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이고 불안정한 표피적 삶선채로 구워먹는 갈비, 가족해체에 대한 명쾌한 경종

[문화 속 음식기행] 영화 <바람난 가족> 서서갈비
즉흥적이고 불안정한 표피적 삶
선채로 구워먹는 갈비, 가족해체에 대한 명쾌한 경종


최근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랑의 유효 기간은 불과 300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혼율이 50%에 이르는 세상이고 보니 이런 뉴스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영화 ‘바람난 가족’은 가족 해체라는 문제를 파헤친 화제작이었다. 전작 ‘처녀들의 저녁 식사’에서 독신 여성의 성생활을 대담하게 다룬 임상수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솔직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처녀들의 저녁 식사’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점에 주목해 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30대 변호사 영작(황정민)은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비교적 정의로운 변호사이다. 그의 아내 호정(문소리)은 한때 무용수였다가 지금은 동네 무용 학원에 나가는 주부이다. 이들 사이에는 입양한 7살짜리 아들 수인이 있다.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이들의 삶은 이리저리 꼬여 있다.

서로에 대한 열정이 식은 지 오래인 호정과 영작. 권태를 이기지 못한 영작은 사진 작가인 연과 바람이 나고, 호정은 옆집에서 창으로 자신을 훔쳐보던 고교생 지운(봉태규)과 만나기 시작한다. 그것도 모자라 시어머니인 병한(윤여정) 역시 간암 말기인 남편을 두고 초등학교 동창과 눈이 맞았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기존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거침없이 조롱하고 있다.

호정은 지운과의 관계에서 삶의 자극을 찾고 잃어버린 아들 대신 새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모르고 살아 온 병한은 새로운 삶을 찾아가게 된다. 반면 바람을 피우면서도 전통적 가족을 지키려는 영작은 그 이율배반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들 수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아내와 애인, 모두에게서 버림받는다.

여전히 가족은 소중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분명 불쾌하다. 그러나 허울 뿐인 가족에 연연하지 않는 호정이, 오히려 입양한 아들을 다독거리고 시어머니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가 헷갈릴 것이다. 해체되는 가족을 위한 감독의 메시지는 의외로 명쾌하다. ‘서로에게 솔직해지라는’ 것.

‘처녀들의 저녁 식사’의 푸짐한 바비큐 파티 장면처럼, ‘바람난 가족’에도 호정과 지운은 첫 데이트 때 숯불에 구운 갈비를 먹는다. 그런데 식사 장소가 좀 기묘하다. 서서갈비 집에서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먹는 것이다. 이 서서갈비는 예전에 버스 기사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점심 시간이 짧았던 버스 기사들은 선 채로 갈비를 구워 먹고 갔는데 이것이 바로 서서갈비의 유래라고 한다. 빨리 빨리 먹고 가야 하는 서서갈비집은 즉흥적이고 불안정한 이들의 만남을 상징하는 것 같다.

한국인의 대표 외식 메뉴, 갈비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갈비의 원조로 불리는 수원갈비를 비롯해 마포나루터 인부들이 저렴한 가격에 즐기던 마포갈비, 불고기판에 굽는 해운대 갈비, 양이 푸짐한 포천이동갈비 등이 유명하다. 그 외에 전라도 지방의 떡갈비는 보통 갈비와 달리 고기를 곱게 다져 양념한 뒤, 뼈에 다시 붙여서 구워낸 것이다.

쇠고기가 귀했던 탓에 궁궐이 아니면 대가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을 갈비가 대중적으로 전파된 것은 1900년대경으로 추측된다. 기생집으로 잘 알려진 명월관의 주인 안순환은 원래 궁중에서 요리와 연회를 담당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국운이 기울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궁궐의 주방 상궁, 숙수들은 명월관 같은 요리집으로 몰려 들었다. 이들에 의해 궁중 음식들이 일반 대중에게 퍼져 나갔고, 갈비구이 역시 단일 메뉴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갈비하면 당연히 숯불에 굽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숯불에 구운 고기가 맛이 좋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숯을 태울 때 많이 나오는 원적외선은 파장이 길기 때문에 주로 고기를 익히는 역할을 한다. 태우는 열보다 익히는 열이 강하므로 골고루, 맛있게 익는 것이다. 아파트나 공동 주택이 많아진 요즘은 숯불갈비를 해먹기가 쉽지 않지만 모처럼 온 가족이 봄나들이를 나왔다면 한번 시도해 볼 만 하다.

▲ 갈비 구이 만들기
* 渶?(1~2인분) : 소갈비 300g,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생강즙 1작은술, 설탕 1큰술, 깨소금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간장 2큰술, 배즙 2큰술

* 만드는 법
1. 갈비를 6~7cm 길이로 토막 내어 안쪽에 가로 세로로 칼집을 낸다.
2. 나머지 재료를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갈비 1대씩에 양념장을 바르고 간이 잘 배어 들도록 둔다.
4. 숯불에 뜨겁게 달군 석쇠에 기름을 살짝 바르고 굽는다.
(양념에 청주를 1큰술 정도 넣으면 더욱 맛이 좋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3-22 16:45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