더 밝고 선명한 원색이 사랑받는다. 봄 거리패션의 화두는 무엇보다도 ‘컬러’였다. 파스텔 톤의 컬러보다는 선명한 브라이트 컬러가 거리를 꽉 채웠다. 거리를 점령한 컬러풀 트렌드를 잘 반영한 아이템은 여성들의 구두였다. 브랜드들은 물론 동대문 쇼핑가들, 길거리 보세 신발 가게까지 에나멜 소재의 컬러풀한 슈즈를 전면에 진열했고 핫핑크, 옐로, 레드, 바이올렛, 그린 등 톡톡 튀는 색상과 디자인의 슈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름에 와서는 잴리백과 플립플랍의 플라스틱 색상이 사랑받았다.

- 남성, 패션에 눈뜨다

왼쪽부터, 1950년대 패션은 2004년 로맨티시즘의 모티브였다. 50년대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를 페러디한 패션사진. 모르간,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패셔너블한 새로운 남성상을 완성해 냈다, 속옷을 노출하거나 속옷 같은 겉옷도 노출패션의 아이템. 씩스티에이트

2004년 상반기 남성복 경향은 메트로 섹슈얼과 웰빙이라는 두 가지의 특징을 앞세워 부드러운 소재와 실루엣, 핑크 같이 생기 있는 컬러가 유행했다. 봄부터 다양하고 화려한 꽃무늬가 유행한 가운데 남성복도 그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여성복에서 주로 보여 지던 꽃 모티브가 남성복의 셔츠와 넥타이 등에 확대됐다.

여름의 시작과 함께 ‘메트로 섹슈얼’의 표상, 꽃무늬 셔츠의 유행에 이어 보다 완성된 스타일의 멋진 남성을 만났다. <파리의 연인>을 업고 등장한 한기주 패션은 ‘불황에는 여자들의 치마길이가 짧아지고, 남자들은 넥타이 폭이 넓어진다’는 패션학을 만들었다.

능력 있는 비즈니스맨에다 재벌 2세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이 몸에 배어 있는 한기주는 날씬해 보이는 연회색이나 청색의 수트, 줄무늬가 있는 흰색 셔츠까지는 보통의 비즈니스 정장 차림이지만 타이와 포켓 치프 스카프로 색깔 있음을 강조한다. 꽃무늬, 도트, 사선 줄무늬에 원색적인 실크 타이와 포켓 치프 스카프 등 유러피언 스타일의 날렵 더블 버튼 재킷에 폭이 넓은 와이드 타이를 매치해 귀족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당신을 파리의 연인으로 만들어 드립니다’를 전면에 건 모 의류업체는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 매출이 전년대비 17% 정도 신장 했다고 한다. 한여름에 가을 상품으로 때 이른 호황을 봤다고 하니 그 효과는 앞으로도 대박을 이어가지 않을까.

- 자유로움의 상징, 믹스매치 레이어드룩

각양각색의 패션 트렌드가 유행하다 보니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가지 옷가지가 옷장에 쌓이게 됐다. 몇몇 창조적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믹스&매치의 아이디어가 돌출됐고 거리로 나온 이상스런 패션은 곧 유행이 됐다. 서울 거리를 매운 스트리트 스타일은 뉴요커 스타일과 니뽄 스타일을 응용한 월드패션. 믹스매치 레이어드룩의 가장 큰 장점은 한 벌로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왼쪽부터, 로맨틱 패션의 유행에 컬러풀한 아이템도 늘었다. 명품 켈리백을 컬러풀하게 패러디한 젤리백 , 사랑스러운 컬러와 리본, 나비 모티브는 로맨틱한 여성들의 꿈을 실현했다. 코치 , 커다란 프레임의 선글라스, 밀짚모자. 휴양지 패션은 휴식을 원하는 웰빙족들에게 인기였다. 프라다

여름의 절정기에 ‘강태영 스타일’로 부상한 볼레로는 이미 봄부터 유행했던 레이어드룩 아이템 중 하나였다. 란제리풍의 캐미솔 톱 위에 짧은 볼레로를 입어 귀여운 분위기를 내고 하늘하늘한 시폰 미니 원피스에 청바지를 매치해 여성스러우면서도 캐주얼한 두 가지 효과를 본다. 또 니뽄 풍의 저지 소재 원피스나 튜닉스타일의 瓚퓻?면 소재 와이드 팬츠, 부츠 컷 팬츠를 코디하는 다양한 스타일링이 창조됐다. 지난해에 이어 컬러풀 슬리브리스에 실켓소재의 얇은 티셔츠를 덧입는 레이어드 스타일도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 액세서리 전성시대

이번 봄여름 가장 많이 구매한 패션 아이템은? 단연 액세서리가 아닐까. 액세서리의 인기는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의류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덜 나가는 액세서리를 골라 코디함으로 변화를 주는 알뜰파가 늘어난 이유다. 가방, 구두, 모자, 스카프, 벨트, 선글라스 등 잡화류는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절찬리 인기 품목으로 떠올랐다.

핸드백, 여성 샌들 등은 무늬와 색, 장식이 더욱 화려해졌고 어느 하나 특별히 유행한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켰다. 벨트나 선글라스는 크기로 승부했다. 복고풍 보잉선글라스에서 얼굴 반을 가리는 재키 스타일 등이 초봄부터 자외선 차단과 멋 부리기에 나선 선글라스 족들의 애장품이 됐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무엇보다도 활용가치가 높은 머플러와 스카프. 술과 비즈 디테일의 긴 머플러, 화사한 색상의 실크 스카프, 목과 머리에 살짝 매는 쁘띠 스카프가 유행했다. 모자류는 머리를 장식하는 소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매쉬 소재 반더치 야구모자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머리에 착 달라붙는 니트 소재 모자와 스카프를 활용한 두건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무의식적으로 집어 든 티셔츠 하나와 눈길을 사로잡는 쇼윈도우의 샌들. 그것들이 왜 맘에 드는지, 왜 돈을 지불하고 애용하게 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패션은 자율학습이다. 누구하나 가르치지 않고 배운 적 없지만 눈과 경험을 통해 진보해 간다. 유행 패션 아이템들은 어느 것도 본 모습으로 유행하지는 않는다. 변형과 진보와 새로운 정신이 깃들기 마련이다. 2004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패션 트렌드를 통해 진보된 시대상을 진단할 수 있지 않을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8-25 15:47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