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고려시대 음식문화 엿보기개성상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화로운 맛의 세계
[문화 속 음식기행] 박완서 소설 <미망> 개성음식 화려한 고려시대 음식문화 엿보기 개성상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화로운 맛의 세계
격동의 시대 겪으며 거상으로 성장 당시에 가장 천시되던 상인의 길을 택한 그는 남다른 수완과 배짱을 발휘해 개성에서 손꼽히는 거상으로 성장하게 된다. ‘동해랑’이라고 불리는 으리으리한 기와집과 엄청난 재산, 든든한 자식들까지 둔 그에게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불행이 있다면 자신의 재주를 이어받은 맏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처만은 손녀 태임을 무엇보다도 애지중지하고 있다. 그 무렵, 동해랑에는 심상치 않은 ‘낙조(落潮)’가 찾아온다. 그 시작이 태임의 어머니인 머릿방아씨의 죽음이다. 한 순간의 실수로 친정 머슴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그녀는 전처만의 배려로 친정에서 몰래 아이를 낳고 돌아오지만 시어머니 홍씨의 집요한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와 동시에 동해랑도 일본 열강의 침투에 따라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쇠약해진 전처만은 태임에게 가문과 의붓동생 태남을 맡기고 세상을 떠난다. 동해랑을 물려받게 된 태임은 몰락한 양반가의 자식이자 머슴 신분인 종상에게 자기 대신 신학문을 배워 오도록 하고 그와 결혼한다. 이들 부부는 전처만의 가업을 이으며 독립군에게 자금을 대기도 한다. 신여성으로 성장한 태임의 딸 여란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아들 경우는 아버지를 도와 고무공장 일을 한다. 한편 출생의 비밀로 괴로워하던 태남은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는다. 태임의 죽음과 한국전쟁으로 가문은 쇠락하지만 그녀의 자손들은 새롭게 개성상인의 정신을 잇기 위해 인삼 종묘를 꾸려 남으로 피난을 떠난다. 10여 년 전,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는 이 작품에는 고향 개성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 묻어 있다. 구 한말 개성 지역의 풍속에 대한 세심한 묘사도 재미를 배가시킨다. 특히 작가가 특유의 맛깔나는 문체로 소개하는 다양한 개성음식들은 읽는 이의 호기심과 식욕을 자극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 큰 개성사람들 가장 잘 알려진 개성음식으로 ‘조랭이 떡국’이 있다. 마치 눈사람 모양으로 생긴 조랭이 떡에는 조선 왕조에 대한 개성 사람들의 반감이 담겨 있다. 고려 멸망 후 탄압을 받게 된 이들은 이성계의 목을 자른다는 심정으로 떡과 떡 사이를 대나무칼로 자른 것이다. 쫀득쫀득하게 씹는 맛과 진한 국물이 일품인 조랭이 떡국에는 통통하게 빚은 편수가 들어가 맛을 더한다. 개성음식 중에서도 특히 호화스러운 것이 보쌈김치와 홍해삼이다. 제육보쌈을 먹을 때 편육을 싸먹게 되는 보쌈김치에는 배와 밤 뿐 아니라 낙지에 전복, 젓조기, 석이버섯 등 값비싼 재료들이 아낌없이 들어간다. 혼례 때 자주 상에 으4?홍해삼은 다진 고기에 갖은 양념을 하여 둥글게 빚은 다음 홍합과 해삼을 하나씩 박아 쪄내고, 홍합에는 달걀 흰자위, 해삼에는 노른자위를 씌워 지져낸 음식이다. 여기서 홍합은 여성, 해삼은 남성을 상징한다. 개성에는 돼지고기 요리가 유난히 발달했다. 소설 속에도 전처만의 둘째 며느리가 돼지고기 요리 솜씨를 자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통 편육으로 하거나 달걀 옷을 씌워 전유어로 만들어 먹는다. 또한 임신한 머릿방아씨가 가장 먹고 싶어하는 것이 제육을 썰어 넣은 호박김치찌개라는 묘사로 보아 돼지고기는 개성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었던 음식 중 하나로 추측된다. 요즘은 서울에도 개성식 한정식집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개성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검소함 속에서도 삶의 멋을 누릴 줄 아는 그들만의 여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입력시간 : 2004-12-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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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