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인, 우수와 감성을 입다왕가의 품위 물씬한 귀족적 패션, 영화 의 라라에 매료

[패션] 러시안 룩
가을여인, 우수와 감성을 입다
왕가의 품위 물씬한 귀족적 패션, 영화 <닥터 지바고>의 라라에 매료


일찌감치 부츠를 꺼내 손질하고 모피조각으로 만든 브로치를 가슴께에 단다. 금장단추를 단 군복을 연상시키는 벨벳재킷은 쇼핑리스트 1순위다. 더위가 꺾이자마자 패션계는 북풍으로 계절을 당겼다. 잊혀진 왕국, 러시아를 기억하면서.

'닥터 지바고'는 전쟁과 혁명 가운데 피어난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196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의상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전세계인들에게 슬프고 아름다운 라라의 테마, 눈 덮인 광활한 평원, 러시아 횡단 열차, 얼음궁전과 모피 모자를 각인시켰다.

주인공 오마 샤리프는 이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남성들은 오마 샤리프를 따라 콧수염을 길렀다. 여주인공 줄리 크리스티가 입었던 모피코트(아스트라칸), 검정 모피 모자와 목선이 높은 레이스 블라우스, 민속풍의 원피스의 유행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시 크리스챤 디올과 입생 로랑 같은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은 '지바고 룩', '라라 룩'을 발표하며 영화주인공들을 무대에 세워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패션계에 불어닥칠 북풍

6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러시아룩이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에스닉의 유행은 중국과 일본,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대륙을 거쳐 북반구에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는 러시아에 당도했다.

옷 한 벌로 지구 한바퀴를 돈 것이나 마찬가지. 다문화가 섞인 멀티컬쳐(multi-Culture) 경향에 귀족적이고 왕가의 품위가 풍겨 나오는 러시안룩이 더해져 이번 가을과 올 겨울을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모피 장식과 벨벳, 자카드, 섬세한 자수 등 고급재료들을 취합한 러시안룩은 금장 단추와 어깨 견장, 애플릿과 같은 러시안 군복 양식까지 멋들어지게 소화해 내고 있다.

유명 패션브랜드를 비롯해 국내 여성복 브랜드들 모두 저마다의 '러시아'를 담은 의상을 선보였다. 라라가 썼던 챙이 없는 모피장식 모자인 '코삭(Cossack)' 모자가 수많은 쇼에 등장했다.

안나 수이는 화려한 패턴의 엠파이어 미니 드레스차림에 이 모피 모자를 씌워 평범한 소녀를 러시아공주로 변신시켰다. 러시아의 암울한 분위기는 유럽 곳곳에도 영향을 끼쳤다.

에르메스는 러시아풍 밀리터리룩을 패션쇼 무대에 세웠다. 프라다는 매듭장식 등 민속적 디테일을 정교하게 마무리한 고전적이고 우아한 러시아풍 의상으로 선보였다. 또 돌체앤 가바나는 60년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던 거리패션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러시아는 광활한 대지만큼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다. 21개 공화국에 약 75개의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러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82%를 차지하며 그밖에 우크라이나인 등 수많은 소수민족이 거대한 국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역사적, 지리적 조건으로 여러 지역의 수천가지 복식이 공존했다.

대표적인 여성복은 흰색의 풍성한 소매와 주름을 잡아 프릴이 있는 커프스로 고정한 흰색 블라우스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의 타탄체크 무늬가 줄무늬처럼 들어간 볼륨 스커트, 타이트하고 짧은 조끼와 부츠차림이다.

남성복은 높게 깃을 세운 칼라에 주름을 넣은 풍성한 소매와, 칼라, 앞단, 소매 끝부분에 자수 장식을 넣어 가운처럼 허리띠로 여미는 상의를 입었다.

'닥터 지바고'가 60년대 후반 유행시킨 의상이기도 해 지바고 블라우스라고도 불렀다. 또 단부분에 모피 트리밍을 댄 '코샤크 코트'를 입었다.

이 처럼 러시아 민속풍 의상을 응용한 의복의 특징으로는 자수와 자카드, 섬세한 손뜨개 느낌의 원단과 러시아의 전통 털모자를 연상케 하는 모피를 다양하게 활용한 것이다.

러시아의 민속 의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모직소재에 꽃과 잎사귀 등을 자수로 놓아 몸에 두르는 형태가 기본이다. 볼륨감을 강조한 것도 특징적이다.

볼륨감 있는 스커트에 풍성한 주름을 넣은 볼륨소매 블라우스. 여기에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 보이는 조끼를 갖춰 입는 것도 러시아풍이다.

러시안룩 중에서도 왕족의 기품을 느끼려면 벨벳, 모피, 자수 등을 사용해 고급스럽고 정교한 장식을 활용해 귀족적이면서 여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금색의 매듭 등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장식을 사용하면 격을 높일 수 있다.

블라우스는 어깨와 소매부분에 레이스가 달리거나 주름이 들어가 풍성하게 표현되며 스커트는 허리에 주름을 잡아 볼륨감을 주거나 허리에 벨트를 해 날씬하게 보이는 벨티드 원피스가 인기를 끌 전망이다.

허리선이 가슴 아래까지 올라오는 엠파이어 라인 원피스와 장식처럼 걸치는 조끼, 풍성하고 화려한 모피 장식, 러시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자카드 소재 재킷 등이 대표적 아이템이다.

모피, 광택소재에 블랙, 브라운 강세











소재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큰 특징은 광택감. 매끄러운 새틴 직물이나 실크 소재를 사용하고 벨벳의 광택감을 두드러지게 했다.

특히 벨벳은 자연스러운 주름과 광택이 살아있고 클래식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소재로 이번 시즌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경향과 잘 맞는다. 벨벳은 재킷에 가장 많이 활용되며 계절이 깊어질수록 코트와 수트, 원피스 등도 벨벳이 사용될 전망이다.

러시안 무드에 따라 가을과 겨울에 유행할 히트 소재는 모피다. 러시아식 옷차림은 추운 북쪽나라답게 털이 많이 사용되는데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 모피, 털(fur)이 최고 인기 소재로 떠오를 전망이다.

모피는 겨울 패션의 단골 소재지만 올해는 코트뿐만 아니라 부츠나 핸드백 등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신제품 옷에도 부분적으로 털이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모피는 가방, 구두 등의 소품에서부터 액세서리 등에 벌써부터 부분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모피의상이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아스트라칸(표면에 꼬불꼬불한 새끼 양털이 덮인 직물), 모헤어 등 클래식하면서도 볼륨감이 느껴지는 소재가 많이 사용될 듯.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에 맞춰 색감이 더욱 깊어졌다. 베이지, 카키, 브라운, 블랙 등의 차분하고 어두운 컬러가 단연 강세. 내추럴하고 짙은 색이 동유럽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올 블랙 컬러의 코디도 시도해 볼만하다. 색이 짙고 깊어졌기 때문에 요란한 무늬도 쉽게 선택할 수 있다.

러시안 밀리터리룩

러시안룩은 기본적으로 새틴, 벨벳, 모피 같은 소재에 황금색 자수나 프린트를 넣어 따뜻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다. 여기에 군복에서 영감을 얻은 밀리터리룩이 합쳐져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가을 러시안 밀리터리룩은 추운 지방의 군복에서 보이는 형태를 응용하고 있다. 몸에 붙는 라인에 이중 단추 여밈, 어깨 견장, 금장단추를 단 재킷이 유행의 선두에 섰다.

특히 무거운 느낌의 밀리터리룩에서 벗어나 여성스럽고 캐주얼한 감각으로 한층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군복 스타일의 재킷을 하나 골랐다면 여성스러운 느낌이 나는 블라우스나 스커트와 함께 입거나 크롭트 팬츠와 반 양말, 부츠 등으로 귀엽게 연출할 수 있다.

부츠 또한 가을부터 인기몰이를 할 예정. 군복 재킷에 블랙진, 코듀로이 팬츠에 무릎까지 오는 롱부츠를 함께 연출하면 러시안 장교복을 연상하는데도 문제없다.

전통의 무게와 화려함이 살아나는 올 가을 트렌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 있는 만큼 선택의 폭도 넓다. 여성스러운 블라우스와 화려한 자수가 수놓인 롱스커트, 밀리터리 재킷, 롱부츠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자.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9-06 19:28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