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 음식 기행] 영화<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장미


조선시대 궁녀들이 남긴 병풍이나 의상의 자수를 보고 있으면 한 땀 한 땀에서 눈물과 한을 엿볼 수 있다. 평생 짊어져야 하는 고독을 그녀들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의 주인공 티타 역시 삶의 고통을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이겨낸다.

20세기 초 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 유서 깊은 ‘데 라 가르사’ 가문에 막내딸이 태어난다. 양파를 썰다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만화 같은 설정은 앞으로 그녀가 겪을 운명을 예고해준다. 티타라고 이름 붙여진 아이는 요정의 보모 같은 타챠 할머니 밑에서 요리를 배우며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의 남자 페드로가 나타나 티타에게 청혼하는데. 하지만 그녀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결혼할 수 없는 몸이었다. 티타의 어머니는 페드로에게 티타 대신 작은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할 것을 제의한다. 어떻게든 티타의 곁에 남고 싶었던 페드로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드디어 결혼식 날. 티타는 쉼 없이 눈물을 흘리며 언니의 웨딩 케이크를 만든다. 티타의 눈물이 섞인 웨딩 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슬픔에 괴로워하고, 결혼식은 엉망이 되고 만다. 그 일로 인해 화가 난 티타의 어머니는 티타와 페드로를 끊임없이 경계하지만 둘의 밀회는 결혼 후에도 계속된다. 이들은 형부와 처제로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로사우라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부부나 다름없이 생활한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단 둘이 남게 된 어느 날, 티타와 페드로는 불꽃에 휩싸여 영원 속으로 떠난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중간 중간에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설정이 자주 나오는 것은 남미 문학에서 흔한 일이다. 내전과 혁명, 오랜 빈곤 등으로 피폐해진 멕시코인들은 문학에서나마 현실도피를 꾀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사조를 이룬 것이다. 프라다 칼로의 꿈꾸는 듯한 그림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여성과 요리, 욕망을 매혹적으로 그려낸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페미니즘과 요리 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이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을 꼽자면 페드로가 선물한 장미를 가지고 티타가 요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바로 장미 꽃잎 소스를 곁들인 메추리 요리다.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열과 욕망을 억제할 수 없게 되고, 급기야 티타의 큰언니 헤르트뤼다는 혁명군과 사랑에 빠져 가출해 버린다.

영화라서 약간 과장된 면은 있지만 실제로 장미는 오랫동안 사랑의 묘약으로 애용돼 왔다. 장미는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꽃이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병사가 전쟁에 나가기 전, 애인이나 아내와 함께 장미 음료를 마시면 반드시 무사히 돌아온다고 믿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미용용으로 장미 음료를 즐겼으며 안토니우스를 처음 만날 때는 연회장 바닥에 카펫처럼 장미 꽃잎을 뿌렸다고 한다. 동양의 절세 미인 양귀비 역시 목욕할 때면 물에 싱싱한 장미 봉오리를 담가 놓았다.

우리에게 장미는 고급 화장품이나 향수의 원료로만 알려져 있지만 식품으로서도 그 영양이 뛰어나다. 장미 꽃잎 100g에는 비타민 C가 레몬의 17배, 베타카로틴인 비타민 A가 토마토의 20배나 들어 있다. 또 필수 지방산인 리놀산과 리놀렌산을 대량 함유해 기미와 주근깨에 효과적이고 피부세포를 재생시켜 피부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아랍인들은 장미에서 추출한 장미수를 갖가지 음식에 향신료로 이용했다. 또 16세기경 유럽인들은 장미 꽃잎을 다져 설탕과 섞은 장미설탕을 만들어 썼다. 장미꿀은 장미수와 꿀을 한 컵씩 낮은 불에서 끓여 멸균 용기에 넣어 저장한 것이다. 이런 요리들을 가정에서 할 때에는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반드시 식용으로 가꿔진 장미를 사용하라는 것. 보통 꽃집에서 파는 꽃은 농약을 치고, 야생 장미나 정원수는 특유의 독성이 있기 때문에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

*장미 라임소다 만들기

-재료(1인분):

장미 2송이, 라임 1쪽, 라임주스 2큰술, 토닉워터(혹은 사이다)1컵, 얼음

-만드는 법:

1. 장미는 한 잎씩 떼어서 씻고 라임은 소금으로 문질러 씻어 끓는 물을 끼얹어 소독한다.

2. 1의 라임 조각을 얇게 슬라이스해 둔다.

3. 컵에 얼음과 장미를 교대로 담고 라임을 띄운다.

4. 라임주스를 붓고 소다수로 잔을 채운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8-17 17:43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