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같은 놀이, 놀이 같은 공부 개발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이자 아동교육자, 유아교육에 헌신한 생애

[역사 속 여성이야기] 마리아 몬테소리
공부같은 놀이, 놀이 같은 공부 개발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이자 아동교육자, 유아교육에 헌신한 생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몬테소리’는 익숙한 말이다. 특히 미취학 아동이 있는 집에는 ‘몬테소리 교육법’이라던가 ‘몬테소리 교재도구’ 등등, 몬테소리라는 말이 붙은 유아교육과 관련된 책이나 도구가 한 두 개쯤은 있다. 몬테소리는 유아교육의 대명사처럼 사람들에게 불려지지만, 정작 몬테소리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몬테소리는 아이들의 놀잇감에 듣기 좋어라고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놀잇감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개발해낸 이탈리아의 여의사이며 심리학자, 아동교육자였던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녀가 개발한 아동 교육방법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

마리아 몬테소리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무남독녀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사랑하는 딸이 그저 당시 여성들이 살아가는 대로 무리없이 살기를 원했다. 이에 비해 어머니는 매우 진취적이었다. 어머니는 똑똑하고 총명한 딸이 자기개발을 해나가는 것에 적극 찬성했고 이를 도왔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소 흥미를 가졌던 기술학교에 진학을 했고, 이어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의대에 입학하였다. 어렵사리 진학한 의대였지만 공부 또한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많은 수업에서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고 그 차별을 극복하고 학점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여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리아 몬테소리는 6년 만에 로마대학 의과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1896년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같은 해 베를린 국제여성학회에 참가하여 이탈리아 여성해방에 대한 강연을 해 주목을 받았다,


-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

마리아 몬테소리는 로마정신병원의 보조의사로 의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정신지체 아동들이 아무런 조치없이 그저 동물처럼 수용되어 있는 끔찍한 환경을 목도하게 된다.

이들 정신지체 아동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은 그들을 동물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경멸하고 있었고, 그저 때가 되면 밥을 주는 것 외에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1898년 이탈리아 교육학회에 장애 어린이들의 교육개혁을 요구하였다. 또한 그녀 스스로 정신 박약 아동들 사이로 뛰어 들어 그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치료의학자 이타르와 세겡의 저술에 감명을 받은 마리아 몬테소리는 그들의 이론을 실제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정신지체 어린이들의 감각을 개발하기 위해 특수한 도구를 만들고, 이를 만지고 느끼면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도구를 만지고 느끼면서 산만하던 아이들은 집중력이 생기고 자기 안에 개발되어 있지 않던 많은 것들을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몬테소리의 교육법으로 많은 정신지체아들의 지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시험에 합격하는 일도 일어났다.


- 의사에서 교육자로

실험은 성공하였지만, 마리아 몬테소리에게는 개인적인 블행이 닥쳤다. 동료의사 주세페 몬테사노와 사랑에 빠졌던 마리아는 그와의 사이에 아들 마리오를 낳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다. 당시 미혼모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존재였다. 아이는 은밀히 양부모에게 맡겨졌다. 어린이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녀였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는 돌불 수 없는 아이러니한 불행이 그녀에게 닥친 것이다. 이즈음 마리아 몬테소리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녀는 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1904년 로마대학 인류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개인적 불析?어린이 교육에 대한 관심을 승화시켜 그녀는 다시 한번 교육자로의 길을 선택했다. 1907년 그녀는 로마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 빈민들을 위한 탁아소를 열었다. 2세에서 6세 사이의 어린이들이 그녀가 세운 탁아소에서 보살핌을 받기 시작했다.


- 어린이의 집

카사 데 밤비니, 즉 어린이의 집이라고 명명된 그녀의 탁아소에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몬테소리는 의사 시절 정신지체 아동들을 교육하던 방법을 더욱 발전 시켜 아이들에게 적용하여보았다. 결과는 예상 밖으로 훌륭했다. 작은 물건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은 만지고 느끼며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고 그것은 아이들의 지력을 향상시키고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성도 교정하였다. 무조건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가르치던 방법은 카사 데 밤비니에서는 배제되었다. 아이들의 인격을 그대로 존중하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실시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아이들의 신체 구조에 맞는 책상과 의자가 이때 처음 개발되었다. 아이들이 흥미로워 하는 갖가지 교재 도구가 개발되었고 이를 통해 아이들은 나날이 발전하여갔다.


- 몬테소리 교육법

몬테소리의 카사 데 밤비니에서의 성과는 점차 입소문을 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녀 스스로 자신이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책을 펴내 이를 널리 알렸다. 많은 나라에서 몬테소리의 어린이 교육법을 알고 싶어했다. 몬테소리 식의 어린이집과 그녀의 교육법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페인 네덜란드, 인도 등지에서 살면서 갖가지 저술활동과 강연을 통해 그녀가 알아낸 어린이 교육법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와중에 그녀는 15세가 된 자신의 아들 마리오를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들 마리오 몬테소리는 어머니를 도와 그녀의 교육법을 알리는 데 앞장서 평생을 두고 그녀의 조력자가 되었다.

오늘날 어린이 보호와 어린이 입장에 맞는 유아교육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 지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만 하여도 어린이는 통제 할 수 없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다. 어린이는 그야말로 가혹하기 그지없는 체벌과 주입식 교육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이는 무조건 정신 지체로 분류되어 도태되었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어린이에 대한 애정과 관찰을 통해 어른으로서 성장하기 전에 어린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잇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마리아 몬테소리에 의해 하나의 인격체가 만들어내는 세계로써 어린이 세계가 인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9-0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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