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패션] 이질적 문화의 믹스 & 매치 에스닉 트렌드가 온다


찌는 듯한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가을은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패션매장에서는 8월 초순부터 가을 신상품을 내놓았고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을상품 판매도 호조를 보였다. 국내에서 열린 패션 쇼를 통해 가을 유행 경향을 미리 만나보자.

지난 4월에는 한국 패션계의 대축제 ‘2005/06 가을겨울 서울컬렉션’이 열렸다.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FA), 뉴웨이브인서울(NEWS),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 등 국내 3대 패션단체가 주축이 된 서울컬렉션을 통해 가장 먼저 유행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울컬렉션의 흐름을 살펴보면 ‘믹스매치 컬쳐(mixmatch culture)’로 다양한 문화가 서로 어울려 창조하는 아름다움이 주류가 됐다. 러시안(미치코 코시노), 카우보이(박윤수) 등이 등장하고 도심 속의 방랑자, 보헤미안의 인상을 풍겼다. 또 패션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19세기 낭만주의를 현대적으로 재구성, 이종 문화가 만나서 뒤섞이는 신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컬렉션의 두드러진 특징은 풍성한 실루엣의 부활이다. 외관은 길고 중첩된 실루엣으로 다중성을 띠었다. 스커트는 부풀려지고 히피들의 옷처럼 여러 겹으로 물결쳤다. 코트는 허리선을 감췄으며 바지도 통바지로 여유로웠다. 전체적으로 느슨하면서 풍요로운 분위기였다.

비즈장식이나 자수를 통해 수공예적인 화려함을 풍기던 표면장식 경향은 다소 수그러들었고 소재 자체의 중첩으로 볼륨감을 살렸다. 레이스를 넓게 사용하거나 이어 붙이고, 날개처럼 원단을 겹겹이 바느질해 질감과 부피감을 더했다. 이는 무대 위에서 모델들의 움직임에 따라 풍부하게 물결을 만들어 여체의 곡선미를 강조하는 장식이 됐다. 실크, 저지, 레이스 등 여성스러운 소재의 활용으로 풍성해진 실루엣 속에서 여성의 몸매는 더 부드럽고 풍부해진 느낌이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실용의복의 효시가 되는 밀리터리룩의 경향도 나타났다. 해군복에서 그 시작을 발견할 수 있는 ‘더블브레스트티드 재킷’이 특히 많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짙어진 색감은 중심 색을 ‘블랙’에 고정시킨 까닭이었다. 색이 많이 어두워졌지만 시폰 실크와 같은 가벼운 소재를 많이 사용해 색의 무게를 덜었다. 사실 검정색 의상은 날씬한 맵시와 세련된 감각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실용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어 1980년대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다.

남성복은 짧고 피트된 상의에 어울리는 청바지처럼 젊고 신선하며 활동적인 의복들이 많이 나타났다. 남성복에서도 믹스&매치의 장이 이어졌는데 클래식과 아웃도어의 만남, 클래식과 빈티지캐주얼의 만남, 전통적인 소재와 신소재의 만남 등 디자인과 소재에서 서로 상반되는 느낌으로 연출됐다.

국내 기성 여성복 중 가장 먼저 가을패션을 선보인 제일모직의 여성복 브랜드 구호(KUHO)는 ‘북쪽으로의 여행(Trip To North)’을 주제로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티벳 등 북방민족의 문화와 감성을 작품에 담아냈다. 영화계, 문화계를 넘나들며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디자이너 정구호(제일모직 상무)가 이끄는 ‘구호’의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번 쇼에서는 그간 찾아보기 힘들었던 빨강, 노랑, 녹색 등의 원색이 등장했고 장식과 질감도 풍부해졌다. 미니멀리즘을 대표했던 ‘구호’조차 로맨티시즘의 감성을 피해갈 수 없었던 걸까. 발표된 60여 점의 의상들은 한결같이 ‘손맛’이 강했다. 누빔 원단과 자수 장식, 손 뜨게, 레이스 등 핸드메이드 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두꺼운 외의 안에는 가볍고 투명한 시폰소재의 이너웨어를 매치해 여성스러움을 더하기도 했다. 패션쇼의 마지막 무대는 ‘블랙’의 독차지였다. 피날레에 모델들이 모두 검은색 우산을 손에 들었고 애니콜의 히트작, ‘블루블랙폰’을 들고 행진하는 이색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남성복에서는 에메네질도 제냐의 젊은 화신 ‘지제냐(Z Zegna)’의 가을겨울 컬렉션에 이목이 집중됐다. 지제냐의 이번 패션쇼는 기존 패션쇼의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연극과 뮤지컬의 장르를 믹스한 획기적인 기획으로 주목받았다

지제냐의 패션쇼는 댄디(Dandy)와 데카당트(Decadante)의 시대, 1960년대의 이탈리아로 회기했다. 1960년 이탈리아의 시네치타 스튜디오를 모티?파티르옜㈃?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영화감독, 외교관, 음악가, 그리고 수집가의 네 가지 캐릭터 컨셉에 맞춘 모델들이 침실과 욕실, 드레스룸, 바와 거리로 이동하는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펼쳤다. 삶과 패션이 조화를 이룬 듯 완벽한 모습이었다.

‘지제냐’의 올 추동은 더욱 좁아진 어깨선과 날씬해진 허리선, 몸의 곡선에 잘 맞춰진 스트레이트 바지, Z로고의 좁은 타이로 현대적인 댄디룩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패셔너블한 턱시도, 벨벳재킷 등도 댄디룩의 아이템. 빈티지룩을 위한 워시드 캐시미어가 브라운, 카키 및 화이트 등의 자연색과의 조화로 이국적인 빈티지 룩 연출을 도왔다. 또 은은한 버건디, 그레이 및 퍼플 컬러의 조화에서 짙은 버건디 컬러의 가죽 재킷과 같은 강렬한 컬러까지 다양한 믹스&매치를 선사했다. 화려하면서 우아한 밤을 위한 이브닝 룩으로는 블랙, 실버 그레이, 라이트 블루 컬러가 조화를 이룬 벨벳 및 새틴, 실크 소재가 은은하고 세련되게 펼쳐졌다.

제철을 맞은 진(jean)도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의 에스닉풍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패션귀재 렌조 로소가 1978년 선보인 이래 전 세계 진 마니아를 사로잡은 ‘럭셔리 진’의 대표주자 디젤을 살펴보자. 2005년 가을겨울, 디젤의 컬렉션은 미국 서부의 트러커(트럭운전사) 스타일이 러시아의 민속 문양들과 함께 어우러져 캐주얼한 웨스턴 요소가 가미된 깔끔하고 정교한 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동양의 상징적 비유들과 빛바랜 이미지들이 서부의 건조한 공기, 라스베가스의 거친 카우보이 스타일과 함께 융화됐고 고유의 워싱과 디테일을 맛볼 수 있었다.

디젤 쇼에서는 진과 곁들여 입는 다양한 캐주얼 의상들로 가득했다. 남녀 의상 모두 전통적인 우즈베키스탄의 수공예 양탄자에서 영감을 얻은 꽃무늬 자수로 장식됐고 올리브그린 롱 울 코트에서부터 정교한 자수가 놓여진 여성 셔츠와 데님 포켓의 무늬까지 화려한 장식이 이어졌다. 또한 코듀로이 남성 재킷과 조끼는 화려한 자수로 동양 문화의 깊이와 노동자들의 거친 야성미가 공존했다. 색상은 돌멩이, 모래를 연상시키는 회색 및 검정색과 어두운 톤의 가지색과 와인색이 대비를 이뤘다. 이 밖에 흙투성이를 연상시키듯 거칠게 탈색 처리된 데님 재킷과 바지, 스커트는 디젤의 워싱 기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소품은 더욱 고급화를 추구한다. 국내 제화 업계의 자존심, 금강제화(www.kumkang.com)의 토털슈즈 쇼에서 ‘헤리티지 리갈’과 ‘헤리티지 비제바노’ 등 최고급 라인의 구두가 신사숙녀를 기다리고 있다.

“Invitation to Prestige Life”라는 주제로 금강제화 창립 51주년 및 고급화 추진 10주년을 맞이해 열린 슈즈 패션쇼는 최고급 브랜드 이미지에 걸맞게 클래식과 팝페라, 재즈, 뉴에이지 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로 화려하게 연출됐다.

금강제화가 올 가을부터 선보이는 고급화 라인은 현재 운영중인 최고급 신사화 브랜드 ‘헤리티지 리갈’을 일반 라인과 프리미엄 라인으로 구분, 확대 구성하고 기존 남화 외 최고급 여화 브랜드로 ‘헤리티지 비제바노’ 라인을 새롭게 선보였다.

‘헤리티지 리갈’은 30대를 주 타깃으로 가을부터 보다 젊은 층의 감각에 맞춰 세련되고 젊어진 디자인으로 리뉴얼 됐다. 까다로운 소재 선택에서부터 특수한 제작공법, 장인정신이 배어나는 작업공정, 품격을 잃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까지 차별화했다. 또 심플한 디테일과 고급스러운 마무리감을 자랑했다.

‘헤리티지 리갈 프리미엄’은 40~50대를 대상으로 악어, 타조 등 특수 가죽을 사용하는 등 특별한 고품격 신사화라인으로 소개됐다. 특히 50만~100만원의 가격대로 운영되는 최고급화 라인으로 해외 유명 브랜드에 대적할만한 국내 최고급 정통 드레스화로 자리한다는 방침이다. ‘헤리티지 비제바노’는 고급 여성화 라인. 우아한 최고급 여성화를 추구하며 고감도의 정통 드레스 라인과 우아한 패션 제품들을 선보였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8-17 18:46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