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화이트 등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 남성복은 슬림해져

공간을 울려대는 배경음악과 화려한 조명장치의 열기 속을 미끈한 몸매의 모델들이 걸어 나온다. 갓 지상에 발을 디딘 순진무구한 천사로, 고혹적이고 우아한 귀부인으로, 혹은 성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여성으로, 또 완벽하게 성장(盛粧)한 신사로, 이어 반항적인 청년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인체를 캔버스로, 실과 바늘을 붓으로 자유자재의 형상을 그려내는 패션디자이너들의 창조성이 빛나는 무대인 ‘2007 봄여름 서울컬렉션’이 1일부터 열흘간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렸다.

8년 만에 컴백한 디자이너 이신우 등 62명의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가 내년 봄여름을 겨냥한 의상들을 선보인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로맨틱 미니멀리즘’. 블랙&화이트, 심플한 외관에 디자이너 개개인의 창조적인 손길이 더해져 각자의 개성을 살려냈다.

여성복은 단순함 속에서 여성성을 강조했다. 로맨틱 감성의 화려한 색감이나 장식은 사라졌다. 대신 미니멀리즘에 근거한 심플한 선에 허리선만 살짝 잡은 자연스러운 루즈핏 실루엣의 원피스, 아랫단에 풍성한 볼륨을 준 스커트가 많았다. 내년 봄여름에도 레깅스, 스키니진으로 하체는 한껏 조이고, 상체는 헐렁하고 풍성한 볼륨감을 강조해 전체적으로 여유 있는 외관을 갖출 듯하다. 즉 실루엣에서 하의는 타이즈와 레깅스, 달라붙는 팬츠로 최대한 조여 주고, 상의는 상체를 강조하는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아랫단에 볼륨을 주거나 허리선을 골반에 걸친 ‘로우 벨티드 스타일’로 처리해 풍성한 상체를 만들었다. 남성복은 한층 더 슬림해졌다. 아름다움에 눈 뜨는 남성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더해 권위적인 모습을 벗고 남성의 선을 찾았다. 재킷의 길이가 짧아졌고 허리선도 날렵해졌다. 팬츠도 짧아지고 하체를 축소시켜 보이는 효과를 냈다. 소재 역시 움직임에 따라 몸을 타고 흐르는 듯 연하고 부드러워졌다. 정장은 날렵한 인상을 주었지만 캐주얼웨어들은 자연스럽고 헐거운 편안함으로 자유를 주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장점을 교환하는 경향은 남녀를 합체시킨 인상을 줬다. “남과 여, 흑과 백, 사상과 이념의 대립이 아닌 서로 아름답게 조화로운 융합을 이끌어 내는데 집중했다”는 디자이너 이신우의 말처럼 남성복과 여성복이 한 무대에 공존했다.

대다수 흑백과 회색의 조화 속에 파스텔톤이 강세인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회색빛을 띠는 미색이 주를 이뤘다. 이중적인 색감을 내는 광택소재의 사용도 빈번했다. 특히 투톤 실버 그레이의 은은한 빛과 골드컬러는 침울해 보일 수 있는 모노톤 속에서 빛을 느끼게 했다. 상반된 이미지의 결합은 불투명 소재와 투명 소재를 겹쳐 한 벌로 완성되는 것으로도 표현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다 보니 봄여름에 많이 볼 수 있는 화사한 프린트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주름을 잡거나 스티치를 넣어 형태의 변화를 줘 단조로움을 극복했다.

이번 컬렉션에는 서로 상반된 미니멀리즘과 로맨티시즘의 이미지가 공존했다. 남성과 여성, 흑백, 달라붙거나 헐렁하게, 불투명과 투명, 광택과 무광택, 분해와 재조합 등이 어울려 영감이 넘쳐났다. 어느 때보다 다양성이 중시되고 기본을 충실히 학습한다는 느낌이었다.

올해 13회째를 맞는 서울컬렉션은 산업자원부와 서울특별시의 지원 아래 한국패션협회, 서울산업통상진흥원(서울패션디자인센터),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 한국복식디자이너협회(KFDA), 뉴웨이브인서울(NWS)가 공동 주관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육성하고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에 이은 세계 5대 컬렉션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사진 : 박재홍

컬렉션사진제공 : 모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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