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고 시원한 겨울철 최고의 별미레몬즙과 어우러진 프랑스 정취의 음식, 차고 날카로운 느낌의 후기작

[문화 속 음식기행] 마티스<생굴이 있는 정물>
신선하고 시원한 겨울철 최고의 별미
레몬즙과 어우러진 프랑스 정취의 음식, 차고 날카로운 느낌의 후기작


먹을 것을 사러 나갈 수 없는 한밤중에는 배가 고파질 때가 더 많고, 돈이 떨어져 갈 때는 꼭 값비싼 음식이 먹고 싶어 진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포화를 피해 만년을 니스에서 보낸 ‘색채의 거장’ 마티스도 예외는 아니었던가 보다. 그의 후기작 ‘생굴이 있는 정물’을 보고 있노라면 전쟁과 악화된 건강이 이 노화가를 꽤나 힘들게 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이 그림을 완성할 무렵인 1940년 말, 그는 71세의 고령이었고 더구나 피난 중이라는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 당시부터 그는 대규모의 작업을 피하면서 좀 더 아기자기하고 장식적인 작품에 치중하게 된다.

‘생굴이 있는 정물’은 생굴을 담은 쟁반, 물병, 나이프, 냅킨 등을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 레몬즙을 뿌린 신선한 생굴은 가장 프랑스적인 정취를 풍기는 음식이다. 차가운 니스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굴은 겨울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별미였을 것이다. 이 생굴을 그림으로써 그는 우울한 연말을 나름의 방법으로 달래 보고자 한 것은 아닐까?

대표작인 ‘모자를 쓴 여인’이나 ‘붉은 바지를 입은 오달리스크’ 등이 붉은 색을 기조로 뜨겁고 정열적인 분위기였다면 ‘생굴이 있는 정물’은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이다. 먼저 냅킨, 굴, 나이프를 수평선상에, 물병을 수직으로 배치한 구도는 보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또한 배경의 진홍색과 날이 선 듯 새파란 테이블 클로스, 그리고 테이블의 연분홍 등이 차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유하자면 이 작품은 레몬을 뿌린 겨울철 생굴 맛만큼이나 신선하고 시원스럽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마티스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창작에 열정을 놓지 않는다. 그의 만년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작업은 색종이 콜라주이다. 병 때문에 이젤을 두고 앉아 있는 것도 불가능했던 그는 대신 가위와 색종이를 가지고 직접 색을 오려 붙였다. 2차대전이 끝난 후인 1949년, 마티스는 니스의 방스(Vence) 성당 건축 설계와 실내 장식을 맡게 된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한다. 마치 죽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전설 속 가시나무 새처럼, 그는 최후의 걸작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사랑의 묘약, 스테미너의 상징으로
고대부터 굴은 ‘사랑의 묘약’으로 애용되는 식품이었다.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지 않는 서구인들의 식습관을 볼 때, 생굴 요리는 지극히 예외적이다. 줄리우스 시저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와인과 굴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아마 이것이 오늘날 화이트 와인과 굴을 함께 먹게 된 유래로 보인다. 또한 로마제국의 황제 위테리아스는 한번에 1,000개의 굴을 먹었다고 하며 시인 아우소니우스는 “눈처럼 희고 달콤한 즙이 바닷물의 소금 맛과 어우러져 훌륭한 맛을 낸다”고 표현했다. 문호 발자크는 한 번에 12타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175개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 역시 전쟁터에 나가서까지 굴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굴’ 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카사노바를 떠올릴 정도로 서양에서는 스테미너의 상징이다. 굴에는 글리코겐과 아연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데 글리코겐은 자양강장에, 아연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에게는 굴이 금기식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굴에는 타우린, 아미노산, 비타민, 셀레늄 등이 골고루 들어 있어 ‘바다의 우유’라고까지 불린다.

굴은 늦가을부터 겨울에 가장 맛이 좋다. 반면 5월에서 8월까지는 굴의 산란기로 알을 보호하기 위한 독성분이 분비된다. 이를 비유해 우리나라에서는 보리가 피고 나서, 일본에서는 벚꽃이 지고 나서는 굴을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영국에서도 굴은 ‘R'자가 들어간 달에만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해산물과는 달리 굴은 양식을 해도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식으로만 나오는 큼직한 굴은 생굴로 이용하기에 더 적당하다. 작은 굴은 주로 젓갈 등으로 가공해서 먹는 경우가 많다. 굴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고 그 본래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생굴을 초장에 찍어 먹지만 서양에서는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레몬즙을 뿌리면 굴 특유의 비린내가 가실 뿐 아니라 레몬의 구연산이 식중독 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또한 레몬에 풍부한 비타민 C는 굴 속의 철분이 체내에 쉽게 흡수될 수 있도록 도와 준다고 한다. 산성 식품인 굴과 알칼리성 식품인 레몬을 함께 먹으면 영양의 불균형도 막을 수 있다. 만약 레몬즙만 뿌린 생굴 맛이 심심하게 느껴진다면 토마토 케첩, 레몬주스, 우스터셔 등으로 간단한 칵테일 소스를 만들어 곁들여도 좋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2-22 14:39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