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과 낯선 사람

얼마 전, 서울대와 연세대가 각각 실시한 논술 모의고사는 앞으로 대입 논술 고사에서 교과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였다.

서울대는 예외적으로 교과서 지문을 다수 사용하였고, 연세대의 경우에도 제시문의 난이도가 교과서 수준으로 낮아졌다. 통합 교과 논술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교과서 중심의 문제를 출제하겠다는 대학 측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처럼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통합 교과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과서에 충실하되, 교과서에서 다루는 내용을 현실과 적절히 연결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즉 교과서와 현실, 앎과 삶을 넘나드는 '가로지르기'가 절실하다.

그러나 시몽의 논술 가로지르기는 단지 논술시험을 앞둔 학생들만을 위한 글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교과서를 들춰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교과서는 따분하고, 지겹기만한 책이었으니까. 당연한 말만 되풀하는 것 같은 교과서지만, 곱씹어보면 그만큼 우리의 삶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책도 드물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교과서를 읽다가도, 고전들을 읽을 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깨달음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웠던 걸까?' 가끔 궁금하지만 귀찮아서, 혹 바빠서 미처 교과서를 펼쳐보지 못했던 독자들, 또 요새 애들은 학교에서 도대체 뭘 배우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시몽과 함께 교과서 안팎을 가로지르는 지식여행을 떠나보심이 어떨지.

"시민 사회는 유동성이 높은 사회이므로, 시민 사회의 윤리는 혈연, 지연, 학연 등을 뛰어넘어 낯선 타인 간의 행위 규범을 정립한 윤리라 할 수 있다. 시민 사회는 다양한 직업관, 인생관, 가치관 등을 가진 낯선 사람들이 원심적으로 이합집산을 하는 사회이므로, 시민 사회의 윤리를 이른바 낯선 사람들의 윤리라 할 수 있다."

-교육 인적 자원부, <고등학교 시민윤리>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하철을 오가면서 책 읽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20분을 멀다하고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가 반가울 리 없다. 그뿐인가? 일반화된 디엠비(DMB)휴대폰 덕택에, 지하철에서 이어폰도 꽂지 않은 채 텔레비전이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악질'들도 늘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지하철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는 이들이다. 생계를 위해서 물건을 팔거나, 구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치자. 밑도 끝도 없이 ”당신은 지옥행이다” 라고, 협박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을 볼 때면, 무섭다. 그들에게서는 도통 ‘낯선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낯선 사람이 될 수 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스스로도 낯선 사람으로 등장한다.

얼마 전, 학생들에게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나타난 현대인의 소외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포장마차처럼, 낯선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에 대해서 글을 써보라고 했다. 한 남학생이 엘리베이터를 소재로 쓴 글 중, 한 구절이 반짝였다.

“나는 40000번 이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8000번 이상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지만, 말을 나눈 적은 300회를 채 넘지 않는다.”

40000번이라는 수치가 좀 과장되었겠지만,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은 일상적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학생과 마찬가지로 살갑게 먼저 인사를 청하거나 말을 건네지 못한다. 오히려 누군가 말을 걸어올라치면 부담감을 느끼거나,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딴청을 피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루 종일 낯선 사람들을 만나야할 운명이지만, 마치 "날 건드리지마, 그러면 나도 널 안 건드릴께"라고 쓰여진 계약서를 교환이라도 한 듯, 서로 모른 척하며 잘도 돌아다닌다. 이와 같은 ‘상호 불간섭’과 ‘개인의 자율성’ 보장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이 맺은 윤리적 계약서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너 혼자는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제발 남들을 귀찮게 하지는 말자!” 혹은 "니 방 안에서는 짐승처럼 굴어도 상관 안 할테니, 공공장소에서는 사람처럼 행동하자." 이로써, 둘 이상의 낯선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은 윤리적 계약이 작동하는 윤리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다시 지하철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하철이란 공간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강제적인 부딪힘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하철은 정태춘이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에서 노래하듯, ‘우리를 짐짝처럼 싣고 가는’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앞서 말했듯 윤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하철에서는 “타인을 귀찮게 하지 말라” 는 원칙이 너무 쉽게 파기되어 버린다. 낯선 사람들은 마구 밀려들어 왔다가, 빠져 나간다.

그들은 어슬렁거리면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엉덩이를 들이밀며 자리를 확보하려 하고, 내가 보고 있는 신문을 훔쳐 보는가 하면, 더 ‘무례한 것’들은 떠들고, 음악을 틀어대고, 발등을 짓이겨 놓고도 모른 척하며, 심지어는 사진까지 찍어댄다.

이쯤되면, ‘내 주제에 무슨 자가용이냐’ 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자동차 카달로그가 생각나고,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가슴팍에 ‘팍’하고 와 꽂힌다. 사르트르는 서울의 ‘지옥철’을 경험해보지 않고도, 어찌 저런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거칠게 말하자면, 사르트르가 말하는 타인은 우리가 줄곧 이야기해왔던 ‘낯선 사람’이다. 타인, 낯선 사람, 타자(他者)는 얼추 비슷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타인 혹은 타자라는 말에는 더 깊은 의미들이 주름잡혀 있다. 그 의미의 범주로 따지자면, ‘타자⊃타인⊃낯선 사람’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타자'는 나 아닌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 것에 비해, '타인'은 말 그대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낯선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 이방인, 친하지 않은 사람 쯤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 해석을 시도해 보려 한다. 먼저, 사르트르에게 타인이 지옥인 까닭은, 타인이 나의 '의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의식(주체)과 세계(대상)를 구별하고, 의식에 특권을 부여한 데카르트주의자였다. 그런 사르트르에게 자신의 의식으로 이해불가능한 대상인 타인은, 지옥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위협적이고,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한편, 인간은 타인의 인정(認定)이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에 대한 의식이 진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 혼자 아무리 잘났다고 외치고 다녀봐야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헛수고다. 오히려 "저런, 병이 심각하구나?"라는 핀잔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를 인정해줄 타인이 '요청된다'.

나만 그런가? 타인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녀)를 인정해줄 '내'가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인정투쟁을 벌인다. 즉, 사르트르에게 타인은 투쟁의 대상이다.

나를 인정해주는 타인과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타인은 적으로 돌변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가 나면 이렇게 말하는 지경에 이른다. "감히 니가 나를 무시해?" 상황이 이러한데,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곳이 곧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사르트르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타인을 투쟁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처럼 타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는 우호적 집단을 형성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기 위해서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라면 타인과의 소통이 없이는 우리의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즉 좋든 싫든 우리는 타인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할 운명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서 낯선 사람과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사르트르와는 다른 윤리적 기초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도록 하자.

심원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1977년생
- 서울대 종교학과 졸(2004년)
-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졸업(2006년)
- 현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TBS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 서울> 문화 평론 프로그램 ‘이반의 반격’ 진행 (2003년 11월부터 6개월)
- EBS 손석춘의<월드FM> 문화 평론 프로그램 ‘이반의 천변풍경’진행 (2005년 5월부터 4개월)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