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하고 섹시한 그녀의 선택

[패션] 밀리터리 룩
터프하고 섹시한 그녀의 선택

남성에게는 터프함을, 여성에게는 섹시함을 주는 밀리터리룩. 밀리터리룩은 대한민국 군제도에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남성들에겐 혐오 1순위일수 있으나 기능성이 좋고 활동적이며 섹시한 밀리터리룩은 색다른 스타일을 원하는 여성들 뿐 아니라 젊은 남성들에게도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고전적인 중후함을 더해 왕가의 군복처럼 꾸며질 이번 가을겨울 밀리터리룩을 만나본다.

인류 역사를 통해 전쟁이 종식된 적은 없었다. 군복(Military Costume)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사회적 지리적 배경이 반영된다. 승패의 위기 상황 속에서 목숨을 건 순간에 인간은 군복을 입었다. 그래서 군복은 목숨을 지켜 내는 보호의복으로 활동성과 안전성, 실용성의 목적이 극대화된 의복이었다.






















기능성 강조한 디자인의 진수

밀리터리룩은 기능성과 활동성을 강조한 군복의 디자인을 빌린 것으로 패션계에도 자주 등장해 왔다. 군복 패션이 유행의 첨단에 설 수 있는 이유는 군복이 기능적인 디자인의 정수를 가장 잘 집약해 놓은 의상이기 때문이다.

군복의 조건은 인간이 바라는 의상의 가장 기능적인 모습이며 최첨단 섬유기술과 제작기법을 활용해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진수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의 군복 디자인은 과시적인 원색을 사용해 상대방에게 위엄과 경계심을 일으키도록 디자인되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위장용의 국방색, 카키색과 어두운 녹색 계열의 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단색의 군복은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위장용 군복으로 모래색에 가까운 색으로 제작되는 등 오늘날 군복은 전쟁이 일어난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변화되고 있다.

패션에서 밀리터리룩은 1,2차 세계대전과 1970년대 초반, 1996년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20세기 말 걸프전의 발발과 함께 끊이지 않는 전쟁의 기운의 영향으로 밀리터리룩의 유행은 매 계절 나타나는 유행패션의 요소로 지속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은 여성패션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다. 400년 동안 여성들의 신체를 옭아맸던 코르셋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복은 이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과거와 달리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치마는 짧아지고 장식 없는 박스형 디자인으로, 상의는 엉덩이를 가리는 긴 재킷으로 교체됐다.

색상 역시 갈색과 살구색, 검정색, 녹색 등 군복색을 차용했다. 물자절약과 활동성을 위해 치마길이가 짧아졌고 바지를 입는 여성들도 생겨났다. 머리모양도 짧아졌고 화려한 모자 장식도 사라졌다.

실크 대용으로 레이온 스타킹이 보급됐다. 패션지 ‘보그’에서 조차 군복처럼 보이는 짧은 치마와 바지 차림을 화보로 다뤘을 정도였다. 물자절약의 방법을 패션지 편집자들이 나서서 유행시켰기 때문이다.

라펠, 어깨 견장, 버클 달린 벨트가 있는 영국군의 방한복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기본적인 코트가 됐으며 ‘트렌치코트’라는 매우 유용한 상품이 대히트를 쳤다. 프랑스 군인들이 착용했던 베레모도 전쟁을 통해 남녀 모두에게 인기 있는 모자가 됐다.

2차 대전은 훨씬 거대한 규모로 전개됐다. 이 시기 복식은 아예 여성성은 사라지고 남성적인 의복이 차지했다. 어깨가 각지고 넓어졌으며 헐렁한 정장이 유행했다.

각진 어깨의 느낌은 수트와 코트 뿐 아니라 부드럽고 여성스러워야 할 블라우스와 이브닝드레스에까지 어깨 패드가 들어갔다.

전쟁의 기간동안 거의 모든 물자가 배급제로 보급됐다. 영국에서는 직물생산의 간소로 인해 실용적인 의복을 매?50벌 정도로 제한하고 주름, 러플, 스커트 엔엿隙#였丙?벨트의 넓이까지 제재했다.





















실크가 낙하산의 재료로 사용됨에 다라 여성들은 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다리에 커피로 색을 입히거나 눈썹을 그리는 연필로 솔기선을 그려 넣기도 했다.

‘아이젠하워 재킷’이라고 불리던 허리에 벨트를 단 장교용 점퍼도 인기였고 영국 공군용 원드 브레이커 재킷도 인기를 얻은 밀리터리룩이었다.

베레모는 전시기간 중 애용되는 모자였고 값비싼 모자 대신 여성들은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다녔다. 프랑스 여성들은 터번을 둘렀고 겨울에는 니트로 된 소련식 모자와 장갑을 착용했다.

커다란 주머니는 코트와 재킷의 큰 특징으로 가방대신 물품을 챙겨 넣기 위한 실용적인 장식이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애국을 위해 여성들도 군복무를 하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일하게 된 여성들은 남성군복과 거의 비슷한 제복을 입었다. 기능적인 작업복을 일상복으로 입으면서 모든 계층의 여성들이 똑같은 옷차림을 했기 때문에 의복을 통한 계층구별의 습관이 모호해졌다.

반전의 표상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1970년대 초의 젊은이들의 복식 중 유행한 밀리터리룩은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운동의 표식이었다. 전쟁을 반대한 히피들이 불필요한 전쟁을 반대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커다란 군용 코트와 위장 재킷을 걸쳤고 그들이 즐겨 입었던 군복은 고전과 현대의 군복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카키색의 의상과 군복지로 만든 셔츠, 군대 로고가 새겨진 셔츠나 모자, 베레모를 썼다. 70년대 밀리터리룩은 군복 본래의 전시라는 상황과 함께 평화를 위한 외침에 저항패션으로 젊은이들의 거리패션으로 활용됐다.

1980년대의 밀리터리룩은 히피패션의 재등장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이 때의 밀리터리룩은 거리패션이었던 밀리터리룩이 고급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하이패션으로의 등극이 주된 특징이다.

샤넬, 구찌, 프라다, 아르마니 등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카키색, 어깨견장, 가슴과 허리에 뚜껑 달린 4개의 주머니, 금장 단추, 군대식 벨트를 장식으로 사용했고 장교복 스타일의 트렌치코트, 롱코트를 선보였다.

쿨하스, 주크



















1,2차 대전 기간 동안의 밀리터리 룩은 전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권신장을 표현하는 저항 패션으로 착용되었다.

군복이 갖는 실용성과 함께 남녀의 성 차이를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남성과 똑같이 입음으로써 여성의 능력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지위 향상에 남녀평등의 기본 권리인 정권참여가 가능해졌다.

여성의 권리주장이 강해지면서 남녀가 같은 복식 스타일로 착용하게 된 트렌치코트, 사파리룩 등은 밀리터리 룩에서 유래된 남녀 공용의복으로 여권신장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사상이나 상징성은 사라지고 하나의 유행 패션의 경향으로 밀리터리룩은 복고풍의 한 경향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21세기에 나타난 밀리터리룩의 특징은 사회적인 변화나 저항의식의 반론이 아니라 장식적인 요소를 활용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밀리터리룩의 중요한 요소인 카키색, 카무플라주 같은 캐주얼한 요소들은 이번 가을겨울에는 찾아 볼 수 없다. 카키색의 카무플라주 무늬를 강조하고 다소 과장된 형태로 표현되던 밀리터리룩의 특징은 군복의 장식적인 요소를 가져오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남성적이고 경직된 밀리터리룩은 여성들의 체형에 따라 변화되면서 여성적인 멋을 풍기고 자신 있고 당당한 품위를 느끼게 한다.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

계속되는 복고적인 패션경향은 군복도 복고풍보다 고전적인 시대의 군복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남성적인 밀리터리룩의 성격은 그대로지만 장식적인 요소로 인해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준다.

정치와 군사, 통치권을 의미했던 국왕 즉위식의 군복차림이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했던 나폴레옹대왕의 군복을 떠올리면 된다.

예년에 비해 딱딱해진 어깨선과 어두워진 색감으로 복고적인 밀리터리풍의 느낌을 살릴 수 있다. 특히 재킷에서 밀리터리룩의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금장단추로 장식된 이중 여밈, 뚜껑이 달린 커다란 외장 주머니, 어깨견장과 버클이 장식된 재킷도 밀리터리룩의 영향이다.

해군들의 제복 가슴에 달려 있을 법한 자수된 심벌마크 브로치, 받줄 디자인의 목걸이, 그리고 장교들이 신던 목이 긴 군화도 이번 밀리터리룩의 장신구로 활용되고 있다. 빅토리안 패션과 러시안룩이 지배적인 2005년 겨울, 패션은 잊혀진 왕국의 권위를 되살리고 있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10-17 18:00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