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도, 여자가 아닌 고통여성호르몬 분비 안돼 대부분 불임… 장애인 등록도 안해줘 고통 두 배언어장애·퉁퉁 부어오르는 몸 대수술… 진주종 중이염으로 청력도 잃어

“손가락 하나만 없어도 장애인 등록을 해주는데 ‘여성 호르몬이 없는’ 여성의 아픔은 왜 외면하나요?”

엄마는 딸 진현(32ㆍ가명) 씨와 같은 질환을 지닌 어린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눈물로 하소연한다. 보건복지부를 찾아가고, 장애인단체 등을 찾아 다니며, 장애인 등록을 해줘 제때 치료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성의 X성염색체 중 한 개가 완전히 없거나 구조적 이상이 발생하여 나타나는 유전성 질환인 ‘터너증후군’. 진현 씨는 여아 4,000명 중에 한 명꼴로 발병한다는 희귀난치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여성의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 불임이 된다. 키도 120~140cm에 불과해, 성인이 돼도 어린 소녀처럼 보인다. 난소와 잠복 고환이 한몸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엄마는 1975년 아기를 낳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부터 흐른다. “아기를 낳은 직후 간호사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머리 속의 피가 다 하늘로 치솟는 것 같았어요. 자연분만의 고통도 잊고, 정말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났어요. 아기의 모습을 확인하기까지의 단 몇 분이 진짜 몇 년 같았어요.”

아기를 처음 본 뒤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잊었다고 한다. 산호조리는커녕 며칠 동안 차마 밥알을 목안으로 밀어넣을 수가 없었다. 아기의 모습을 제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손과 발은 퉁퉁 부어 있고, 목과 어깨 부위는 굴곡 없이 부풀어오른 살이 잔뜩 붙어있고…. 게다가 여성의 성기 속에 남성의 성기 같이 볼록 튀어나온 것이 있었어요. 어찌 할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슬픔 속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병원 진찰증이 한 보따리가 될 정도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다고 한다. “혹시나 이 병원으로 가면 고칠 수 있을까, 저 병원에 가면 약이 있을까 싶었죠.”

시댁 어르신들의 냉대로 인한 마음 고생도 심했다. “그런 애기는 살아도 사람 구실 못한다.” 모진 소리는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혔다.

"아픈 자식 없는 부모 죽어도 이 마음 몰라"

“아픈 자식 두지 않은 부모는 죽어도 이 마음 고른다”는 엄마의 절규는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애기를 데리고 신비한 약수가 흘러나온다는 한 암자로 들어갔다. 약수로 보리차도 끊이고, 미음도 만들고, 좋다는 부적도 태우고…. 그렇지만 어디에도 아기를 위한 약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제 몸을 돌볼 겨를이 없어 아기 먹일 젖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차마 집안의 경제권을 갖고 있던 시어른들께 아기 분유 사 먹일 돈을 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참담한 마음에 아기를 죽이고, 함께 죽기로 결심했다. ‘너하고, 나하고 같이 죽자’. 신발을 벗어놓고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더 발을 떼려고 하니 집에 두고 온 큰 아들의 얼굴이 물 속에 어른거렸다. 도저히 아들 얼굴을 밟을 수 없어 돌아서서 어머니는 아기를 부둥켜 안고 통곡했다.

아기가 세 살이 되자 언어 이상이 발견됐다. ‘엄마’, ‘아빠’ 하는 발음이 이상했다. 이비인후과를 찾아가니, 성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일반적인 혀가 아닌, 목 밑에 또 다른 혀가 있다는 것이었다.

혀를 잘라낸 뒤에는 피나는 발음 교정 연습에 들어갔다. 딸을 데리고 대한적십자사의 언청이 교실을 다니며 풍선 불기, 하모니카 연습, 촛불 끄기 등을 시켰다. 그러나 수술 후 성인이 된 현재도 진현 씨의 발음은 부정확하다.

초등학교를 입학을 앞두고는 목에서 어깨까지 두툼하게 차 있는 살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시간만 무려 장장 10시간 가까이 걸린 대수술이었다. “양쪽 어깨에 240바늘을 꿰맸어요. 생살을 찢어내는 수술이니 얼마나 아팠겠어요.” 학교 입학 후에도 아기는 어깨에 가방을 메고 다닐 수 없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어머니가 딸과 함께 등ㆍ하교를 했다.

김지곤 기자
다행히 딸은 공부를 썩 잘했다. 반 등수는 늘 한 자리였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성적은 점차 하향 곡선을 그렸다. 체력이 약해 쉬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에 장기간의 입시준비를 견뎌내지 못했다. 그래도 4년제 대학 유아교육과를 무사히 마쳤다. 아이들을 너무나 좋아하는 진현 씨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아이처럼 작은 키에 발음마저 불명확한 그녀를 선뜻 받아줄 유치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취업을 하지 못해 좌절감에 휩싸일 무렵, 한 장애인기관으로부터 일자리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경리 자리였다. 전공과 무관한 생소한 일이었지만,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현 씨는 기뻤다.

그러나 취업을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은 결과, ‘청력이 이상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며칠 후 어느 날 밤 갑자기 귀가 다 녹아내리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왔다. ‘진주종 중이염’. 진주종이 암은 아니지만, 뼈와 청력에 중요한 기관들을 전부 파괴시켜 청력을 잃고 말았다. 그로 인해 벌써 일곱 차례나 수술을 받았고, 다음달 또 수술에 들어간다.

“같은 질환을 가진 환우 모임에서 서른일곱 살이 최고 연장자에요. 아마 마흔 살을 넘기기가 힘든 그런 병이 아닌가 싶어요.” 엄마는 딸이 심장도 약해 오래 뛰거나 걷지도 못한다며 한숨을 짓는다. 그럴 때면 진현 씨가 엄마를 위로한다. “엄마,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많은데. 난 그래도 이렇게 걸어 다니고 말도 하잖아.”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우가 국내에는 약 300여 명이 있다고 한다. 진현 씨는 지난해 설립된 터너증후군협회 환아 회장을 맡아 사회에 ‘질환 알리기’에 열심이다. 터너증후군 성인 환자의 경우 결혼 문제로 인한 고민이 상당하다.

“동생들이 조언을 구해올 때면 선배로서 치료법에 대해서는 조언을 해주겠는데,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어요. 둘이 좋아서 결혼한다고 해도 시부모님이 얼마나 이해해주겠어요. 더구나 핏줄 관념이 강한 사회인데요.” 진현 씨는 자신이 없어 이성 친구 사귀는 것을 아예 피하게 된다고 했다.

환우 중에는 어렵게 결혼한 후에도 불임 등의 문제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다. 자연 임신이 힘든 만큼 체외수정 등의 시술을 해야 하는데 경제적 부담이 크다.

작은 키와 약한 체력 등으로 취업에도 어려움이 많다. 일반적인 취업의 길이 사실상 막혀 있는데, 터너증후군만으로는 장애 등록도 해주지 않아 장애인 취업 지원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터너증후군의 가장 두드러진 임상 증상인 저신장 치료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 혜택이 절실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만났더니 성장호르몬 맞고, 여성호르몬 치료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굳이 장애인 등록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말투였어요. 저야 이미 성장이 끝났지만, 더 자랄 수 있는데 월 20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 부담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는 어린 환아들을 생각할 때 마음이 참 아팠어요.” 진현 씨는 그래서 “터너증후군의 장애인 등록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지속적인 환우들의 권익운동을 펴나가겠다”고 굳은 의지를 다졌다.

◆ 원인 및 증상

터너증후군은 두 개의 X성염색체 중 한 개가 완전히 없거나 구조적 이상이 발생하여 나타나는 유전성 질환이다. 발생 빈도는 외국의 통계에 의하면 여아 4,000명에 한 명 꼴이다. 이 증후군의 태아는 95%가 자연 유산되며, 산모의 고령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임상증상으로는 사춘기 이후 여성의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으므로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아 유방이 커지지 않고, 원발성 무월경과 불임증이 나타난다.

성기의 외형은 여성형이나 음모의 발육 상태가 미약하며, 유방과 자궁 및 질 등의 성기발육부전이 심하다. 또 성장발육 지연으로 저신장이며, 목이 짧고, 뒷목부분의 두발선이 낮고, 목 부위에 피부주름이 있는 게 특징이다. 지능은 대부분 정상이나 약간의 학습 장애가 초래되기도 한다.

◆ 진단 및 치료

터너증후군 여아는 9~13세 사이에 유방이 발달하고 급성장이 생기는 신체 변화가 없어서 겪는 심리적인 고통이 크기 때문에 호르몬 치료가 요구된다. 최근에는 유전자 재조합 방법으로 사람 성장호르몬을 남성호르몬 제재와 같이 사용하여 효과가 좋았다는 보고가 많다.

성장호르몬으로 치료하는 동안에는 갑상선 기능 검사와 당화혈색소 검사 등을 통해 부작용의 유무를 관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장호르몬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에스트로겐을 투여하여 사춘기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키가 어느 정도 커지면 이때부터 에스트로겐을 투여하여 자궁내막을 증식시키고 유방 발달을 유도한다. 이러한 호르몬 제재들은 부작용이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여 복용해야 한다. 결혼 후 아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난자 기증이나 체외 수정에 의한 임신도 가능하다.


<알립니다> '희망의 소리 합창단' 단원 28일까지 선발

“희귀병 환아를 대표하여 희망을 전해요.”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ㆍ청소년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희귀ㆍ난치성질환 환아를 대표하여 전 세계에 희망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될 ‘희망의 소리’ 합창단원을 3월 28일까지 모집한다. 합창단은 초ㆍ중ㆍ고교생에 해당하는 나이의 희귀 난치성 질환 환아 30 명으로 구성되며, 4월 중 정식 창단된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시범 운영했던 ‘프래드윌리증후군 환아 중창단’을 통해 환아들의 자존감 향상 및 가족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효과를 확인했다”면서 “체계적 음악재활프로그램 및 직업재활프로그램으로 확립해나갈 계획”이라고 창단 목적을 밝혔다.

합창단원 어린이들은 삼육대 성악과 김철호 교수의 지도 아래 주 2 회 동요ㆍ민요ㆍ클래식 등 다양한 합창곡을 배우게 되며, 정기적으로 관객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예정이다. 또 미국ㆍ일본 등 전 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혀 나갈 계획이다.

‘희망의 소리 합창단’은 28일까지 우편으로 신청자를 모집한 뒤 30일 공개 오디션을 거쳐 단원을 선발한다. 전형은 자유곡 1곡과 성량 테스트로 이뤄진다. 자세한 신청 방법은 연합회 홈페이지(www.kord.or.kr)를 참고하면 된다. 문의 (02)714-552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