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의 추억 되살린 가족의 일상통일 독일 뒤 혼수상태서 깨어난 어머니 위한 재미있는 사기극

[문화 속 음식기행] 영화 <굿바이 레닌> 피클
동독의 추억 되살린 가족의 일상
통일 독일 뒤 혼수상태서 깨어난 어머니 위한 재미있는 사기극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얻은 것은 자본주의였다.”

사회주의 정권 붕괴 후 폴란드 어딘가에서 발견되었다던 낙서이다. 1990년을 전후해 동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반세기 동안 지켜온 철의 장막을 거두었고, 분단되었던 동독과 서독도 통일을 맞게 된다. 그 후 그들은 꿈꾸었던 자유와 행복을 얻었을까?

볼프강 베커 감독의 영화 <굿바이 레닌>은 동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가져온 명암에 대해 짚어보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부르짖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갈망한다. 무엇이 과연 진정한 휴머니즘인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 감독은 거대한 스케일의 역사물이 아닌 한 가족의 일상을 소재로 삼았다.

- 그녀의 삶을 지탱해준 건 '사랑

때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와 독일 통일이 코앞에 닥친 1990년.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이자 교사인 크리스티아네(카트린 사스)는 아들 알렉스(다니엘 브??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끼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기절한다. 혼수 상태에 빠졌던 그녀는 이미 동서독이 통일된 8개월 후에야 눈을 뜨게 된다.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의사의 충고로 알렉스는 주변의 모든 것을 통일 전 상태로 돌려놓는 엄청난 사기극을 감행하는데….

지금은 팔지도 않는 동독제 피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쓰레기통 속의 빈 병을 뒤지고, 동네 아이들에게 촌스러운 구 동독 합창단 의상을 입혀 노래를 시키는 정도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엄마 앞에 노출된 변화들을 설명하기 위해 알렉스는 뉴스까지 조작하게 된다. 코카콜라의 창업주는 사회주의자로 둔갑하고, 자본주의가 몰락해 서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동독으로 망명하는 대목에까지 가면 웃어야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마냥 황당하고 유쾌하던 영화의 분위기가 후반부로 가면 조금 달라진다. 크리스티아네는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서독으로 망명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당에서 요주의 대상으로 찍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는 철저한 공산당원으로 살수밖에 없었다는 것. 결국 그녀의 삶을 좌지우지한 것은 돈도, 이념도 아닌 사랑이었던 셈이다.

<굿바이 레닌>의 영향으로 독일에서는 구 동독의 잊혀졌던 문물들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퇴물 취급을 받던 동독산 승용차 ‘트라반’이 화려하게 자동차 시장에 복귀하고 영화에도 등장하는 오이피클, 초콜릿, 술 등이 다시 생산되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추억’마저 상품화되는 현상이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항상 앞으로 가려 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영화 속의 피클은 독일에서 양배추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와 함께 빠질 수 없는 일상식 중 하나이다. 채소나 과일을 오랫동안 보존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저장 식품들을 만들어 냈는데 습도가 높은 동양에서는 곰팡이를 막기 위한 소금 절임이, 건조한 유럽에서는 세균을 억제하기 위한 식초 절임이 발달하게 되었다.

- 4500년 역사의 절임음식

피클의 역사는 자그마치 4500년이나 되었다. BC 2030년경 티그리스 계곡으로 온 인도 원주민들은 오이를 가지고 절임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성경에도 피클의 이용이 언급되어 있고 서아시아, 이집트, 그리스 등에서도 널리 식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매일 피클을 먹었으며 시저는 피클이 정력제라고 믿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피클의 재료는 오이 뿐 아니라 양파, 토마토, 올리브, 콜리플라워, 피망, 당근 같은 채소에 무화과, 체리 같은 과일류 등 무궁무진하다. 피클을 만들 때는 원료를 향신료 섞은 소금물에 절여 젖산발효를 일으키거나 혹은 그냥 설탕, 소금, 식초를 섞은 조미식초에 담그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전자를 발효피클, 후자를 간이피클이라고 부른다. 굳이 비유하자면 간이피클은 우리의 ‘겉절이’ 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또 발효피클은 신맛이 강한 사우어 피클과 달콤한 스위트 피클로 나눌 수 있다.

피클 조미액을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한 편이다. 여러 가지 향신료를 다양하게 이용하기 때문. 피클 재료에 주로 쓰이는 향신료는 월계수잎, 시나몬, 넛멕, 딜, 파슬리, 세이지, 붉은 고추, 마늘, 후춧가루 등이다. 이들 재료를 식초에 끓이거나 아니면 끓는 소금물을 부어 향이 우러나게 한다. 피클은 보통 3~7일 후면 먹을 수 있는데 오래 보관해야 할 경우 병을 미리 가열 살균한 후 밀봉하여 냉암소에 둔다.

입력시간 : 2004-11-03 11:3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