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한 잔'에 고통·시름 '싹'다양한 칵테일로 즐기는 남미 대표술…'풀케'라는 양조주에서 유래

[문화 속 음식기행] 영화<사랑은 다 괜찮아> 데킬라
화끈한 '한 잔'에 고통·시름 '싹'
다양한 칵테일로 즐기는 남미 대표술…'풀케'라는 양조주에서 유래


혹시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사람들과 어울려 놀 일이 있다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적어도 새벽 3시까지는 잘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 미국에서는 ‘히스패닉’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들은 주말이면 일가 친척이 다 모여 시끌벅적하게 파티를 연다. 이방인이라면 이들의 ‘극성스러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면서도 그들 나름대로 누리는 삶의 멋에 부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데킬라처럼 정열적인 남미 여자와 커피처럼 차분한 북미 남자. 이들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사랑은 다 괜찮아(Fools rush in)'를 보면 이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펼쳐진다.

뉴욕의 전형적인 화이트 칼라 알렉스(매튜 페리)는 회사 일로 라스베이거스 공사 현장에 파견을 나온다.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멕시코 여인 이자벨(셀마 헤이엑)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알렉스. 그러나 ‘원 나잇 스탠드’로 끝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은 3개월 후 갑작스럽게 재회한다. 임신한 이자벨이 가족과 인사만이라도 해 달라며 알렉스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자벨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알렉스는 그 길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이자벨과 즉석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성장 배경이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불어난 몸으로 아줌마처럼 돌변한 이자벨의 모습에 알렉스는 실망하고, 극성스러운 처가 식구들은 한시도 알렉스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더구나 승진 때문에 일방적으로 뉴욕행을 결정한 알렉스에게 이자벨은 등을 돌리고 만다.

멕시코 여인과 뉴요커의 사랑
영화의 결말은 두 사람이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행복한 부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줄거리이지만 두 주연 배우의 탄탄한 연기가 이 영화를 나름대로 볼 만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알렉스와 이자벨이 신혼 생활을 시작할 무렵, 알렉스는 이자벨의 오빠들이 가는 사냥터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다. 방울뱀을 만나 우왕좌왕하다 선인장 가시에 찔리고 만 알렉스. 오빠들이 그를 집에 데려왔을 때 그는 아픔을 잊으라고 준 데킬라에 잔뜩 취해 있었다. 선인장 가시의 고통과 데킬라의 취기는 알렉스가 앞으로 겪을 문화적 충격을 예견해주는 것 같다.

남미의 금융 위기를 ‘데킬라 효과’라는 말로 표현할 만큼 데킬라는 남미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 술은 멕시코 지역의 원주민이 마시던 ‘풀케’라는 양조주에서 유래했다. 멕시코에 많이 나는 용설란 즙으로 빚은 풀케는 하얀 색에 약간 끈적하고 시큼한 느낌이 우리의 막걸리와 닮았다. 풀케는 잉카 제국 시절 신에게 바쳐지던 희생자가 고통을 잊도록 하기 위해 먹였다고 한다.

16세기에 멕시코는 스페인의 침공을 받는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정복자들은 떨어져 가는 술을 보충하기 위해 풀케를 증류해 무색 투명한 술을 만들어 냈는데 이를 ‘메즈칼 브랜디’라고 불렀다. 다른 설에 의하면 18세기 중반 하리스코주 데킬라 마을 근처에서 일어난 산불로 인해 풀케가 증류되어 만들어졌다고도 전해진다. 어쨌든 한 지방의 토속주였던 데킬라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이후부터다.

데킬라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8년에서 10년 정도 숙성된 아가베 데킬라나(용설란)의 길쭉한 잎을 쳐내면 파인애플과 닮은 ‘피나’라는 심 부분이 남는다. 이를 증기 솥에 넣어 가열하면 전분질이 당분으로 바뀌어 발효된다. 이 즙을 단식 증류기로 두 번 증류하면 무색 투명한 데킬라가 된다. 무색의 데킬라는 화이트, 또는 실버 데킬라라고 해서 주로 칵테일 베이스로 이용한다. 증류된 술을 오크통에 넣어 저장하면 호박색이 나는 골드 데킬라가 된다. 골드 데킬라는 보통 양주처럼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을 넣어 언더락으로 마신다.

소금 핥으며 음미하는 독주
데킬라를 마시는 방법은 조금 특이하다. 레몬이나 라임을 반으로 잘라 왼손으로 한쪽을 잡고, 손등의 엄지와 검지 사이 부분에 소금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혀로 레몬이나 라임의 즙과 소금을 묻힌 다음 데킬라를 마신다. 연인 사이에??상대방의 목덜미나 손등에 소금을 올려놓고 마시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멕시코식 ‘러브샷’인 셈이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요즘, 바쁜 일상에서 틈을 내어 남미의 이국적인 느낌에 젖고 싶다면 데킬라로 만든 유명한 칵테일인 마가리타 한 잔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마가리타 만들기

-재료: 얼음 3~4조각, 데킬라 1온스, 트리플 섹 1/3온스, 레몬이나 라임 주스 1/2온스,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칵테일 글라스 가장자리에 레몬이나 라임 주스를 묻히고 소금을 찍어 놓는다.
2. 셰이커에 얼음과 데킬라, 트리플 섹, 레몬 주스를 넣고 잘 흔든 다음 글라스에 따른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6-30 15:06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s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