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에 겨우 힘겨운 걸음마 "절망하기엔 아이가 너무 예뻐요"염색체 이상으로 운동능력 이상장애… 폐렴·패혈증 겹쳐 고통정부 지원질환 대상서 제외, 최소함의 생계비 마련도 어려운 지경

6일 인천 남동장애인복지관 건물 2층 놀이치료실. 아이는 방안 가득히 쌓인 장난감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한지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은 채 장난을 친다. 아이가 장난감을 하나 고를 때마다 선생님은 재빨리 장단을 맞추며 아이에게 말을 건다. “어이고, 공을 골인했어요. 잘했어요.” “강아지 실로폰으로 놀이할까요?”

발달 수준이 돌 무렵에 멈춰진 일곱 살 솔이는 ‘엔젤만 신드롬’이란 병을 앓고 있다. 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발달지체에서 운동과 균형 능력의 이상 등의 장애가 나타나는 병으로, 통상 3~7세 사이에 증상이 두드러진다. 언어장애, 사지의 떨림, 과다행동 등이 복합적으로 동반되지만, 놀이치료나 물리치료 등의 보조적 치료 외엔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2002년 겨울. 솔이 엄마 아빠는 생후 17개월이었던 아기를 안고 급히 지역 병원을 찾았다. 솔이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발작을 일으켰던 것. 어찌된 일인지 한번 시작된 경기는 무려 12시간이 넘도록 잡히지 않았다. 가까스로 대발작을 멈춘 뒤에도 꾸벅꾸벅 졸듯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비교적 미미한 경기 증세가 하루에도 300회 이상 반복되는 등 끊임없이 발작에 시달렸다.

아무리 병원에 다녀도 증세가 고쳐지니 않으니 엄마의 심정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절박했다. “천둥오리 혓바닥을 먹이고, 새끼 쥐의 배를 갈라 말려 먹이기도 했어요.” 엄마는 물불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한번은 진주까지 어린 솔이를 업고가 경기에 좋다는 약을 지어 먹였는데 배가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질겁을 하기도 했다. “경기 약 자체가 간에 부담을 준대요. 그런데 그런 위험이 있는 한약을 마구잡이로 지어 먹었으니 큰일날 뻔한 거죠.”

솔이가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왼쪽)와 수녀님의 도움을 받으며 걷기 등 놀이를 하고 있다. 김지곤 기자
그렇게 원인 모를 경기 증세를 제어하지 못하고 속을 태운 지 1년. 폐렴과 패혈증(감염이 일어나 혈액에서 세균이나 진균이 발견되는 것)이 겹쳐 생사를 넘나들었던 솔이는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고, 11월 ‘엔젤만 신드롬’이란 진단을 받았다.

이름도 생소한 질병에 가슴이 무너졌지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은 없었다. “폐 사진을 찍어보니 성한 부위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온통 병균으로 뒤덮여 있었어요.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다들 가망이 없다 했죠. 죽는다 해서 울고불고 했어요.” 엄마는 그때의 고통스런 기억이 되살아난 듯 고개를 떨구었다.

다행히 솔이의 상태는 고비를 넘긴 후 많이 호전됐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꾸준한 경기 약 복용으로 잡힌 듯 했던 발작 증세는 지난해 8월, 약을 줄이려고 하는 찰나 다시 엄습했다. 지금도 솔이는 아침 저녁으로 두 종류의 경기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 종류의 약을 추가해 모두 세 가지의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여덟 살이 돼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지만, 아직 혼자서 걸음마를 떼기도 어렵다. 발목 부분에 문제가 생겨 재활의학과에 의뢰해 신발 깔창도 새로 주문해놨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한다. 엄마는 “솔이가 걷기라도 하면 특수학교라도 보낼 텐데 아직 보행조차 불완전해서 학교 가는 일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오전에는 A복지관, 오후에는 어린이집, 저녁에는 B복지관 등 엄마는 체중이 20kg가 넘는 딸을 안고 다니느라 겨울에도 땀이 흐를 지경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서서히나마 조금이라도 진전을 보이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봄 솔이가 서투르나마 첫 발자국을 떼던 날, 엄마는 자정이 가까워 가는 시간임에도 캠코더로 솔이의 걸음마 장면을 찍고 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기쁜 소식을 전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제대로 걸으면 떡을 돌리겠다고 약속도 했지요.” 약 8개월 가량 놀이치료를 받았더니 “주위가 산만한 모습도 아주 조금은 덜해졌다”고 자랑한다.

솔이가 엄마와 함께 놀이터로 나와 환하게 웃고있다. 김지곤 기자
그런 솔이를 엄마는 “너무 예뻐서 걱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항상 얼굴의 웃음꽃이 가득한 모녀의 모습은, 으레 희귀난치성질환 가족하면 떠오르는 암울한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엄마도 이 부분이 의아하다고 했다. 복지관 등에서 만나는 희귀병 환우 가족들은 다 밝고 긍정적인데 왜 그렇게 언론에 나오는 사람들은 슬픈 분위기 일색인지 모르겠단다. “솔이가 저렇게 늘 예쁘게 웃는데 어떻게 엄마인 제가 인상 쓸 수 있겠어요?”

그러나 사실 솔이 엄마에게 지워진 짐은 ‘절망에 빠져 있는’ 여느 희귀병 부모들 못지않게 무겁다. 솔이 아빠마저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떨어져 지내고 있어 엄마는 어린 솔이를 홀로 힘겹게 부양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의 지원금 20만원이 한 달 생활비의 전부. 복지관 치료비다, 교통비다 최소한의 생계비도 대기 어려워 엄마는 아이가 치료를 받는 시간엔, 잠시 쉴 틈도 없이 전단지를 돌리는 등의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엄마는 “절대 치료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복지관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보통 2년 이상 대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보조적 치료도 마음껏 못 받는 일이 없도록 복지관 의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해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보였다.

엄마는 요즘 ‘한국엔젤만신드롬가족모임’에도 참여해, 질환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엔젤만신드롬은 정부의 희귀ㆍ난치성 질환자 지원대상 질환에서도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엔젤만신드롬의 경우 당국에서 뚜렷한 질병 코드도 부여받지 못하고 염색체 이상 관련 질환의 하나로만 분류돼 있다”며 “근본적인 치료법 없이 평생을 보조적 치료에 매달리는 환우 가족들을 고려해서 법이 하루빨리 개정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엔젤만 신드롬(Angelman Syndrome)이란?

염색체 이상에 의한 유전병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원인이 확실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으나15번 염색체 근위부의 미세결실이 주원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프래더윌리증후군과 동일한 15번 염색체 이상 질환이지만, 임상증상은 전혀 다르며 발생 빈도는 프래더윌리증후군보다 낮은 편에 속한다. 미국의 경우 약 2만 명 중에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증상으로는 발달지체, 언어장애, 운동이나 균형능력 이상, 저색소증, 사시와 안구백색증, 수면장애, 과다행동, 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