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갖춰입는 전통주의 한복 중시풍부한 색감과 정성의 결정체

[패션] 설빔, 우아하고 정갈한 우리옷 입기
제대로 갖춰입는 전통주의 한복 중시
풍부한 색감과 정성의 결정체


화사한 분홍색 두루마기는 색동과 자수 모티브를 덧대어 장식했다. 김예진 한복

새해 첫날, 조상들은 설빔을 입었다. 어린이들은 색동옷을, 어른들은 흰 옷을 지어 입었다. 이 날을 위해 아낙네들은 가을부터 실을 뽑고 옷감을 지은 뒤 호롱불 아래 정성껏 손바느질해 새해를 맞았다. 설빔은 새로 맞는 한 해를 뜻 깊게 보내기 위한 정갈한 마음의 준비다.

어린 시절, 색동 저고리 소매 끝과 고름에 붙은 금박이 떨어질까 조심조심 걸음을 떼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금박을 달아 일부러 요란을 떤 장식적인 한복은 찾아 볼 수 없다. 한 동안 유행했던 기성복과 생활 한복의 편리성 또한 한복의 원래 모습은 아니었다.

최근 한복에서는 디자이너가 만들어 제대로 ??입는 ‘전통주의’가 중시되고 있다. 한복 전문가 김숙진씨는 이것을 서양 패션에서의 복고주의와는 별개라고 말한다. 베틀로 짜고 천연 염료로 염색한 원단으로 깊이 있고 풍부한 색감을 낸 정성의 의복이 본래 한복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점잖아진 디자인, 색깔선택 중요
전통주의 한복의 경향을 살펴보면 좀 더 풍부한 색감과 점잖아진 디자인이 특징이다. 여성 한복의 경우 앞길과 뒷길이 길어졌고 당코깃이 넓어졌다. 당코깃은 넓은 깃과 동정, 좁고 짧은 고름을 말한다. 남성복은 배자를 입는 데서 전통성을 확曠?수 있다. ‘배자(褙子)’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단추가 없는 짧은 조끼. 마고자와 비슷하나 소매가 없는 형태로 남녀 모두 입는다. 바지 저고리에 조끼나 마고자를 한 벌로 입은 것은 개화기 때 시작된 한복 차림으로, 전통이라고 보기 어려운 차림. 배자는 조선시대 중ㆍ북부 지방에서 널리 착용한 옷으로 가벼운 외출 시 추위를 막았는데 안에는 모피를 넣어 입기도 한다.

전통을 추구하는 한복은 계절과 때에 따라 각각 지어 입어야 했지만, 요즘은 계절에 맞게 지어 입으면 된다. 방한을 위해 솜을 넣어 누빈 누비 두루마기 또는 누비 배자를 입거나 겉 옷에 모피를 덧대어 보온성을 높인 디자인도 계절에 적절한 한복 차림이다. 색상과 소재도 겨울철에 맞게 고르는데 주로 여러 가지 색실로 무늬를 놓아 두껍게 짠 양단(洋緞)이 겨울철 한복에 주로 쓰이는 고급 소재다.

한복을 고를 때는 색상의 선택도 중요하다. 집안 행사 등이 있을 때는 위 아래로 같은 색상을 입어 단정해 보이게 차려 입기도 하지만 명절에는 위아래 색을 다르게 하는 것이 훨씬 화사해 보인다. 예전의 한복색은 튀는 색상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염색 기법이 발달, 천연 염색을 응용한 은근하면서도 기품 있는 색의 한복지가 많이 나와 있어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경우에는 빨간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는 것이 보통이고, 새댁의 경우에는 녹의홍상이라고 하여 녹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 세대는 자줏빛이나 겨자색, 담녹색 등을 택한다. 요즈음에는 끝동에 자수를 넣거나 수염으로 독특한 무늬와 색을 낸 한복으로 개성을 연출할 수도 있다.

남성에게 가장 무난한 한복색은 푸른색 계열의 심청색과 쪽색, 가지색과 비슷한 짙은 보랏빛의 장색, 산호색 계열의 잇꽃색 등이며 바지는 미색, 녹두색과 분홍 계열을 많이 입는다. 저고리와 바지를 같은 색으로 입고 배자나 두루마기 같은 겉옷을 보색으로 입기도 하지만 모두 다른 색으로 해 입기도 한다.

한복은 한 번 맞추면 10~15년 정도 입을 생각으로, 기성복보다는 자신의 체형에 잘 맞는 맞춤복으로 지어 입을 것을 권한다. 맞춤 한복은 길게는 한 달 정도 걸리고 급하게 맞출 경우도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니 여유를 가져야 한다. 가격은 50만원대에서 100원대까지 있는데 직조와 염색 등에 수작업이 추가됨에 따라 가격차가 많다.

속바지 등 속옷 제대로 갖춰입어야
한복을 입을 때는 속옷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갖춰 입어야 할 것은 속바지와 속치마, 그 위에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입는다. 이 때 브래지어는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옛 사람들처럼 광목으로 가슴을 싸맬 필요 없이 속치마의 넓은 가슴 부분으로 가슴을 둘러 주면 된다. 이때 주의할 것은 치마를 입을 때 가슴 부분을 동여매는 부분을 신경 써야 옷 테가 난다. 앞은 내리고 뒤는 올려야 치마가 떠 보이지 않는다. 버선은 수눅(꿰매고 난 솔기)의 방향이 서로 안쪽을 향하게 당겨서 신고 신발은 고무신을 신는데, 키가 작은 사람을 위해 높은 굽 꽃신도 있으니 골라 신으면 될 일이다.

여성 한복의 경우 속옷을 갖춰 입는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하지만 남자 속옷은 속저고리까지 입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속바지 정도는 입어야 한복의 선이 살아난다. 또 한복을 입었을 때 깃 부분에 속옷이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양말은 되도록이면 신발과 색을 맞추는 것이 좋다.

외출 시의 한복
한복의 외출복은 두루마기다. 간혹 젊은 사람들의 경우 한복 위에 코트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차림이다. 두루마기가 정석이다. 실내에 들어갈 때 여성의 경우 마고자나 두루마기를 벗는 것이 예의지만 남성의 경우 실내에서도 두루마기는 입고 있는 것이 원칙인 것도 알아두자. 여성들의 경우에는 방한용으로 머리에 쓰는 아얌이나 조바위가 있으면 훨씬 맵시 있어 보이는데, 그래도 춥다고 생각되면 목도리를 해도 된다. 이 때 목도리는 화려한 색은 피하고 자신의 한복 색에 맞춘다.

한복 장신구
한복에 쓰이는 액세서리라고 하면 노리개가 대표적이다. 특히 노리개는 치마의 색과 맞춰 비슷한 색을 고른다. 분홍치마에는 연한 분홍색의 노리개가, 담녹색의 치마에는 겨자색이나 다홍빛의 노리개가 잘 어울린다. 노리개를 두 개씩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짝수가 아닌 홀수로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노리개가 작으면 한 세트인 3개를 모두 해야 한다. 그 외의 액세서리를 하고 싶다면 목걸이는 생략하고 귀걸이는 달랑거리지 않는 디자인을 한다.

한복 보관과 세탁법
한복은 자주 입는 옷이 아니기 때문에 보관과 관리가 중요하다. 보관할 때는 먼지를 털고 큰 종이 상자 안에 넣어 두는데 두루마기 같은 무거운 겉옷부터 개어 넣어야 구김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동정 부분은 접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새로 꺼내 입을 때 동정을 새로 다는데, 깃이 울어 주름이 잡힐 수 있으므로 한복 전문 수선점에 맡겨 다는 것이 좋다.

한복 세탁법은 소재에 따라 다르다. 천연 섬유인 명주는 드라이클리닝을 하는 것이 좋으며, 합성 섬유는 손빨래를 해도 무방하다. 한복은 소재가 얇고 바느질이 섬세하기 때문에 드라이클리닝을 빈번히 하면 탈색되거나 바느질 부분이 상할 수 있으니 자주 세탁하는 것은 좋지 않다. 부분적으로 더러워졌을 때는 가볍게 부분 세탁하거나 얼룩이 생기면 벤젠을 묻힌 천으로 가볍게 눌러 얼룩을 지운다. 천연 염색한 고급 소재의 겨우 세탁기를 사용하면 옷감이 손상되기 쉬우므로 손으로 가볍게 세탁한다.

낯설음이 아닌 친근한 전통의복이어야
설을 핑계로 한복 이야기를 풀어봤다. 한복이 평등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옷이라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아직도 한복이 낯설다. 한복? 교련 과목의 예절 교육 시간에 입어본 게 마지막이었다. 빨간색 치마에 분홍 저고리는 지금 생각하면 작은 키에도 참 잘 어울리고 아름다운, 그리고 편한 옷이었는데 예절 교육 1박 2일 동안 내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요즘은 예전처럼 한복을 입고 예절 교육을 받을 기회도 줄었다. 그 만큼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는 것이 어색하다.

몇 해 전 동경을 여행한 적이 있다. 동경의 번화가 하라주쿠의 일요일은 괴상한 코스프레 무리로 붐볐다. 그 가운데 일본의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화 주인공처럼 꾸민 섹시한 기모노 차림부터 약혼식에라도 가는 양 제대로 갖춰 입은 기모노 차림의 여성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딸이 태어나자마자 성인식에 입힐 기모노 적금을 붓는다는 일본인들. 젊은이들이 민족 전통의 의복을 귀하게 여기고 애용하는 모습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닐 수 없었다.

** 자료 및 사진 제공 : 김예진 한복(02-515-8555), 김숙진 우리옷(02-548-2588)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2-01 14:42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