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地獄鐵)과 낯선 사람

친한 사람에게는 ‘지킬 박사’의 행동 원리를 따르고, 낯선 사람에게는 ‘하이드’의 행동 원리를 따른다면,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이중 인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시민 사회가 원활하게 유지, 존속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관계가 맺어진 가까운 사람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들까지도 포함하는 보편적인 시민 윤리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교육 인적 자원부, <고등학교 시민윤리>


지하철에서는 특이한 냄새가 난다. 출근 시간에는 화장품, 향수 냄새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퇴근 시간 이후에는 돼지고기 냄새와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여름이면 농축된 땀 냄새와 암내까지. 쉬 지치는 후각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하철에서는 특이한 소리가 난다. 인간이 낼 수 있는 대부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들이 지하철의 진동 소리와 섞여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물론, 무조음악이다.

들을 만하냐고? 쇤베르크와 존 케이지가 울고 갈 정도다. 음악적 취향이란 다양한 법이고, 이 소음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감상하려는 사람은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테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어폰을 귀에 꼽고 볼륨을 한층 높인다. 그리고 이 성능 좋은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음향은 ‘지하철 교향곡’을 더욱 ‘빠방하게’ 만드는 데 또 한번 일조한다.

냄새와 소리는 타인의 흔적이다. 흔적들조차 나를 괴롭히니 정말로, 타인은 괴로움의 근원이다(지난 회에서 언급한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기억하자).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나의 소리와 냄새 때문에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겠는가. 인간은 자신의 냄새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어떤 이는 심지어 자신의 방귀 냄새가 향기롭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자신이 습관적으로 내는 소리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내 고통의 근원을 타인에게서 찾기 전에,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근원이 나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타인들이 나에게 주는 고통만을 생각하고, 내가 타인에게 주는 고통은 잊어버리는 우리의 속성을 설명할 때, ‘윤리적 나태함’만큼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우리가 스스로의 윤리적 나태함을 인정한다면,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하기 전에,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나는 지옥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아주 진지한 태도로 이렇게 첫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지옥을 맛보게 해주마.”

내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근원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윤리적으로 각성시킨다. 각성의 결과,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 지점에서 지하철은 타인의 고통으로 가득찬, 타인 중심의 윤리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지하철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고통을 직면해야 하는 공간이다. 몸의 한 부분이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 또 몸에 이물질들을 덧대어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들.

그들은 고통을 체화(體化)한 사람들이며, 자신들의 고통을 분명한 상징(없어진 다리, 하얀 안내봉 등)들로 드러냄으로써 승객들의 마음 속에 끊임없이 불편함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 버리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아주 천천히 왔다가 천천히 사라진다.

타인의 고통이 감지될 때, 우리는 세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마음 깊이 공감(共感)할 수 있다. 테레사 수녀와 같은 분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분들에게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 되며, 그 고통에 무한한 책임을 느끼게 된다. 공감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레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려는 의지와 타인의 고통에 의해 촉발되는 애틋한 감정으로 충만하게 된다. 이 때문에 공감의 순간에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드러난 타인의 고통이 마치 나의 고통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공감과 구별되는 두 번째 태도인 ‘값싼 동정’에 주의해야 한다. 값싼 동정에는 필연적으로 ‘동정하는 자’와 ‘동정받는 자’가 필요하다. 이때, ‘동정하는 나’와 ‘동정받는 너’가 철저히 분리되고, 공감의 경우와는 달리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것일 뿐이다.

이러한 분리는 일종의 안도감을 불러일으킨다. 나에게 저런 고통이 닥치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가! 뿐만 아니라, 동정하는 마음은 ‘동정하는’ 자신과 ‘동정받는’ 타인 사이에 위계를 만들어낸다. 늘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동정하게 된다. 즉, 고통받는 타인은 그 고통으로 인해 나보다 못한 인간으로 격하된다. 그리고 자신의 우월한 위치를 확인하고 뽐내기 위해서 동전을 던져 준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타인의 고통에 대처하는 세 번째 방법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자는 ‘척’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행위는 모두 눈앞에 현전하는 타인의 고통과 그 고통의 주인인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려는 자기 기만술이다.

나 역시 어디선가 익숙한 음향—하모니카 소리, 찬송가를 읊조리는 소리 등이 들려올 때면, 조건반사적으로 읽던 책에 더욱 집중하거나, 듣던 음악의 볼륨을 높여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쓰곤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면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신을 비난하는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눈을 떠! 저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봐! 그리고 그(녀)의 고통에 책임을 져!”

그러나 나는 끝내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요구에 대해서 응답할 의무를 져야 한다.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나는 인정머리 없는 자신을 혐오하거나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부터 고통받는 이들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눈을 감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 내 앞에 존재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유령이 된다. 아니, 유령이어야 한다.

간혹, 자의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지각될 때, 그 상황을 벗어날 변명이 필요해지기도 한다. 자주 출몰하는 저 사람들은 사실 고통받는 척하는 사기꾼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들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동정심 약탈자’ 들이라고 믿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들은 악당이므로, 내가 도울 필요도 없고 오히려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정의’이다. 이쯤되면, 스스로에 대해서 구역질이 나기 시작한다. 이런 썩을 놈!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한 책임을 요청하는 윤리는 우리에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아니다. 나에게는 인간의 모든 고통을 책임져야 할 의무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과도한 타자 중심성은 자기 혐오와 자기 학대로 이끌 수 있다. 이처럼 극단적 타자 중심성은 나를 지옥으로 만든다. 반대로, 극단적 자아 중심성은 타인을 지옥으로 만든다. 너도 지옥이고 나도 지옥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천국을 찾을 수 있을까?

피에르 신부는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에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지옥이란 다른 사람과 단절된 바로 당신 자신” 이라고 일갈하면서, “천국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눔과 교류, 상통의 즐거움입니다” 라고 말한다. 피에르 신부에 따르면, 천국은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 있다. 관계란 내가 타인을 향해 나아가고, 타인이 나를 향해 다가올 때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천국은 자기 중심성과 타자 중심성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

혹은

‘천국은 지옥과 지옥 사이 어디쯤에 있다.’

지옥과 지옥이 만날 때에만 천국이 열린다면, 그것은 지옥 그 자체인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마지막 희망이 될 것이다.

<관련 기출문제>

지금까지 2회에 걸쳐서 낯선 사람들로 구성된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래는 이와 관련해서 출제되었던 대입 논술 시험의 기출문제들이다(2000년도 이후). 관심 있는 분들은 해당 학교의 홈페이지에서 문제를 내려 받아 읽어 보길 권한다.

1.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경희대, 2006년 수시 2학기 / 외대, 2006년 정시)

2. 동양의 의리주의와 서양의 정의주의의 비교(경북대, 2003년 정시)

3. 일상적 삶 속에서 선의 실천 가능성(서울대, 2001년 정시)

4. 연고주의의 폐해와 건강한 공동체 문화 형성(동국대, 2001년 정시)


심원(TOPIA논술 아카데미 강사) i2u4us@naver.com