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과 감성의 모티브, 시대에 따라 머리모양 변천

계절과 함께 알게 모르게 변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머리모양. 신체 부위 중에서 머리모양만큼 눈에 띄게 변화를 주기 쉬운 곳도 없을 것이다.

머리모양이 패션화되고 유행의 대열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길이와 색, 모양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머리모양에 감춰져 있는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모양은 뭘까?

사회적 신분 상징했던 머리모양

여성들은 자신의 머리모양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꾸미기 위해 수많은 도구를 사용해 왔다. 프랑스 혁명 당시와 18세기 중엽에는 철사와 말총, 짚 등을 이용해 머리의 높이를 5피트 이상 높이는 모양이 유행하기도 했다.

풀과 기름으로 머리카락을 고정하고 온갖 꽃과 넝쿨, 레이스와 리본으로 장식해 여성들은 고개를 숙이지도 못했고 머리를 기구로 받치고 앉아서 잠들어야 하는 수고를 기꺼이 했다.

수고롭게 쌓은(?) 머리장식은 일주일에서 보름간 철거하지 못해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것 또한 참아냈다. 멋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통을 감수했다.

지금처럼 미용실이 흔하지 않던 시절,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미용사로부터 접대를 받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머리모양은 사회적인 위치를 표현한다.

머리모양은 사회적 신분을 상징했다. 숱이 많고 곱슬곱슬한 머리모양은 권력을 뜻했다. 남성들까지 굵은 컬이 들어간 가발을 써서 자신의 신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머리 위로 더 높이 장식을 얹을수록 그만큼 신분은 높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크고 높은 머리모양은 언제 박탈당할지 모르는 부와 신분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손질하기 힘든 머리모양의 유행은 시대를 반영한다. 사치스러웠던 궁중패션에도 의미가 부여된 일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귀족들을 기리기 위해서 일명 ‘희생자풍’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머리모양이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기도 했다.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헤어스타일의 모델 브레드 피트, 치켜올려서 묶는 포니테일은 젊음을, 목 뒤로 묶는 포니테일헤어는 성숙한 느낌을 준다. 에스티로더(왼쪽부터)













프랑스 궁중 여인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한껏 부풀린 ‘업헤어(up-hair)’가 유행했던 1950년대.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거의 없었고 하루에도 서너 번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어떻게 하면 사교적인 모임에 아름답게 꾸며 나갈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 당시 여성들의 할 일이었다.

6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영국의 모델 트위기는 남자아이 같이 짧게 자른 머리모양으로 패션사에 미니스커트와 함께 큰 충격을 던졌다.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고 남성을 남성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70년대에는 미장원을 벗어나 그대로의 머리모양을 추구했다. 젤이나 무스, 드라이어를 이용한 인위적인 머리보다 자연스러운 자기를 드러낸 데서 여성 해방의 의미가 부여됐다.

90년대는 머리모양을 비롯해 패션전반에 걸쳐 다양성이 추구됐다. 생머리, 파머, 언밸런스 컷, 숏, 롱 등 추구하는 스타일이 풍부해진다. 집단적인 유행보다 자아를 찾아가고자 한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머리모양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시간은 단 6초. 특히 얼굴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것이 머리모양이다. 미국의 예일대 연구 결과에서 따르면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머리모양이라고 한다.

머리위로 치겨 세운 머리 모양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재클린 케네디의 단정한 머리 모양은 1960년대 비트, 히피와는 반대되는 사회적 가치를 표방했다. (왼쪽부터)












그 중에서 여성은 어깨길이 정도의 기네스 팰트로 스타일의 생머리를 가장 선호하며 남성은 브레드 피트의 깔끔한 스포츠형 머리모양이 보기 좋다고 평했다.

머리모양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흩트리지 않고 고정시키는 사람은 철저하며 자신의 규제가 강한 사람이다.

항상 같은 머리모양을 고수하는 사람은 고지식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인상을 준다. 머리모양에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은 남들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

머리모양을 자주 바꾼다면 호기심이 많고 개방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남성의 긴 머리가 힘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신화 속 괴력의 소유자 삼손은 머리카락을 잘림으로 힘의 근원을 잃어버렸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들과 광인들의 악한 기운은 머리카락에서 나온다고 믿고 그들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벌을 내리기도 했다.

1944년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파리에서 독일군에 협력한 혐의를 받은 여성들이 거리로 끌려 나가 강제로 머리카락이 잘리는 군중처벌을 받았다.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는 것은 ‘공개적으로 벌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잘린 머리카락이 자라는 동안 치욕의 징표는 오래도록 남기 때문이다.

더 이상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게 된 남성은 짧은 머리모양을 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남성들이 긴 머리모양을 했을 때는 무례함과 반항, 저항을 상징했다.

커트머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임을 말해준다. 성적인 매력과 사회적인 지위를 동시에 거머쥔 가르송 헤어의 대표적인 모델 루이스 브룩스. 마릴린 몬로의 짧고 곱슬거리는 금발은 관능적이지만 연약하고 상처입기 쉬운 여성을 표현한다. (왼쪽부터)









이와 반대로 머리를 완전히 삭발하는 스킨헤드는 극히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강제적인 삭발은 힘을 빼앗긴 남성성을 뜻한다.

수감자와 포로, 노예 등의 삭발머리는 자유를 박탈하고 남성을 빼앗는 행위였다. 수도자들의 삭발은 신을 향한 자율적인 구속과 남성을 버린다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

커트머리

커트머리는 자유롭고 강한 힘을 가진 여성으로 표현된다. 긴 머리카락을 자르면 얼굴이 넓어 보이고 광대뼈가 약간 올라가 보이는 효과가 있다. 목이 강조되며 턱이 각져 보이기도 한다.

1920년대에는 커트머리가 성적으로나 직업적으로 독립된 여성을 암시했다. 선거권을 획득하는 등 사회적 권리를 새롭게 얻게 된 여성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을 속박해온 거추장스러운 스커트와 머리카락을 과감히 잘라버린다.

스커트의 길이는 짧아졌고 코르셋을 벗어 던졌다. 커트머리가 여성의 특징을 중성화시켜 ‘갸르송(남자아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커트머리가 다시 나타난 것은 1960년대. 모델들의 틀어 올려진 머리모양에 식상한 디자이너 마리콴트는 자신이 유행시킨 미니스커트와 어울릴 헤어스타일을 헤어디자이너 비달사순에게 의뢰한다.

그러자 비달사순은 얼굴 윤곽을 따라 기하학적으로 자른 커트헤어를 선보였고 많은 여성들이 그것을 모방해 과감히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오늘날 짧은 머리카락은 자신감의 표시다. 자신의 얼굴윤곽이나 두상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자주 개방적인 성격으로 표현된다.

짧은 머리는 시선을 눈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직선적이며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 짧은 머리는 신중하고 절제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는 여자 앵커들이 대부분 위로 짧게 자른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긴 머리

길게 기른 머리는 젊음을 상징한다. 사회적인 체면과 연령에 대한 권위 때문에 인간은 머리카락을 자연 그대로 기르지 못한다.

남녀가 구분되지 않는 머리모양의 유행은 성적인 차별이 불어들고 역할이 공유되고 있는 사회상을 대변한다. 제이폴락, 이효리의 긴 갈색 머리는 건강한 섹시함을 준다. (왼쪽부터)











이같은 이유로 자연 상태의 긴 머리카락에 대한 향수 때문에 긴 머리카락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갖는다.

느슨하게 풀어헤쳐진 긴 머리는 관능적이다. 또 순수하고 나이 어린 여성을 뜻하기도 한다. 로마제국 시대 때 결혼한 여성은 땋은 머리모양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자연 그대로 풀어헤친 머리모양을 했다.

특히 결혼식에서 신부는 머리를 풀어 자신이 처녀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머리를 짧게 잘라 남편에 대한 복종을 맹세했다고 한다.

또 머리카락을 해방시키는 것은 곧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1950년대 로큰롤에 열광한 비트족은 얼굴을 가릴 정도로 머리를 길러 자신들의 개방성을 표현했다.

보헤미안들과 예술가 중에서도 체재에 순응하지 않는 자아를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길게 기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밖에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가리는 부드러운 곱슬머리는 르네상스 미녀들의 인기를 얻었다. 곱슬머리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빗어 넘기거나 핀으로 고정시킨 머리모양

빗어 넘겨 고정시킨 머리모양은 일종의 규제와 자제력을 의미한다. 많은 남성들은 아직도 단정하게 손질된 여성의 머리모양에 묘한 충동을 느낀다.

그 여성이 머리를 풀어헤치면 경계심을 허물고 성적으로 개방된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약간 헝클어진 것 같은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머리모양은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말총머리는 젊음을 발산한다. 남성들은 이런 머리모양에서 여동생이나 소꿉친구를 연상할 수 있다. 뒤통수 위로 묶어 올린 머리는 젊어 보이며 목 근처에서 느슨하게 묶은 머리모양은 성숙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준다.

인순이의 부풀린 머리모양은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음악과 잘 어울린다. 옅은 갈색의 긴 머리카락의 소유자 이효리는 건강한 섹시함을 발산한다.

연인과 이별했을 때,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게 됐을 때, 누군가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고 싶을 때, 기분전환을 위해 사람들은 머리모양을 바꾼다.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머리카락의 힘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만한 머리모양을 알고 있는가.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