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새겨진 빵집의 추억70·80년대 제과점에 얽힌 가족사와 추억의 편린들

[문화 속 음식기행] 소설<뉴욕제과점> 카스텔라
가슴에 새겨진 빵집의 추억
70·80년대 제과점에 얽힌 가족사와 추억의 편린들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아무리 조심스럽더라도 왜곡을 불러오기 쉽다. 친일파가 나라를 일으킨 지도자로 둔갑하는가 하면 군사주의, 파시즘으로 얼룩진 시절이 터무니없는 향수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가 김연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소설 <뉴욕제과점>을 연필로 썼다고 밝혔다. 몇 번이고 썼다 지우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자아를 치유하자는 것이다.

<뉴욕제과점>은 김연수가 2002년 내놓은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 수록된 자전적인 단편이다. , <스무살> 등 젊은 감각이 넘치는 그의 전작들에 비해 이 연작 소설집은 좀 더 차분한 느낌이 든다. 작가 자신도“이 소설집 덕분에 나는 다음 작품을 쓸 수 있게 됐다. 어쩐지 이로써 내 습작기가 막을 내리는 느낌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김천이다. 그는 김천역 앞 뉴욕제과점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뉴욕제과점은 1970, 80년대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단팥빵·소보로빵·크림빵 등을 팔고 남녀 학생들이 미팅이나 데이트를 하던 빵집이었다. 작가는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빵집 아들의 지위란 재벌 2세 못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당시만 해도 별식에 속했던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 질리도록 먹던 '기레빠시'

그러나 정작 그가 매일같이 먹었던 빵은 생과자나 롤케이크 같은 값비싼 빵이 아니었다. 단팥빵·소보로빵·크림빵 같은 기본적인 빵과 우유가 선택할 수 있는 메뉴였고 그나마 돈을 모아야 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먹을 빵까지 팔았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질리도록 먹어야 했던 빵은 카스텔라의 가장자리를 잘라낸 ‘기레빠시’였다. 이상하게도 다른 빵에 비해 빨리 싫증이 난 카스텔라 부스러기를, 이들 가족은 먹다 먹다 지쳐 개에게까지 준다. 그 때문에 “뉴욕제과점에서는 개도 카스텔라를 먹더라”는 소문까지 나게 된다.

뉴욕제과점은 세 번, 변화의 기회를 맞이한다. 첫 번째는 5공 출범 무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빵을 사먹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때 작가의 어머니는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 여름에 빙수, 각종 명절에 선물용 케이크 같은 품목들을 착실히 팔아왔다. 말하자면 그때가 뉴욕제과점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두 번째 기회는 5공화국이 끝날 즈음 왔는데 이때는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어 바게트, 피자빵, 야채빵 등을 찾게 된다. 뉴욕제과점도 시대에 맞추어 메뉴를 바꾸어 보았으나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입원하면서 장사는 조금씩 어려워진다. 마침내 세 번째 기회였던 90년대 초, 대형 프렌차이즈식 빵집이 김천에도 들어오자 뉴욕제과점은 생명을 마감할 때를 맞았다. 기레빠시도 버리지 않고 먹던 어머니는 팔리지 않아 썩어 가는 빵을 비닐봉지에 담아 몰래 버리기 시작한다.

작가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쇠락해 가던 뉴욕제과점은 사라지게 된다. 뉴욕제과점의 빈자리를 애써 외면하던 그는 어느 날 술에 취해 다시 그곳을 찾아간다. 작가는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어린 시절 늘 함께 했던 뉴욕제과점이 아직도 가슴속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빵’이라는 단어가 포르투갈어 ‘Pao'에서 왔듯이, 카스텔라도 원래 이베리아 반도의 소왕국 ’카스티야‘를 포르투갈어 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카스티야 사람들이 즐겨 먹던 과자가 이웃 포르투갈에까지 유행하게 되고 포르투갈인에 의해 1570년대에 일본에 전해진다. 일본인들은 카스텔라를 오늘날처럼 푹신하고 촉촉한 과자로 변형시켰고, 지금도 카스텔라의 원조 하면 일본의 나가사키 지방을 꼽는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드러운 카스텔라에 우유 한잔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간식이었다. 카스텔라는 보통 빵으로 알려져 있지만 분류상으로 볼 때는 빵류가 아닌 과자류에 속한다. 달걀, 설탕, 밀가루, 우유 등이 들어가는데 배합량이나 굽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다양하다. 잘 구워진 카스텔라는 절단면의 밀도가 고르고 적당히 탄력이 있다.

::::: 카스텔라 만들기 :::::

-재료: 박력분 135g, 달걀 4개, 설탕 100g, 우유 75g, 바닐라향 약간, 소금
-만드는 법:
1. 박력분을 세 번 체에 친다.
2. 달걀 흰자를 볼에 넣어 단단하게 거품을 내다가 설탕과 소금을 넣고 더 젓는다.
3. 2에 달걀 노른자를 넣어 섞는다.
4. 달걀 거품이 크림색이 되면 체에 내린 밀가루를 섞어준다.
5. 완성된 반죽을 빵틀에 부어서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30여분 동안 구워낸다.

** tip: 설탕을 줄이고 꿀을 적당량 넣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입력시간 : 2004-09-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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