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이후로 키 멈추고 온몸은 계속 퇴행美서 치료제 개발… 희망갖고 겨울 견뎌동생도 같은 병… "비싼 약값 국가가 지원해 줬으면"

희귀병인 뮤코다당증을 앓고 있는 김상훈(24). 상묵(19)형제. 울산=
“OO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20년 동안 너무 많이 아파서 힘들어 했는데, 아픔이 없는 편안한 곳에서 쉬기를…”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지난달 23일 한국뮤코다당증 환우회(http://mps.x-y.net)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12월 9일에도 ‘아픔이 없는 곳으로’라는 제목으로 세상을 등진 또 다른 환자를 추모하는 글이 올라 있다.

희귀병인 뮤코다당체 침착증(Mucopolysaccharidosis, MPS)은 뮤코다당 물질의 분해에 필요한 효소의 부족으로 야기되는 유전병으로 점차 육체적ㆍ정신적 퇴행화 현상을 보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질환. 1형에서 9형까지 분류되는데, 우리나라에는 MPS 2형인 헌터증후군 환자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러한 2형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거친 치료제가 국내에 들어와 있으나 현재 당국이 심사 중에 있다.

치료제 수입 심사 늦어져 발동동

MPS 2형을 앓고 있는 상훈(24)ㆍ상묵(19) 형제의 어머니 김경옥(49) 씨는 그래서 요즘 마음이 더욱 살얼음판을 걷는 듯 긴장되고 초조하다. “차라리 치료제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국의 허가 절차를 기다리고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하루하루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아요.” 혹여 기다리다가 약 한번 써보지 못하고 잘못되면 어쩌냐는 걱정에, 순간순간이 지옥이란다. 중증 환자 대부분이 10~20세에 죽음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절차란 건 필요하지만, 애끓는 환자들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하루 빨리 치료제를 쓸 수 있도록 절차를 밟는 시간을 단축시켜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상훈 군의 이상 증세를 발견한 것은 여섯 살 되던 해. 목욕을 시키다가 팔이 약간 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싶어 정형외과에 데려갔으나 뚜렷하게 병명을 찾지 못했다. 이후로도 3개월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았지만, 키 재고 몸무게만 측정하는 등 별다른 치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대학병원에서 사진 한 장을 의료진으로부터 건네 받았다.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라는 소견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본 순간 엄마는 온몸이 일시에 굳어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바로 그 사진은 얼굴과 골격이 변형되고, 키 또한 초등학생 정도에 불과한 한 성인 남자의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상훈이는 팔만 휘었지, 키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고, 말도 걸음걸이도 다 멀쩡한데···’. 농담처럼 들렸다.

그러나 몹쓸 저주처럼, 점차 병마의 퇴행 증상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후로 상훈 군의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이제 어엿한 20대 청년이 되었지만 키는 약 110cm 정도에 불과하다. 점점 잘 걷지 못하고, 글씨를 바르게 쓸 수 없게 손도 굳어져 간다. 뿐만이 아니다.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고, 탈장에 중이염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몸이 피폐해져 갔다.

임재범 기자
설상가상으로 2002년 대학 졸업반 때 버스를 타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론 거동을 아예 못한다. 바깥 출입은커녕 집안에서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힘든 상태가 돼버렸다. 잠시도 혼자 놔둘 수 없다. 항시 간병의 손길이 절실하지만, 버스 회사에 다니는 아빠와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는 24시간 곁을 지킬 수 없어 늘 가슴을 졸인다.

“아침에 칫솔에 치약도 묻혀 놓고, 식사 준비도 다 해놓고 나가요. 하지만 숟가락조차 쥐기 힘든 상태니 죽지 못해 겨우 음식물을 끌어다 입에 넣는 거지, 어디 제대로 먹는 거겠어요.”

호흡 가빠 말조차 제대로 못해

얼마 전에는 화장실에 가다가 피로 범벅이 돼 있는 문을 보고 기절할 뻔 하기도 했다. 피부병으로 머리가 가려워진 상훈 씨가 밤중에 자기도 모르게 벽에다 대고 머리를 마구 긁은 것이다. 방문 앞에 변이 쌓여 있는 날도 있었다.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채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변을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몸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흡조차 가빠 말하기도 힘든 지경이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다섯 살 아래 상묵 씨 역시 형보다는 퇴행이 조금 더딜 뿐 똑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음의 아픔은 어쩌면 형보다 더한지도 모른다. 엄마는 “형 상훈이는 마음을 비워 좀 평온한 상태이지만 상묵이는 온통 나을 수 있다는 집념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120cm에 불과한 키는 스무 살 청년 상묵 씨에게 가장 큰 아픔이다.

“상묵이 옷이 다 헤어져서 버리려고 하면 아이가 말려요. 새 옷 사는 돈을 아껴뒀다가 나중에 약 나오면 사자고요.” 새 옷은 나중에 키 크면 사겠다는 상묵 씨를 보며 엄마는 고개를 떨군다. “여유 있는 집에서 태어났으면 미국 가서라도 치료할 텐데, 부모 잘못 만나서 애들이 고생한다”고 얼굴을 붉혔다.

뮤코다당체 침착증의 치료는 크게 골수이식, 효소 보충법, 유전자 치료 등이 있지만 현재로선 효소 보충을 통한 약물 치료가 희망이다. 유전자 치료는 연구 단계에 있고, 골수이식은 위험성이 따른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백경훈 교수는 “MPS 2형 환자의 경우 부족한 효소를 보충해주는 약물 치료가 도입되면, 골격계와 심장 등의 증상을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다”면서 “고가의 약물인 만큼, 먼저 도입된 MPS 1형처럼 국가의 전폭적인 비용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치료제의 도입이 코앞에 와 있는 만큼 상훈이네 가족에겐 이제 빛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를 기다리는 이 겨울은 어느 때보다 견디기 힘든 길고 추운 어둠의 시간인 듯하다.

◆ 발병 원인 및 주요 증상

뮤코다당체 침착증은 분해에 필요한 라이소좀 효소(lysosomal enzymes)의 부족에 의해 야기되는 유전병이다.

뮤코다당(GAGs)이 세포에 축적되고 소변으로 과도히 배설되면서 점차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인 퇴행을 일으킨다. 심한 경우 조기 사망에 이른다.

MPS의 임상형은 어떤 효소가 결핍되느냐에 따라 현재 1형에서 9형까지 분류되는데, 서양에는 1형이 가장 많고, 한국 일본 등에서는 2형인 헌터증후군이 많다. 국내 환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형은 관절이 굳고, 성장이 더디며, 특징적으로 머리가 커져 육안으로도 쉽게 판별이 된다.

증상은 MPS의 종류와 환자의 연령에 따라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든 MPS 아동은 태어날 때는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다가 생후 1년 가량이 지나면서 점차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치료가 요구되는 증상의 시작은 보통 귀의 감염, 콧물, 감기 등이다. 또 아이들은 조악한 얼굴형태를 갖고 정도가 다르지만 골격계의 문제와 대부분에서 관절의 변형으로 움직임에 제한을 받게 된다.

많은 장기에 문제를 일으키고 일부 아동에게서는 시력장애를 일으킬 만한 각막혼탁이 일어난다. 간과 비장의 비대와 심장과 혈관의 침범, 성장지체, 뇌수종 등이 나타나며 피부가 두터워지고, 털이 많아지며, 만성 콧물 그리고 청각장애의 원인이 되는 만성 중이염을 앓는 경우도 많다. 진행적인 정신지체가 나타나기도 한다.

◆ 진단 및 치료

진단은 전문 소변 검사와 효소 검사를 거치면 대부분 확진이 가능하다. 치료법은 크게 골수 이식, 효소 보충법, 유전자 치료로 나뉘어진다.

골수이식은 MPS 1형에서는 얼굴모양, 폐쇄성 무호흡증, 심장병, 청력 소실 등의 증상이 상당히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2형에서는 예후가 그리 좋지 않아 추천되지 않는 실정이다.

배양된 포유동물의 세포에서 재조합되어 만들어진 효소를 직접 환자의 말초혈액에 주입하는 효소 보충법은 동물실험을 통해 가능성 있는 MPS 치료법으로 연구되어져 왔다. MPS 1형은 이미 치료제가 나와 있으나, 2형의 경우 개발은 됐으나 아직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보존적 치료가 중요하다. 호흡기와 심혈관계 합병증, 청력소실, 수근골 신경이상과 척수압박, 수두증 등이 합병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