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진료가 거의 끝날 시간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퇴근하면서 장미 한 송이를 사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느닷없는 주문에 “허허… 아니 갑자기 왠 장미? 오늘이 무슨 날이야?”

“아, 글쎄 우리 막내딸이 드디어 생리를 시작했다고 외식도 하고, 케익에 불도 켜서 축하를 받아야 겠데요. 그러니 케익도 작은 걸로 하나 사갖고 오세요. “

중학교 2학년인 막내딸은 다른 친구들은 다 하는 생리를 자기만 안 하고 있어서 약간 소외감 같은 것을 느끼고 생리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6개월 전쯤에 이런 일이 있어서 웃은 일이 있었다.

하루는 막내딸이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아빠, 나 오늘 좀 황당하다. 어떻게 소변을 팬티에 흘릴 수 있지? 나 참! 아까 뭐가 흐르는 것 같아서 지금 확인해 보니 소변이 묻은 것 있지. 난 또 생리가 드디어 시작되나 했지, 쳇! “

막내딸이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스타일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아빠에게 얘기하는 것은 의외였고 반갑기도 했다. 이 해프닝은 초경 전에 가끔씩 전조증상처럼 나타날 수 있는 냉의 흐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정식으로 초경이 시작됐다니 희소식이었다.

꽃집에 가서 잠시 생각하다가 빨간 장미 세 송이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막내 딸에게 “왜 장미 세 송이일까? 퀴즈! 추측해서 맞춰봐” 했다.

옆에 있던 큰 딸이 “ 참을 인(忍)자 3개를 마음에 새겨라, 이런 건가? 히히히”라고 웃었다. 예기치 않은 대답에 나는 다시 뭘 참느냐고 물어보았다. “뭐, 생리통도 참아야 하고, 생리시 번거로움도 참아야 하고… 등등이겠지요.” 큰 딸이 말했다.

‘아! 그런 대답도 가능하구나’. 여성이 생리 현상에서 갖는 부담감을 남자인 나로서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이젠 몸을 소중하게 아끼고 조심하고, 스스로 성숙한 여성으로 생각하여 마음자세도 바르게 잡고, 영혼의 성장에도 이젠 관심을 가질 때라는 뜻으로 3송이를 해석하고 싶은데···”라고 딸 가진 엄마의 노파심을 실어 말한다.

“야! 정말 다 일리 있는 말이다. 아빠의 뜻은 어떤 것이었느냐 하면, 한 송이는 성숙한 여성으로서 태어나는 우리 딸을 축하하기 위해서, 또 한 송이는 우리 딸을 자신의 반쪽으로 받아들여 음양합일을 이룰 우리 딸의 미래 파트너를 위해서, 또 한 송이는 그 사랑의 결실로 생겨날 미래의 아이를 위하여 준비해 봤어. 너무 거창한가?”

“아니! 맘에 들어요. 좋은 것 같아요···” 하면서 막내딸은 배시시 웃는다. 자기를 이제 좀 어른스럽게 대접해주는 것 같아서인지 수줍어 하면서도 은근히 스스로를 다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막내딸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라서 하늘이 주신 소중한 보물인 음양합일의 기쁨 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조촐한 파티를 마치며 케익에 붙여둔 촛불을 껐다.

마지막으로 큰딸이 한 말이 걸작이다. “아니 근데, 생리 축하합니다~ 생리 축하합니다~ 이렇게 노래 부르려니 좀 그렇다. 하하하.”


이재형 미트라한의원 원장 www.mitr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