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한방] 말기암 치료 ①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항생제 내성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초기 감기로 생긴 염증에 대한 항생제 치료가 효과가 없어 폐렴으로 악화돼 사망하는 사례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에 잘 듣던 항생제라도 내성이 생긴 탓에 더욱 더 강력한 신종 항생제의 출현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과연 인류는 갈수록 더 강력해져야 하는 항생제를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약효는 얼마나 오래 우리 몸 속에서 유지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회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암 치료에 있어서도 약물의 내성 문제는 아주 심각한 실정이다. 우리 암센터로 이송돼 오는 환자들 대다수의 이유는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때문일 정도다. 기존의 항암제가 더 이상 효과가 없어 암의 전이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약물 내성뿐만 아니라 영양 장애를 동반한 빈혈까지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생사를 다투는 위중한 상태를 부르기도 한다.

빈혈은 암환자의 30% 안팎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증상이며, 또 암이 진행될 경우에 빈혈 증상은 5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 뉴욕의대 종양학과 전후근 교수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소화기 암환자의 83%, 전체 암환자의 63%가 영양실조 등 영양 장애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으며, 암 사망자 5명 중 1명의 직접적인 사인은 영양 장애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정부가 4기 암환자들에게 황체호르몬이 함유돼 식욕증진 효과가 있는 메게스트롤 아세테이트 제제(제품명 메게이스)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확정한 바 있는데, 이런 영양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심각한 약물 내성 문제에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암은 우리나라 사망원인의 1위일 정도로 아주 흔한 병이다. 평소에 잘 듣던 항암제가 어느날 효과가 없게 되었다면 또 다른 강력한 종류로 바꿔줘야 한다. 기존의 항암제에 내성을 가지게 된 때문이다. 이 같이 몸 속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항암제 내성 공방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700만명 이상이 귀중한 목숨을 잃고 있다.

항암 치료의 세계 권위자들 중에는 강력한 신종 항암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약물 내성을 없앤 약한 독성의 항암제로 치료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도 있다.

전이된 암의 경우 암세포 괴사를 위한 공격요법뿐만 아니라 암세포를 휴면(休眠ㆍDormancy)시킴으로써 서서히 자연융해(Apoptosis, 암세포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자살하는 것) 상태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의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 거대 범죄조직 소탕에 섣불리 총격전으로 맞서다가는 자칫 큰 희생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금융제재 및 통신두절 등 압박 수단을 동원하여 뿌리깊은 조직의 와해를 유도하듯 암세포의 공격에 대응하자는 전략이다. 이런 대응책으로는 암 랩핑(Wrapping)과 신생혈관생성억제(Anti-angiogenesis) 요법을 꼽을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요법을 정통 한의학의 관점으로 풀이하면 ‘괴병필어(怪病必瘀)’라 요약할 수 있다. 난치질환은 혈관 내 어혈(瘀血)을 풀어야 낫는다는 오랜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암세포 주변의 어혈은 암혈전(癌血栓, Cancer Thrombosis)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최근 한의계에서는 무독성의 천연물질을 이용하여 전이 암환자의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보고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화학항암제와의 병행해 치료함으로써 약물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과 약물 내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독성이 약한 항암제 개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성과가 기대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ㆍ양방을 함께 사용해 암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특히 중국의 경우 한ㆍ양방 병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상하이 의료특구에서는 중국 의학과 미국, 독일 의학이 융합된 의료센터가 곧 문을 열 예정이다.

10억 인구의 인도 역시 아율베다 전통 의학과 서양 의학의 병용 요법이 암치료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각국이 동ㆍ서 의학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무기로 인류의 오랜 숙원인 암 정복에 나서고 있다.


최원철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통합암센터장 akazh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