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결혼 공포증달걀요리를 매개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로맨틱 코미디

[문화 속 음식기행] 영화 <런 어웨이 브라이드> 달걀
참을 수 없는 결혼 공포증
달걀요리를 매개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로맨틱 코미디


‘결혼’이 사람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수치로 따졌을 때 지수 50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실직의 스트레스 지수는 47, 가까운 친구의 죽음은 37이다. 행복할 것만 같은 결혼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이유는 아마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영화 ‘런 어웨이 브라이드’는 ‘결혼 공포증’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다. 뉴욕 USA Today지의 칼럼니스트 아이크 그래함(리처드 기어)은 기사 거리를 찾아 헤매던 중 술집 바에서 솔깃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메릴랜드의 헤일이라는 마을에 세 번이나 결혼식장에서 뛰쳐 나온 신부가 있다는 것.

아이크는 그녀의 ‘괴벽’에 대해 공격적인 어조의 칼럼을 쓰고 그의 글은 여성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사건의 당사자인 매기(줄리아 로버츠)는 분에 못 이겨 신문사를 고소하겠다고 하고, 그 때문에 편집장은 결국 아이크를 해고하고 만다.

결혼 스트레스와 취향
일이 이렇게까지 된 바에야 아예 전면전에 나서기로 한 아이크. 그는 매기가 사는 마을로 찾아가 매기와 그녀에게 바람맞은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살얼음판 같던 매기와 아이크. 그런데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묘하게 변해 간다. 서로를 적으로 대해야 할 이들은 이상하게도 끌리게 되고, 결국 아이크는 네 번째 약혼자까지 있는 그녀에게 청혼한다. 매기는 이 남자는 다를 것이라는 믿음에 아이크를 받아 들이게 되지만, 결국은 또 다시 식장에서 도망치고 실망한 아이크는 뉴욕으로 돌아온다.

이에 앞서 아이크는 우연치 않게 매기의 행동에 대한 단서를 잡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달걀 요리’였다. 그가 인터뷰한 매기의 전 약혼자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달걀 요리를 각각 다르게 알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요리들은 매기가 아닌 그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즉,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취향과 생각을 그대로 받아 들여 버린 매기는 스스로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잊었고, 그래서 그녀는 알 수 없는 공허감에 매번 식장을 뛰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크와 헤어진 후, 매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달걀 요리를 찾아내기 위해 이것저것 다른 방법으로 요리한 달걀들을 먹어보는데…. 마침내 그녀는 뉴욕으로 직접 아이크를 찾아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조촐하게 식을 올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다소 진부하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명제를, 이 영화는 유쾌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주인공이 자아를 찾는 계기가 달걀 요리라는 설정이 재미있다.

커피에 설탕을 넣느냐 넣지 않느냐, 빵은 흰 빵이냐 호밀빵이냐, 고기는 어느 정도까지 익히느냐…. 한국 사람들이 음식 주문할 때 머리 아파하는 미국식 식당의 수많은 ‘옵션’들 중에는 ‘달걀을 어떻게 익히느냐’도 들어 있다. 한쪽 면만 익힐 수도 있고, 양쪽을 모두 익힐 수도 있으며 부슬부슬하게 볶아서 스크램블로 만들 수도, 끓는 물에 넣어 수란을 만들 수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달걀이다 보니 먹는 방법도 이렇게 가지가지이다.

인간은 닭을 기르면서 그 알도 함께 식용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달걀은 싼값에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었다. 예전에는 도시락에 달걀 프라이 하나만 얹어져 있어도 진수성찬이 되곤 했으며 기차 안에서 사 먹는 삶은 달걀은 영양 만점의 간식이었다. 라면이나 심지어 자장면에도 달걀을 넣어 맛과 영양을 높이기도 했다.

고 콜레스테롤 식품, 하루 하나가 적당
한 때는 완전 식품으로까지 불리던 달걀이지만 최근에는 콜레스테롤 때문에 섭취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달걀은 하루에 두 개 이상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달걀 흰자에는 소화 효소인 트립신의 활동을 억제하는 물질이 들어 있어 많이 먹으면 소화 불량을 일으킨다. ‘삶은 달걀은 가슴을 치면서 먹는다’는 농담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또한 노른자에는 1개당 300mg 정도의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를 앓는 사람에게는 피해야 할 식품에 속한다.

기독교에서 부활절에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주고받는 풍습은 17세기경 유럽의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는 모습을 예수의 부활에 비유한 것이라고 하지만 다른 분석도 있다. 사순절 동안 카톨릭 신자들은 고기나 생선, 달걀 등을 일체 먹지 않은 채 금욕 생활을 하다가 부활절의 종이 울릴 때 비로소 영양 보충을 위해 오믈렛이나 달걀 반숙을 먹었다고 한다. 축제의 기쁨과 금욕 생활의 끝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먹었던 달걀이 이제는 부활 그 자체의 상징이 된 셈이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2-16 14:01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