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격류를 타고 스타일은 흐른다대중음악의 탄생과 함께 움튼 패션, 10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 미쳐

[패션] 대중음악과 패션
음악의 격류를 타고 스타일은 흐른다
대중음악의 탄생과 함께 움튼 패션, 10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 미쳐


양성적 이미지를 추구한 글램 록의 황제 데이비드 보위.

청소년 시절 한 번쯤은 음악에 미쳐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연주자와 가수를 흠모하며 장발을 하고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때문에 상표를 떼어내는 수고를 덜었고, ‘이효리’ 덕분에 배꼽티도 부끄럼 없이 입게 됐다. 뮤직 스타와 함께 한 추억과 패션 이야기.

1980년대 봄 소풍 유원지에 모여든 중ㆍ고등학생들을 박수치고 들뜨게 했던 것은 디스코 바지를 입고 한 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뒷걸음치던 친구들이었다. 그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마이클 잭슨을 따라 하기 위해 멀쩡한 청바지 폭을 좁혀, 정말 우스꽝스러운 디스코바지를 입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해 뒤엔 힙합 바지의 넓은 아랫단을 감당 못해 고무줄을 끼우고, 심지어 운동화 굽에 압정을 박아 질질 끌고 다녀야 했다. 대학시절이었던 1990년대 초반에는 헤비메탈에 빠졌다. 항상 이어폰을 꽂고 다녔고 뮤직비디오 감상실을 드나들었다. 자연히 옷차림도 과격해져서 찢어진 청바지와 금속 장신구를 즐겨했다.

10~20대 즐겨했던 옷차림을 떠올려 보면 당시 유행했던 대중음악과 연관이 資?것을 알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의 음악이 추억이 깃든 고전이 된 것처럼 그들의 패션스타일도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대중음악과 함께 그들이 유행시킨 옷차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로큰롤의 태동, 모즈룩의 대중화
대중 음악이 시작된 1960년대로 가보자. 1960년대, 대중 음악이 탄생했고 10대 문화가 시작됐다. 부모 세대의 풍요를 이어 받은 ‘소비의 세대’는 앞세대의 보수적인 취향을 거曠構?자신들만의 문화를 갈망했다. 그 시작은 ‘로큰롤’이었다. 로큰롤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된다. 1956년 데뷔한 그는 기존의 팝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옷차림과 자유 분방한 무대 매너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그의 음악과 겉모습에 영향을 받은 10대들은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자유 연애에 물 들어 갔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20세기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음악인은 바로 비틀즈다. 영국 노동자 계급 출신의 비틀즈는 미국의 록과는 다른 음악을 추구했다. 긴 머리와 가죽 의상으로 과격한 무대를 펼쳤던 미국의 록 뮤지션들과 달리, 비틀즈는 소년처럼 귀엽고 말끔한 모습으로 미국 사회에 큰 동요를 일으켰다. 그들의 밝고 쾌활한 모습과 발랄하고 다정한 음악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비틀즈는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과 엘비스의 군입대로 침체된 미국 사회에 영국 바람을 몰고 왔고 일명 ‘비틀즈룩’으로 불리는 ‘모즈룩’을 대중화 시켰다.

젊은 멋쟁이들을 가리키는 모즈룩은 현대적인이란 뜻의 ‘모던(modern)’‘을 이용한 조어로, 1950~60년대 중반까지 노동 계급 중심의 청년 하위 문화를 주도했다. 유럽풍의 타이트한 슈트, 흰색 셔츠, 넥타이를 맨 옷차림은 로큰롤을 재해석한 독특한 음악 세계와 함께 독창적인 패션 스타일로 완성됐다. 모즈족의 유행에 대해 미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미국의 스타일을 끝났으며, 패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수입의 절반은 의복비로 써야 한다”는 기사로 영국 패션의 영향력에 대해 전했다.

모즈룩에 반발, 히피룩 탄생
사랑 타령을 하던 젊은이들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여로 인해 ‘자유와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소유와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며 히피즘에 빠져든다. 말끔한 모즈룩에 반발한 히피룩은 사이키델릭 록 음악의 유행과 연관이 있다. ‘환각을 일으키는 아름다움’이란 뜻의 사이키델릭을 연주하는 가수들은 야광색의 대비와 현란한 프린트물로 환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시기의 뮤지션은 도어즈, 제니스 조플린, 지미 핸드릭스 등.

신들린 기타 연주자 지미 헨드릭스는 인디언처럼 깃털 장식에다 헤어 밴드를 하고 현란한 장식과 부적, 반다나, 부츠, 동양풍의 옷차림으로 히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백인 여성이면서 블루스 창법을 구사한 록 가수 제니스 조플린은 머리에 꽃을 꽂고, 둥근 안경을 쓰고 유럽 농부들이 입었던 페전트(peasant) 블라우스를 즐겨 입었다. 페스티벌의 형태로 열렸던 이들의 공연은 자유 연애와 마약, 집단 생활 등 히피즘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저항과 섹시의 상징 펑크룩
자유와 일탈을 외쳤던 사이키델릭 록은 70년대 들어 더욱 과격한 음악으로 발전한다. 과격한 저항의 상징 ‘펑크(punk)’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이면서 문화 현상이다. 펑크는 ‘무정부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과 기존 질서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시작은 영국이었다. 미국은 경제 성장과 안정기에 접어 들었으나, 영국은 200%에 육박하는 실업률때문에 젊은이들은 갈 곳을 잃었다. 이때 등장한 그룹이 ‘섹스 피스톨즈’. 섹스 피스톨즈는 공연 중 옷을 찢고, 기타를 부수고, 깨진 병으로 자학 행위를 하는 등 폭력적인 무대 매너로 일자리를 잃고 떠도는 뒷골목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펑크룩의 창시자 패션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섹스’라는 의상실을 열어 펑크록 그룹과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펑크룩을 전파했다. 펑크룩은 일부러 옷에 구멍을 내거나 찢어 입고 가죽과 금속 장식, 지퍼, 그물망 스타킹, 짙은 화장과 총천연색으로 염색한 닭 벼슬처럼 추켜세운 머리와 피어싱으로 혐오감을 줬다. 국기와 영국 왕가에 대한 모독을 소재로 삼기도 했고 남성이 스타킹이나 치마 등 여성 의류를 입는 등 성도착자의 흉내를 내기도 했다. 심지어 나치즘의 상징물을 소재로 삼기도 하는 등 사회 전복을 조장하는 가장 과격한 패션으로 손꼽힌다.

펑크가 사회를 파괴하고자 했다면 글램록은 성(性)의 경계도 파괴한다. 데이비드 보위로 대표되는 글램록은 번쩍거리는 의상과 화장, 과장된 머리 모양 등으로 과장된 시각 효과를 냈다. 보위가 남성이면서 여성의 차림을 흉내 낸 것은 당시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1984년 말 등장한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 룩도 성 파괴의 한 장르다. ‘자웅동체’, ‘양성공유’란 뜻을 지닌 앤드로지너스는 여성이 남성의 의복을 착용하고 반대로 남성이 여성 의복을 착용함으로 색 다른 미를 표현한 것이다. 여자처럼 꾸민 보이 조지와 짙은 화장을 한 프린스가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앤드로지너스 룩은 이후 남녀 공용 의복, 유니섹스 캐주얼의 시초가 됐다.

마돈나의 란제리 룩, 속옷의 겉옷화
1980년대의 대중 음악은 뮤직 비디오를 방영하는 뮤직 채널 M-TV의 발달로 보다 이미지 중심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 이 당시 팝 가수 패션하면 마이클 잭슨을 빼놓을 수 없다. 그로 인해 흑인 문화가 새로운 조류를 이루면서 군복 상의와 디스코 바지, 흰 장갑을 낀 그의 패션은 젊은이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80년대를 뒤흔든 또 다른 팝 스타는 마돈나. 마돈나의 음악과 패션은 순응적이며 소극적인 여성상을 뒤집고 욕구에 대해 솔직해 지자는 주장을 자신의 음악에 담았다. 창녀처럼 꾸미고 등장한 마돈나는 저급 문화를 지향하면서도 하이 패션과의 적극적인 만남으로 하이 패션의 대중화를 추구한 인물이다.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마돈나를 위해 제작한 고깔 브래지어는 속옷을 겉으로 드러낸 충격적인 패션이었다. 그녀의 속옷 패션은 속옷의 겉옷화, ‘란제리 룩’의 한 장르로 안착됐다.

신세대 사로잡은 힙합패션
디스코의 다음 타자는 힙합이었다. 1970년대 후반 할렘가에서 발생한 힙합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문화 현상’으로 기록된다. 1980년대 미국 대중 음악의 새로운 경향의 하나로 정착된 힙합은 1990년대에 들어서 전세계 신세대들에게 ‘힙합 스타일’을 전파한다. 힙합은 커다란 티셔츠와 흘러내릴 듯한 바지, 또 사이즈보다 큰 운동화를 신고 거리에서 즉흥적인 무대를 펼쳐 TV나 매스컴의 전파가 아닌 자생적인 문화로 그 세력을 넓혀간 것이 특징이다. 힙합 패션의 과장된 옷차림은 가난한 흑인 청소년들이 재고 의류를 즐겨 입은 것에서 비롯된다. 또 감방을 드나들던 할렘가 흑인 청소년들이 즐겼던,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따라 입어 ‘힙합 패션’을 정착시켰다.

과감하고 도발적인 섹시스타일의 팝스타들
2000년 이후 대중 음악은 더욱 다원화되고 원초적인 성향을 띤다. 뮤지션들의 패션 가운데서는 정렬적인 남미 출신의 여가수 제니퍼 로페즈의 과감한 노출이 화제였다. 로페즈는 근육질의 허리와 탄력 있는 엉덩이로 힘 있는 춤을 선보였고, 과감한 노출로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의 섹시하고 파워풀한 이미지 하이패션의 대중화 홍보전략에도 맞아 떨어져 2003년에는 루이비통의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브랜드 제이로(J.lo)를 런칭하기도 했다. 2000년대 뮤지션 패션하면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지나칠 수 없다. 금발에 귀여운 외모를 지닌 팝의 요정은 배꼽티와 엉덩이 굴곡이 보일 정도로 내려 입은 골반 바지를 또래의 소녀들에게 전파했다.

대중 음악은 10대들의 감성을 이해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우상이다. 접근이 쉽고 자극적인 대중 음악의 코드가 유행을 창출시키는 역할을 해 왔고 그 영향력은 패션에까지 손을 뻗었다. 뮤지션들은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한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그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대중 음악과 패션 모두가 변화무쌍한 유행의 ‘메신저’이기 때문 아닐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1-26 16:18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