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진한 육수, 숙취해소에 그만쇠고기·닭고기·해산물 들어간 3종류, 숙주·향채 넣은 특유의 맛 일품
영화<그린 파파야 향기> 베트남 쌀국수 [문화 속 음식기행] 뜨겁고 진한 육수, 숙취해소에 그만 쇠고기·닭고기·해산물 들어간 3종류, 숙주·향채 넣은 특유의 맛 일품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될 당시, 요리 장면에 비친 손이 한동안 인터넷에서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다. 대역이 대신 연기한 손의 모습이 이영애의 고운 얼굴에 비해 너무 투박하고 거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십 수년을 주방 일만 해온 사람의 손이 곱고 섬세할 리가 없다. 이는 요리하는 여성에 대한 환상이 낳은 일종의 착각인 셈이다. 아름다운 영상이 돋보였던 영화 ‘그린 파파야 항기’도 뒤집어 보면 환타지에 의해 ‘재구성된’ 베트남의 모습을 담고 있다. 베트남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는 베트남전에 관한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베트남 전쟁을 피해 시대적 배경을 1950년대로 설정해 놓았다. 전쟁의 비참함 대신에 때묻지 않은 베트남의 자연과 사람들을 보여 주려는 의도다. 따라서 ‘그린 파파야 향기’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서구인의 동양에 대한 환상을 담고 있다.
베트남에 대한 서구인의 환상 담은 영화 영화 속에서 무이가 요리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하루종일 부엌에서 살다시피 하는데도 무이는 단 한번도 흐트러져 보이지 않는다. 옷에 밀가루나 기름을 묻히지도 않으며 무거운 칼과 냄비를 다루는데도 우악스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부엌일을 하는 하녀라기보다는 마치 그림 속의 소녀 같은 느낌이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음식들 역시 감히 젓가락을 대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고 정갈하다. 생각해 보면 한식에서도 항상 강조되는 것이 ‘정갈함’이다. 그러나 그 정갈한 밥상을 차려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밥상을 차려내는 어머니들이 왜 우악스럽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린 파파야 향기’에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종류의 ‘환상’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영화를 통해 낯선 베트남 음식들을 만나는 것은 즐겁다. 우리나라처럼 밥과 반찬, 숟가락과 젓가락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왠지 신기하기도 하다. 한식과 베트남 음식은 비슷한 점이 꽤 많은 편이다. 쌀밥을 주식으로 하며 채소와 각종 장류를 많이 이용하는 것도 닮았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베트남 음식은 ‘퍼’라고 불리는 쌀국수일 것이다. 뜨거운 육수를 붓고 고추, 숙주, 향채 등을 넣어 먹는 퍼는 원래 북부 지역인 하노이에서 유래했다. 퍼에는 쇠고기로 만든 ‘퍼 보’와 닭고기가 들어간 ‘퍼 가’, 그리고 해산물이 들어간 ‘퍼 하이산’이 있다. 우리가 먹는 쌀국수는 미국을 한번 거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본토에서 먹는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향채, 즉 고수를 넣어 먹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베트남 뿐 아니라 모든 동남아 음식에 흔히 들어가는 고수는 빈대와 비슷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몇 번 맛을 들이고 나면 오히려 고수 없이 음식을 못 먹을 정도가 된다고. 동남아 지역 사람들이 이렇게 향이 강한 고수를 많이 먹는 이유는 바로 모기 때문이다. 그 특유의 냄새가 모기를 쫓는 역할을 한다. 진하고 뜨거운 국물에 숙주가 듬뿍 들어간 쌀국수는 숙취해소에도 좋다. 또 요즘처럼 더위로 기운이 없을 때, 쌀국수를 먹고 땀을 흠뻑 내면 어느 새 기분이 상쾌해진다.
입력시간 : 2005-05-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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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